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을 주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은 자신의 이름을 알았다.
▶ 어쩌면 밥을 주는 그의 음성으로 아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문성의 작품
당선자 이강천
[고양이 밥 주는 남자 / 이강천]
LAX 3번 터미널에서 6938을 운전하는 조선족 미스터 정을 만났다. 그는 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공항 조가 되어 지켜본 바로는, 그가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체력을 안배하며 일을 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일하는 중간에 잠깐 잠깐씩 집에 들어가 쉬었다가 일하고 한약도 지어 먹는다고 했다. 사람이 로봇이 아닌 한에야 무한정 일할 수 없고 로봇도 어느 땐가는 고장이 난다.
“앞에 사람은 숏 트립만 계속 갔다는데 집사님은 어떠셨어요?”조선족 특유의 억양으로 물어온다.
“토요일이라 안 빠지는데 그래도 할 만큼은 했어요.”“할 만큼이면 얼마나? 삼백? 사백?”그는 대답 대신 미소만 짓는다.
“저는 이제 이백만 하면 집에 갈 겁니다. 그럼 오늘 목표치를 합니다.”“아, 그래요? 저도 백육십만 하면 들어갈 겁니다.”“많이 하셨는 모양이네요.”“네, 먼 데를 두 번 갔어요. 코스타 메사 한 번, 오렌지 카운티 한 번.”“와, 좋은 데 가셨네요. 저도 라운드 트립을 두 번 했어요. 공항 내려올 때 싣고 내려왔고 웨스트우드에 가서 내려주고 콜 받고 파사데나 갔다가 내려오며 또 싣고.”그렇다면 미스터 정은 3백, 또는 4백 정도를 한 것 같다. 이제 시간은 오후 5시를 조금 넘겼다. 그는 344불 했다. 오늘은 차가 늦게 빠졌고 움직임이 늦어 2시간 이상 홀딩랏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이런 날은 숏 트립을 가면 죽음이다. 다행히 운이 좋아 세 번째에 3A에서 일본인 한 사람이 탔는데 코스타 메사를 갔고 111달러 55센트가 나와 에어포트 서차지까지 포함하여 115달러 55센트였는데 캐시로 140불을 주었다. 그리고 코스타 메사에서 올라와 할리우드를 다녀온 후 6번 터미널에서 오렌지 카운티를 가는 여자를 태웠는데 몸이 아파 보이던 그녀는 주유소에 잠시 들렸다 가자고 하더니 음료수를 샀고 집에 도착해 크레딧 카드로 지불했는데 20%의 팁을 주어 에어포트 서차지와 크레딧 카드 수수료 5%를 제해도 100불이 되었다. 토요일에 이 정도면 정말 대박이다. 보통 때는 기분이 엄청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울하고 슬프다. 이런 기분은 두고두고 가시지 않을 것 같다.
그 일들이 있기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최근 1주일 사이에 두 건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일이 터질 조짐은 이미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 토요일이었다. 늦게 점심을 먹고 웨스턴 길로 내려가다가 좌회전을 하면 다운타운으로 일을 하러 가고 우회전하면 교회로 가는 길인데 그는 베버리 길에서 망설이다가 우회전을 했다. 화장실에라도 들리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러 교회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회에 도착하니 아내와 몇몇 분이 음식 준비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끼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래서 여자들이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 번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일을 하러 가고 싶지 않았다. 일터는,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전쟁터였다. A 사가 등장한 이후론 더욱 그랬다. 전에는 일주일에 5일만 일해도 됐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를 쉬거나 하루 일을 망치면 엉망이 되고 만다. 많은 승객을 A 사에 뺏겼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었는데 점점 고객층이 넓어지고 있다. 만일 A 사가 공항에 들어오면 택시는 끝이라는 위기감을 모든 택시 드라이버들은 느끼고 있었다. 교회에서 주된 대화 내용은 이사 문제였다. 몸이 힘들어 이제 한계에 다다랐으니 코리아타운으로 이사를 가자는 것이었는데 아내는 끝까지 이사를 할 수 없다고 버텼다. 1,2년 전에는 세 마리 고양이 때문에 못 가겠다더니 이제는 아들이 MCAT 시험을 보고 의대에 원서를 넣어 주소를 옮길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럼, 내 죽은 다음에나 옮기지 그래?”, 하는 말이 입 안에 뱅뱅 돌았지만 말이 씨가 될지 몰라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만으로도 씨가 되는 걸까? 3일 후부터 일이 터지고 말았다.
