▶ 기존 TV시리즈와 차별화… 영화에 맞는 볼거리와 재밋거리 제공
“연출 제의를 받을 당시 다섯 살 딸이 한창 ‘번 개맨’에 빠져있었다. 뮤지컬 ‘번개맨의 비밀’도 함께 보러갔다. 그때마다 아이가 왜 번개맨은 하늘을 날지 않느냐, 번개파워는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조근현 감독이 ‘번개맨’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어린 딸의 역할이 컸다. 어린이 영화를 왜 하느냐는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한국형 히어로 무비를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BS TV는 ‘번개맨’의 장르 확장에 의지를 보였다. EBS는 자사의 인기 만화영화 ‘뽀로로’나 ‘타요’ 극장판을 제작하고 있었다.
‘번개맨’은 1999년 시작된 EBS 장수 프로그램 ‘모여라 딩동댕’의 대표 캐릭터다. 공개방송뿐 아니라 어린이 뮤지컬로도 제작돼 ‘시카고’ ‘위키드’를 제치고 예매율 1위를 차지할만큼 주목받아 왔다. 실사버전 특수촬영물인 ‘번개맨’의 극장판은 시도해볼 만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막상 ‘번개맨’이 개봉하면서 가장 많이 제기된 의문은 왜 기존의 번개맨이 아니냐는 것이다. 조 감독은 “기존 TV 캐릭터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기는 방안도 고려됐다”고 답했다.
“새 배우에게 번개맨을 맡기는 데 대한 우려가 있었다. 아이들이 기존에 알던 번개맨이 아니니까. 일단 기존 연기자들은 TV 녹화나 공연에 바빠서 영화촬영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기획 단계에서 EBS가 변화를 꾀하길 원했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에 맞는 볼거리와 재밋거리를 만드는 데 합의하면서 시나리오부터 번개맨 슈트까지 모든 사항을 EBS와 긴밀하게 협의했다.
영화화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번개맨의 초능력이다. 하늘을 날거나 조난당한 유조선을 번쩍 드는 장면을 구현하는데 제작비를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순제작비가 평균을 밑도는 20억원으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72분의 러닝타임 동안 760여 컷을 CG로 작업했다. 번개맨이 1초 나는데 한 1,000만원 들였다고 보면 된다. 할리우드 히어로물을 봐온 성인 관객들 눈에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그 장면을 구현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는지 모른다. 배우가 와이어에 매달려 비행순간을 연기하면 CG팀이 와서 그걸 카메라에 찍고, 그 소스를 바탕으로 인조구름이나 망토를 CG로 만들어 합성하고, 속도감을 표현해 한 컷을 완성하는 식이다. 덕분에 특촬물 촬영 노하우는 생겼다.”
한정된 제작비로 극중 ‘조이랜드’ 친구들이 공연하는 무대를 세트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세트를 제작해야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연기자를 잡을 수 있는데, 기존의 공연장을 개보수해 찍었다. 뮤지컬 장면은 촬영 난이도가 높다. 인물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조명이나 촬영이 까다롭다. 최소 카메라 5대가 동원돼야 하는데 2대밖에 돌리지 못했다.”
‘번개맨’은 기존 TV시리즈와 차별화를 꾀하면서 제한된 여건 속에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특히 다양한 장르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극장의 음향시설이 뒷받침됐다면 좀 더 감흥을 줬을 것이다.
조 감독은 “작은 영화관이 음향시설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는데, ‘번개맨’이 큰 관을 못잡았다. 음원이 출시됐으니 꼭 들어봐라. 32채널 입체음향이다.”
폭력이 배제된 히어로물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번개맨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로 잘난마왕이 나온다. 번개맨은 마지막 잘난마왕을 혼내주기보다는 포용한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다. 마지막 조난당한 유조선을 들어 올리는 번개맨의 모습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았다.
“TV에서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라면, 영화에서는 진짜 히어로로 만들고 싶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한국의 상업영화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게 쉽지 않다. 오랜만에 나온 특촬물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는데 아쉽다. 한국 시장에 맞는 히어로무비를 내놓으려면 좀 더 정교한 연구와 기획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한편 조근현 감독은 서울대 서양화를 전공했다. ‘장화, 홍련’(2003), ‘형사 듀얼리스트'(2005), ‘음란서생’(2006), ‘마이웨이’(2011), ‘후궁: 제왕의 첩’(2012)에서 미술을 책임졌다. ‘26년’(2012)으로 감독 데뷔해 ‘봄’(2014)을 연출했다.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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