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대인 8천명 학살한 아몬 괴트 외손녀는 뮌헨서 자란 혼혈
▶ “할아버지는 나도 바로 죽였을 것”…가족사 비극 담은 책 내고 충격극복

지난해 2월 예루살렘 국제도서페스티벌에 참석한 예니퍼 테게 (AP=연합뉴스)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실존 나치 수용소장이 자신의 외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독일 흑인여성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폴란드 푸아쇼프 강제수용소장을 지내며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아몬 괴트 (출처 : 위키피디아)
9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책 '내 할아버지는 날 쏴죽였을 거야 : 한 흑인 여성이 가족의 나치 과거를 발견하다'의 저자 예니퍼 테게(45)는 최근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강연에서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담히 털어놨다.
나이지리아 유학생인 부친과 독일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테게는 생후 4주 만에 독일 뮌헨의 한 가톨릭 보육원에 맡겨져 수녀들의 손에 의해 자랐다.
가끔 딸을 보러 보육원에 들르던 생모는 딸이 3살 때 입양가정에 들어가면서 발길을 끊었다가 21살이 되던 해부터 다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당시 뮌헨에서 보기 드문 흑인 여성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프랑스 파리의 명문 소르본 대학을 나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등 성공한 삶을 살던 테게가 끔찍한 진실과 마주한 것은 38살이 된 2008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평생 우울증과 싸우던 그는 심리학 서적을 찾아보러 함부르크 중앙도서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생모가 쓴 책을 발견했다.
도서관에서 집어든 빨간색 책을 넘겨보다가 표지에 실린 흑백사진의 주인공이 친모인 모니카 괴트라는 사실과 함께 악명높은 나치 간부인 아몬 괴트가 바로 자신의 외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몬 괴트는 폴란드 푸아쇼프 강제수용소장을 지내며 유대인 8천명의 학살에 관여한 인물로 교수형을 받는 순간까지 '하일 히틀러'(히틀러 찬양에 쓰인 나치 구호)를 외친 골수 나치당원이었다.
특히 1993년 영화 '쉰들러리스트'에서 유명 배우 랠프 파인즈가 괴트로 분해 실감 나는 악역 연기를 선보여 그의 악명이 더욱 널리 퍼진 상태였다.
역사에 기록된 악당과 자신이 핏줄로 연결돼 있다는 충격에 휩싸인 테게는 거울을 들여다본 뒤 턱선, 코와 입 사이의 주름이 괴트와 닮았단 사실을 깨닫고 "외할아버지로부터 내가 뭔가를 물려받았을까"라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전했다.
흑인 혼혈인 자신은 나치의 이상형인 순수 아리아인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외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나를 죽였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까지 털어놨다.

아몬 괴트 (출처 : 위키피디아)
유달리 이스라엘 친구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죄책감을 더했다.
테게는 소르본 대학에 다닐 때 사귄 이스라엘 친구의 집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귀국 비행기를 놓친 뒤 아예 눌러앉아 텔아비브 대학에서 중동·아프리카학과 히브리어를 공부한 바 있다.
그는 "내가 이스라엘을 (여행지로) 골랐고 비행기를 놓쳐 눌러앉은 이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비밀을 알게 된 지 2년 만에 홀로코스트 생존자였거나 희생자의 후손인 이스라엘 친구들에게 자신이 수용소장의 손녀라는 사실을 털어놨으나 예상 외로 친구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비극에 맞닥뜨린 테케의 선택은 일을 그만두고 모친의 책과 관련 다큐멘터리, 온라인 검색 등을 통해 어두운 가족사를 정면으로 파헤쳐 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를 책으로 공개한 테게는 자녀들에게도 가족사를 이야기해줬다면서 "아이들이 나처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정신적 충격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다. 다만 영화 '쉰들러리스트'는 좀 더 나이가 들면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인생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나아졌다"며 "이제 더는 외할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자신의 책을 들고 서 있는 예니퍼 테게 (AP=연합뉴스)
다만 충격적 진실을 극복한 테게와 달리 모친과 외할머니는 트라우마와 혼란 속에 일생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테게의 저서를 보면 외할머니인 루트 이레네 칼더는 자신의 딸이자 테게의 모친인 모니카에게 괴트는 "전쟁영웅"이자 희생자라고 강변해오다 1983년 자살 직전에야 "내가 사람들을 도와줬어야 했다"며 후회하는 말을 남겼다.
모니카 역시 유대인 희생자와 함께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아버지는 유대인들이 전염병을 퍼뜨렸기 때문에 그들을 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테게는 "(전쟁) 2세대는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 큰 어려움을 갖고 있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우리는 책임과 죄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조상의 죄가 후손 개개인에게 상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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