2월 24일 화요일 아침 JW Marriott 호텔 앞 빅셀 길에서 8시쯤 1401 사우스 그랜드 병원 일반 콜을 받았다. 허름한 차림의 히스패닉 젊은 여자가 탔다. 늦게라도 승객을 태워 다행이었다. 그런데 옷에 토한 듯 역겨운 냄새가 났다.
“길을 지나쳤다.”목적지에서 0.4마일 남은 곳이었다.
“아, 그러냐? 아임 쏘리.”그는 차를 멈추었다. 지나친 길 중간에 그녀의 집이 있었다. GARMIN이 자주 고장이 나 며칠 전 TOMTOM으로 내비게이션을 바꾸었는데 40th 플레이스를 지나친 후 도로를 표시했다. 주변에 높은 빌딩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잠깐 사이 뒤를 확인하고 후진했다. 아주 잠깐, 이었다. 앞으로 돌아서 가자니 거리가 멀고 냄새가 역겨웠다. 후진을 했다가 멈추고 다시 후진을 시도할 때였다. 갑자기 강한 충돌음이 들렸다.
“오 마이 갓!”사이드밀러로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차가 뒤에 한 대 서 있었다.
구형 쉐비 트럭은 20년은 넘은 듯 여기저기 덕지덕지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군데군데 녹이 슬고 운전석 옆 사이드밀러는 깨진 것을 투명 테이프로 붙여두었다. 택시는 뒤 범퍼가 긁히고 범퍼 위에 붙여놓은 고무판이 벗겨지고 트럭은 운전석 뒤 적재함 쪽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 그는 사고가 난 영문을 몰랐는데 상대편 운전자가 말해 그 차가 건너편에서 좌회전한 차라는 것을 알았다.
“내 잘못이다. 내가 후진을 했다. 차를 빼자. 그리고 인포메이션을 교환하자.”흑인 남자는 계속 경찰과 통화를 하며 차를 못 빼게 했다. 자신이 후진을 했음을 인정했고 폰으로 사진을 다 찍었음에도 차를 빼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는 트럭 적재함에서 고임목을 꺼내 그의 차 뒷바퀴에 고였다.
경찰은 오지 않고 토잉카만 두 대 왔다가 갔다. 회사 Accident Investigator가 근처에 온다는 말을 듣고 그때서야 흑인은 딜을 시도했다. 수리비로 700달러만 내라고 했다. 승객만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정말 간절히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환자였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회사에 리포트를 했다. 이제 올해 안에 한 번만 더 사고를 내면 리스가 취소되고 회사를 떠나야 한다. 사고 기록은 두고두고 그를 괴롭힐 것이다.
다음 날인 공항 날 그는 일을 하다가 말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코리아타운으로 방을 얻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무슨 말이냐고 했다.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다고 그는 소리쳤다. 코리아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눈곱만 떼고 일하러 가도 되지만 나는 일할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적어도 25마일 이상 달려가야 하고 출퇴근에 3시간 정도가 걸린다며 이것은 바보짓이라고 했다. 아내는, 그렇게 꼭 나가야겠다면 하숙이라도 얻어서 나가라고 했다. 그는, 내가 홀아비냐, 하숙을 얻어서 나가게, 라며 또 고함을 질렀다. 나중에 아내는 전화를 걸어와, 그럼 2천 불을 빌려 놓을 테니 하숙을 하든 방을 얻든 알아서 하라고 했다. 공교롭게 최근에 아들 차가 고장이 나 엔진을 교체하며 집에 있던 돈이 바닥이 났다.
밤 11시경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돈을 빌릴 데가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은 쉬고 다음 날인 금요일 움직임이 없어 57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에야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공항 날이었다.
