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 감독

김무열
연극연출가 겸 영화감독 장진(45)의 신작 연극 ‘얼음은’ 형식이 우선 눈길을 끈다. 잔인하게 살해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열여덟살 소년과 그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다. 근데 2인극이다. 형사 역을 맡은 두 배우만 등장한다. 범인을 연기하는 배우는 없다. 두 배우와 관객들이 범인을 만들어내거나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범인이 만들어진다.
장진은 17일 대학로 수현재시어터에서 열린 ‘얼음’ 프레스콜에서 “줄거리만 보면 통속적인 미스터리극이나 추리극일 수 있는데 형식적으로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고말했다.
흔히 ‘배우의 장르’로 통하는 무대 위에서 배우가 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고민이 주다.
“그 기술에 대한 놀라움과 존경이 있다. 알수 없는 어느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기반한 관객들의 환영과 관객들이 만드는 텍스트 외적인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어느정도일까 궁금했다”는 것이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작가로서 뭔가 갈증이 났다. 뭔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 시도에 대해서는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 (웃음) 이 작품이 그래서 남 다르다.”
‘얼음’이라는 제목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얼음은 처음에 물이었다. 형체가 없었다. 단순히 잠시 추워서 얼어있는데 얼음이라고 부르며 고유의 다른 형질을 부여한다. 곧 녹아서 없어질 수 있는 거다. 그것에 대한 내용이다.”
용의자를 연기하는 배우의 형태가 없고 막판에 그가 과연 진범인지 관객들이 헷갈릴수 있는 지점에 대한 산뜻한 은유다.
“무대에 존재하지 않은 형태를 다른 배우들이 만든다. 그 용의자가 어떤 모습이고 무슨 말을 했는지 관객들이 근접할 수 있지만 결국 만드는 것은 다 다를 거다. 소년에 대한 두려움, 측연함 등의 환영을 만들고 싶었다. 결국 관심 있는 부분은 그것이다. 뭔가가 있고, 영향을 받는다는 작가적인 입장 말이다.”
하지만 ‘열린 결말'이라는 꼬리표는 “무책임해서 싫어한다. 그것과는 다르다”고 잘라말했다. “범인이 누구냐라고 물어보면, 소년의 아버지라고 대답할 거다. 소년의 수갑을 풀어주고 아버지인 것으로 끝나지 않나. 그런데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은 소년의 말에 대한)형사의 대사에 대한 의심이 계속 되면, 시간이 지나 너는 소년을 범인으로 몰 거다. 아버지가 그 광경을 본 것이고. 원래 영화 시놉시스로 만들었던 내용인데 연극은 다른 결말이다. 관객들이 또 하나를 창작하고 환영을 만들고 나름의 결말을 갖지 않을까 한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상대로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아닌 내가 사회를 보고 관객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관객끼리의 대화를 열 거다. 하하.”
주로 뮤지컬과 영화에서 활약한 김무열(34)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가는 인간적인 면모의 형사를 연기한다. 그가 5년 만에 연극 출연을 결정한 이유도 용의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없어서였다. “ 등장하지 않은 배우의 형태를 어떻게 만들어갈지가 의문이었다”며 “그것이 무대에서 어떻게 잘 전달될까 기대가 되더라. 대본만 봐서는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한번 출연해봐야겠다는 도전정신이 생겼다”고 전했다.
장진은 한동안 영화와 뮤지컬, 올림픽 개막식 등에 주력하느라 연극계를 떠나있었다. 지난해 말 조재현이 이끄는 수현재컴퍼니와 손잡고 신작으로는 13년 만에 코미디 연극 ‘꽃의 비밀’을 선보여 호평 받았다‘. 꽃의 비밀’로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확인한 그가 정반대 성향인 ‘얼음’으로 또 다른 작가적 야심을 드러낸 셈이다.
지난해 초 ‘꽃의 비밀’ 희곡을 쓰기 직전인 재작년 말, 1주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같은 기간에 집필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
“2014년 12월 마지막 주에 고민스런 사정이 많았다. 하는 일에 힘도 빠졌던 때인데 며칠 동안 연락을 다 끊고 사무실에서 썼다. 오랜만에 목적이 없는 글을 썼다.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은 공연에 대한 목적이 분명한 희곡이었다. 이번은 쓰고 싶어서 쓴 거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배우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이작품을 어떻게 볼 지 50억짜리 영화 개봉하는 것보다 더 스릴 있고 긴장됐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최근 대학로는 장진 판이다. ‘꽃의 비밀’ 앙코르가 조만간 올라간다. ‘김수로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택시드리벌’이 공연 중이며, 또 다른 대표작인 ‘서툰사람들’ 역시 무대에 오른다. 비슷한 시기에 그의 작품이 네 개나 선을 보이는 셈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예전에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얼음’이 중요하다.”
극중에서 소년은 노래를 부른다. 그의 특이한 설정에 힘을 싣기 위한 장치다. 커튼콜에서도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싱어송라이터 루시아(심규선)가 만들었다.
‘꽃의 비밀’에서 허당 의사를 연기한 김대령이 김무열과 같은 역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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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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