오후 3시경 산타모니카 오션 에비뉴에 있는 호텔에 승객을 내려주고 피코로 나와 링컨 길을 타고 공항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작은 배낭을 멘 남자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택시를 불렀다. 1차선을 가고 있던 그는 차선을 바꾸었고 뒤에 버스가 오고 있어 앞으로 쭉 빼서 택시를 세웠다. 오른편에 서 있으니 공항 쪽으로 내려가는 승객일 테고 요금은 많아봐야 10불정도 나올 것 같았다. 아직 핑크가 뜰 시간이 아니니 가는 길에 태워주려고 생각했다. 사이드밀러를 보니 그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땡큐! 버스가 오는데도 세워 주어서 고맙다.”“천만에!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와주어서 고맙다.”“마리나 델 레이 갈 수 있느냐?”“예스.”서너 블록 내려가자 그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야 한다며 잠깐만 은행에 들리자고 했다. 그는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통화를 했다. 저녁에 식사를 하러 가는데 돈은 부족하지 않느냐, 은행에 돈 찾으러 가는데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내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레프턴을 하자고 했다. 그는 몰랐는데 그곳 알버슨 안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있었다.
“금방 돈을 찾아나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라.”“오케이.”비상등을 켜고 기다렸는데 얼마 후 옆에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미스터 리!”조금 전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간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목에 경찰 배지 같은 것을 걸고 있는 것을 내보였다.
‘오 마이 갓! 함정이었구나!’그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다. 서울대학에 들어간 꿈이었다. 서울대학에 합격하고 금가루를 헝겊으로 싼 것 8개를 받았는데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과외선생이라는 사람이 자기 몫이라며 두 개를 접어 가지고 갔다. 꿈에 금을 보아서 로토라도 사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정 단속이라니? 두 놈의 목에 걸린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금배지였고 그들에게서 받은 벌금 통지서는 무려 1,500불이었다. 오 마이 갓! 너무도 억울해서 그는 아무런 힘이 없는 택시 드라이버를 단속하지 말고 A 사나 단속하라고 소리쳤다. 이것은 택시 드라이버가 한 달 벌 돈 절반도 넘는다고 소리쳤다. 공항 날이면 자주 다녀 익숙한 링컨 길, 그래서 그곳이 자신이 일할 수 없는 산타모니카 지역이라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아니, 그 단속원이 너무 반갑게 택시를 불러 깜빡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는 구역을 어겨 산타모니카에서 승객을 태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랬는데, 그 큰 액수의 벌금은, 너무나 엄중하고 가혹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예전에는 정의롭고 합리적인 나라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을 그는 요즘 자주 한다. 변호사와 로비스트의 힘만 강하다면 상식에서 벗어난 일도 상식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A 사가 하는 일은 명백히 불법이었다. 그들은 라이드쉐어라는 개념으로 영업 행위를 했고 그것을 무소불위의 보검처럼 휘둘렀지만 아무도 막지 못했다. 한인타운에서 일하는 불법 택시는 단속을 하면서 개인용 차로 영업을 하는 A 사는 단속하지 못하는 이유를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평등권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A 사가 하는 일이 라이드쉐어라면 한인타운의 불법 택시도 라이드쉐어이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차로 승객을 태우고 일정한 요금을 받는 것 역시 라이드쉐어였다. 그가 10블록 전에 영업 구역을 어겨 승객을 태웠다며 1,500불의 벌금 티켓을 받았는데 그렇게도 영업권과 구역이 엄중하다면 A 사는 왜 단속을 못하는가? A 사에게는 구역도, 차량 수의 제한도 없었다. 요금도 자기 스스로 결정했다. 이러니 이제 창립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A 사와 그동안 택시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왔던 택시 회사 간의 싸움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쳤고 덮친 데 코가 깨진 형국이었다. 집으로 전화를 하니 아내가 깜짝 놀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들이 전화를 받아 벌금 통지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라고 했다. 아들이 산타모니카 시에 알아보고 벌금만 기한 내에 내면 되니 운전 조심해서 하세요, 라고 말했다. 이번 일로 얻은 것이 있다면 아들이 아빠의 고충을 이해한 것뿐이다.
순서가 되어 미스터 정이 떠나고 동양인 여자가 다가왔다.
“다운타운 일레븐 한드레드 호프 스트릿.”택시 드라이버들이 장거리 다음으로 선호하는 곳이 다운타운이다. 그에게는 고양이 밥을 주러 갈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는 운전을 하고 가며 생각에 잠겼다. 연달아 여러 가지 일이 터졌지만 모든 손실을 한꺼번에 만회하고도 남을 방법이 있긴 했었다. 아들 차의 엔진을 교체한 정비공장 사장이 10만 마일 적게 운행한 좋은 엔진으로 교체했으니 10만 마일 뒤로 마일리지를 돌려 팔면 돈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엔진 교체 비용과 교통사고와 벌금을 모두 제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흔적도 남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 200달러만 내라고 했다. 정말 적절한 시기에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왜 원텐 프리웨이로 가지 않고 텐 프리웨이로 가느냐?”다운타운 입구 갈림길에서 110번을 타지 않고 10번 프리웨이 쪽으로 빠져 피코로 가려고 하는데 그녀가 물었다.
“이 길이 지름길이다. 이쪽으로 빠져 피코로 해서 호프를 만나 북쪽으로 갈 것이다.”“왜 텐 프리웨이로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텐 프리웨이로 가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이 길이 지름길이다.”그녀는 계속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처음에 주소를 말했을 때 LA를 방문하는 여자가 아니라 다운타운에 사는 여자로 알았고 Flat rate로 지불할 것 같아 처음부터 이 길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110번이 다운타운부터 막히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몰라서 그렇지 이 길로 가면 2,3불은 적게 나올 것이다.
그녀는 15%의 팁을 포함해 요금을 크레딧 카드로 지불하고 내렸다.
그는 빅셀 길로 향했다.
빅셀 길에는 블랙과 베이비가 산다. 오늘 집에서 LAX로 곧장 내려오는 바람에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저녁에 다운타운에 갈 기회가 있으면 밥을 주려고 생각했었다.
블랙을 처음 만난 것은 11개월 전이었다. 일기를 써와서 그는 그날을 확실히 기억한다. 빅셀 스트리트 막다른 곳 펜스 안에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망연자실, 우두망찰, 이 단어들이 그 고양이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일까?아니다.
이 단어들로도 그 고양이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절실함과 간절함 앞에 단어들은 얼마나 맥없는 것인가?블랙은 빅셀 길 막다른 곳에 텐트를 치고 살던 홈리스 커플이 키우던 고양이였다. 홈리스 커플은 가까운 도로에서 그 고양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구걸을 했다. 새벽에 빅셀 스트리트에 도착해 그는 이따금 그 까만 고양이가 일을 보고 텐트 속으로 쏙 들어가던 모습을 보곤 했었다. 한 번은 홈리스 여자가 고양이를 줄에 묶어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고양이를 부른 적이 있었다. 작고 날씬한 검정고양이는 다람쥐꼬리처럼 두툼한 꼬리를 추켜올리고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도도하게 지나갔다. 그런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그런 고양이가 망연자실, 그들이 밀고 다니던 카트 옆을 서성이다가 사람이나 택시가 움직이면 펜스 안으로 숨고, 다시 텐트가 있던 곳 부근을 서성거리다가 우두망찰, 앉아 있곤 했다.
다음 날에도 고양이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버림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 고양이가 얼마나 당황해 하고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던지 고양이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에게 전해졌다. 그는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고 아내가 고양이 밥그릇과 먹이를 챙겨주었고 다음 날부터 밥을 주기 시작했다. 이름은 블랙으로 지었다.
밥을 주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은 자신의 이름을 알았다. 어쩌면 밥을 주는 그의 음성으로 아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름을 부르면 블랙은 야옹, 하며 작은 소리로 꼭 화답을 했다.
어느 날 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주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다.
“고양이에게 밥을 왜 줘요? 자기 스스로 살게 해야지. 언제까지 돌보시려고?”그는 물그릇을 펜스 안에 밀어 넣고 일어섰다.
“이곳에 고양이가 먹을 것이 뭐 있겠어요?”“쥐라도 잡아먹고 살게 해야지요.”“쥐가 얼마나 많아서요? 이놈이 이곳에 살면서 쥐가 다 없어졌어요.”그곳에 병원 쓰레기장이 있는데 새벽에 와서 보면 쓰레기장 입구 펜스에서 그네를 타고 놀던 쥐들이 블랙이 그곳에 살기 시작한 후로 사라진 사실을 장로님은 모르는가 보다. 그분은 그가 몇 차례 먹이를 주다 말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 그의 집에는 고양이 밥이 떨어질 날이 없다.
늘 빅셀 스트리트로 갈 수는 없었다. 공항 날이면 집에서 곧장 605번 프리웨이를 타고 LAX로 갔고, 공항 뒷날 일을 나가지 못한 날도 있었고, 아침에 늦게 일어난 날은 101번 프리웨이 다운타운 입구에서 막혀 더블 트리 바이 힐튼 호텔로 차를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과 밤이 아니면 고양이가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제때 밥을 주지 않으면 새들에게 먹이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밥을 굶겼다. 다행히 블랙에게 밥을 주는 모습을 보고 택시 드라이버 한 사람이 어릴 적에 고양이를 키웠다며 관심을 보여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가 나오지 않는 날 밥을 챙겨 주겠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던 그분은 집에서 먹던 닭고기와 생선회와 오징어 등을 가져다주었고 나중에는 정기적으로 캔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흐른 후였다.
‘오 마이 갓!’밥을 주려고 블랙을 불렀는데 블랙 옆에 주먹만 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색깔이 하얘서 작은 새끼 유령 같았다.
‘한 마리도 제때 밥을 주기 힘든데 두 마리라니?’저 안에 어미가 있을까? 블랙은 저 새끼 고양이의 아빠일까? 아무리 지켜보아도 어미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새끼 고양이는 베이비라고 이름을 지었다. 홈리스 커플이 자리를 옮긴 후 그곳에 노인 한 사람이 잠시 자리를 잡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노인이 거리에서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고 가져다둔 것 같았다. 그곳은 큰 도로가 앞으로 가로지르고 도로 너머로는 호텔과 극장과 스테플스와 컨벤션 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어 주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뒤로는 110번 프리웨이가 지나며 방음벽으로 막혔고 손금 보는 집과 병원 두 곳과 대형 주차장이 둘러싸고 있어 고양이가 살기 힘든 도심 안의 인공의 섬 같은 곳이다. 블랙은 땅에 뒹굴며 작은 고양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시늉을 했다.
외로운 블랙에게 동료가 생겨 좋기는 했지만 걱정이 덜컥 들었다. 저 새끼 고양이가 암놈이라면 임신할 때가 되어 새끼를 배면 그놈들을 다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때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동물보호소에 알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양이 큰아빠에게 새끼가 한 마리가 더 딸렸다며 먹이를 조금 더 주어야 할 것이라고 부탁했다.
곧 죽을 것처럼 비틀거리던 새끼 고양이는 갈수록 몸집이 커져 어른 고양이가 되어 갔다. 다행히 그 고양이는 수컷이었다. 그는 베이비가 성장해가는 것을 보며 한 가지를 배웠다.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남자들보다 더 만족한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낳고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을 알았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성장시키는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그는 블랙과 베이비를 불렀다. 요즘은 밥을 주기 전에 먼저 고양이들을 부른다. 낮에 밥을 준 후 그들이 다 못 먹고 남긴 밥을 비둘기들이 와서 먹어치운 것을 본 후부터이다. 누군가는 새라도 먹으니 다행이라고 했지만 모르는 소리다. 새는 아무 데나 날아다니며 먹이를 먹을 수 있지만 고양이들은 인공의 섬을 빠져나갈 수 없다.
잠시 후 블랙이 나와서 화답을 했다. 베이비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밥을 주고 고양이 큰아빠가 준 깡통을 치웠다. 먹지 않은 깡통에 개미들이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그는 고양이 큰아빠가 서운해 할까보아 깡통을 치우고 이제 알맹이 밥만 주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려고 생각했다.
그가 깡통을 쓰레기통에 버리자 누군가 말했다.
“당신이 고양이 밥을 주어 고맙다. 갓 브레스 유!”방글라데시인 택시 드라이버였다.
“천만에. 집에 고양이 세 마리가 있어 함께 줄 뿐이다.”어느 날 저녁 고양이 밥을 주러 왔다가 그곳에서 기도를 하는 무슬림을 보았다. 무슬림들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동북쪽을 향해 절을 한다. 그런데 무슬림이 절을 하는 쪽에 누군가 플라스틱 물병에 오줌을 담아 던져둔 것들이 보였다. 참으로 못된 놈들이었다. 가까운 곳에 쓰레기통이 있는데 그곳에 넣지 않고 고양이들이 오가는 길목에 던져 놓았다. 그것이 보기 흉했는데 어느 날 펜스 안에 든 오줌통들이 치워졌다. 정기적으로 도로를 청소하는 사람이 펜스 안까지 청소를 한 것인지, 그곳을 향해 기도를 하던 무슬림인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는 고마웠다. 어떤 날은 마약쟁이가 사용한 듯한 주사기가 떨어져 있는 날도 있었다.
블랙에게 밥을 주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두운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남자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최근에 그는 빈 둥지 신드롬 같은 것을 겪었다. 그의 평생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온통 그를 사로잡은 것은 세계문학과 철학서들이었고 그는 눈이 시리도록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끄적거리게 되었고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소설가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소설가를 이렇게 규정했다. 소설가는, 역사가보다 한 수 위, 흐르는 물 위에 다슬기를 잡는 통을 대고 물속을 들여다보듯 세상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퍼올려 생생하게 액자 속에 담아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다 보니 그의 소설은 재미가 없고 상상력이 부족했다. 단점이 많은 그의 소설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우뚝 설 군계일학이 되지 못했다. 최근에도 2주간 휴가를 내고 장편소설 쓰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시도했는데 자신이 읽기에도 자신의 소설이 절실함과 핍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1년 동안 준비해왔던 소설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때 말할 수 없이 가슴이 허허로웠다. 점점 나이가 많아져 가고 있는데 내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아들도 다 커서 혼자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아내 역시 자신이 없다면 조금은 힘들겠지만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아들에게나 아내에게나 이제 자신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없다. 모아둔 것도 없다. 허깨비다. 허무했다. 그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그때 이 고양이들이 생각났다. 이 고양이들에게만은, 특히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블랙에게만큼은, 그는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고, 생존의 끈이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 나는 고양이 밥 주는 남자로구나.’그것이, 50대 중반을 살아온, 그의 존재감이었다. 비가 와서 밥을 못 준 날 밤이면 풀숲에서 조용히 뛰고 있는 두 개의 작은 심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고양이가 오십대 중반을 넘긴 한 남자에게 자존감을 주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돌아보니, 요즘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볼품이 없다. 소변을 본 후에 오줌 방울이 멈추지 않아 화장지로 마무리를 해야 하고 어떤 때는 팬티를 적시기도 한다. 한밤중에 몽유병자처럼 깨어 소변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단단하게 굳은 아랫배를 마사지하고 그래도 안 되면 불을 켜고 정신을 차린다. 정신을 차려야 그나마 단단하게 굳은 아랫배가 조금 풀린다. 무슨 조화인지, 한국인인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김치만 먹으면 손바닥이 가려워 잠을 못 잔다. 누군가는 면역력이 떨어져서라고 하고 누군가는 열이 많아서라고 했다. 마늘과 파와 양파와 생강과 부추 등 자극성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손바닥이 가려워 미칠 지경이다. 그 가려움은 긁으면 긁을수록 더하고 피부 안에 숨어 있는 가려움이어서 견딜 수 없다. 옷핀으로 물집을 터트려 차가운 물에 씻으면 그때서야 가려움이 조금 가라앉는다. 전에는 모르고 밤에 알러지 약을 먹었다가 소변이 나오지 않아 생고생을 했다. 이러니 밤이 두렵다.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푹 자는 사람을,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그가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노인들이 새벽 일찍부터 깨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소변 냄새를 풍겼던 것일까?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던 노인의 일상이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 예전에는 넥타이로 허리를 동인 중늙이들을 비웃었는데 이제는 허리띠 구멍이 맞지 않아 고민이다. 양복바지에 오줌 방울을 남긴 중년들을 한심스럽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신이 그런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공항에서 일을 하면 눈이 침침하고 사물이 겹쳐 보인다. 홀딩랏에 가면 가장 먼저 소변을 본 후 세수를 한다. 눈물샘이 말라가고 있다. 냅킨으로 닦아도 눈물이 거의 묻어 나오지 않는다. 눈이 밝게 보인다면 운전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텐데 눈 때문에 지장이 많다. 눈이 이처럼 소중한 것이었던가?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아버지가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이,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자신의 모습은 한없이 무능하고 후줄근하다. 퇴직한 아버지가 겨울철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 장작을 팰 때 그는 당당하게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글을 썼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보고 한 마디 하셨다.
“책은 세상 다 살아보고 그때 쓰는 것이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이제 그 나이가 되었는데, 정작 그 나이가 되었는데, 요즘은 글을 쓰기가 힘들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시간을 내어야 작은 글이라도 하나 쓸 수 있는데 그런 시간을 낼 겨를도 없다. 젊은 날에는 밤에 글을 썼는데 나이가 들어가자 아침에 글이 잘 써졌고 이제 그것도 주기가 짧아져 새벽부터 오전 10시 정도까지이다. 그 시간을 넘어서면 새들이 일시에 날아가버린 것처럼 요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런 상태로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별 소득은 없다. 당신은 당신 엄마를 닮아서 돌도 소화시킬 사람이다, 공항이 끝난 심야에 거나하게 한 상 차려놓고 먹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 걸, 하고 아내가 말했었는데, 이제는 무리가 온다. 배는 너무 많이 나오고 체중은 늘어가고 허리가 아프다. 운동량은 점점 줄어든다. 얼굴은 탱탱 붓는다. 치아도 조금씩 아프다. 톱니바퀴에 끼어 돌아가는 듯 자신도 자신을 어찌 할 줄 모른다. 이래서는 정말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 힘들다. 중년에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갈수록 힘이 든다.
105번 프리웨이 크랜셔 부근을 지날 즈음 갑자기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것은 매순간 갈등을 겪었다는 뜻일까? 그는 최근 들어 갈등을 많이 겪고 있다. 공항 날 1A나 2번 터미널을 받으면 그냥 패스한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1A는 멕시코항공이고 2번은 소형항공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승객이 거의 타지 않는 곳이다. 전에는 꼬박꼬박 가서 기다리다가 스타터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하면 그곳으로 갔는데 이제는 알아서 지나친다. 핑크가 걸려 다른 조가 공항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3,40분을 그냥 허비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알면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있고, 자신은 모르고 한 일이지만 범죄에 가담한 적도 한 번 있었다. 그 일을 그에게 소개한 사람도 일이 힘들어 쉽게 돈을 벌려고 그런 일에 가담했을 것이다. A 사의 등장으로 승객이 줄어들고 있다. 적은 승객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다가 보니 모두 공항으로 몰리고 있다. 공항 날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무리를 해서 몸이 망가져 택시를 그만 두고 떠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어떤 이는 정말 열심히 일한 사람이었다. 그 일밖에 할 수 없던 그 사람은 그 일로 돈을 벌지 못하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까? 이렇게 살벌한 미국인데? 의지가지없는 미국인데? 돈을 빌려줄 사람 하나 없는 미국인데? 누군가 보았는데 그가 엉덩이를 겨우 밀어 넣고 차에 타더라고 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남들은 택시 드라이버들의 이기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택시 드라이버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노조가 없어 힘을 쓸 수도 없다. 소송을 하고 싶어도 택시 회사도 이겨내지 못하는 일을 개인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일들이 스마트폰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되었고 앞으로 무인자동차가 나오면 택시 드라이버는 없어지고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종국에는 그들 세상이 될 것이다. 우체부들이 감원될 때 그는 그들의 아픔을 알지 못했고 사진관이 없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브와 아담이 삼켰던 사과와 같은 것을 베어 물고 있다. 지금은 달콤하겠지. 그러나 종국에는 독이 될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이 대목에서 그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시인은 ‘생명’을 노래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깊은 이치를 깨달았는지 놀랍다. 종국에 세상을 통치할 그들도 창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모든 것을 다 할 것처럼 날뛰는 인간들이지만 한 포기 풀도 창조해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고양이 한 마리의 심장도 소중한 것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 것처럼 공항 홀딩랏을 향해 프리웨이를 달려가는 이 시간 그의 가슴은 단단한 콘크리트에 스치우 듯 상처가 난다.
아, 감성은 죽고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이런 세상이 그는 안타깝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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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소설에 대한 나의 신념은 확고했다한 번도 당선되어 보지 못했다. 아내도, 아들도 내 소설을 읽어보길 포기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야. 아빠 소설은 재미가 없어. 둘 다 말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설에 대한 나의 신념은 확고했다. 소설이 세상의 흐름을 기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신음이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이 재미나 추리를 추구한다고? 시간 때우기라고? 그렇다면 나는 백 년 동안이라도 기다릴 생각이었다. 이 나이 되도록까지도 끊임없이 나를 충동하던 위대한 스승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시대를 외면하지 마라. 써라. 너는 기록자야. 그들은 전쟁터에서도 소설을 썼고, 음침한 시대 흔들리는 등불 아래 불안함 속에서도 한 자 한 자 새겼다.
윤성희 소설가와 은희경 소설가가 이 상을 심사하는 줄 몰랐다.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두 소설가가 내 소설에 일정 부분 지지를 보내준 것 같아 기쁘다. 미주한국일보가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감사하다. 새로운 힘을 받고 출발선에 섰다. 이제 새 소설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고 해도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한 문장을 가슴 속에 비수처럼 품고 살았다. 그 문장을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저를 안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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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 문예공모전 단편소설 심사평]
(은희경 소설가)본심에 올라온 여섯 편의 응모작이 모두 이민사회를 소재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성공담을 소개하거나 어려움을 토로하는 데에서 나아가 소수자의 문제의식, 고독과 정서적 연대, 가치관의 균열과 파탄 등으로 다양하게 사유가 발전하고 있어 반가웠다.
당선작인 이강천의 ‘고양이 밥 주는 남자’는 깐깐한 글이다. 디테일이 살아 있고 자기절제를 통해 안정된 문장을 구사한다. 사건 서술과 전개에도 솜씨가 엿보인다. 다만 안이하게 보일 수 있는 시 인용과 개인 처지에 대한 소회를 줄이고, A사와 관련하여 부조리한 사회적 구조와 이민사회에서의 개인적 무력감을 심도있게 다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지만 재미와 긴장감을 갖춘 수작이었다.
곽민선의 ‘가족의 완성’은 반어적인 제목이다. 이민과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부양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전통적인 가족구성원의 역할이 바뀌며 벌어지는 대립과 파탄을 잘 풀어나갔다. 아내의 분노와 억울함을 절제하여 좀더 객관화했으면 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결말의 반전과 압축적 묘사의 힘이 그런 단점을 덮어주기에 충분했다.
김태영의 ‘워렌의 푸른 바다’의 강점은 이미지 묘사이다. 그러나 때로 불필요한 비유가 글을 산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작과 끝이 도식적인 느낌이라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전체적으로 서술이 안정되고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다.
문학은 독창적인 세계이다. 인생의 비밀을 한 발짝 앞서 천착한다는 점에서 불온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응모작들이 낡은 이데올로기와 상투적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 더욱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보여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말솜씨와 글솜씨는 전혀 다른 것이며, 글솜씨는 소설 쓰기에서 극히 일부의 재능일 뿐이다. 무엇보다, 쓰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자면, 소설을 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읽는 일이며, 그것은 오믈렛을 만들 때 먼저 달걀을 깨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당선자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
(윤성희 소설가)
소설을 첫 문장을 쓰기 전과 쓰고 난 후의 세계로 나누어보자.
우선 쓰기 전의 세계가 있다. 그때의 내 머릿속에는 엉킨 털뭉치처럼 무엇인가 뒤죽박죽 가득 들어찼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 수다스러운 주인공들. 그 중 무엇을 쓸까? 가만히 누워 상상을 해보면 당장이라도 소설 한 편을 완성시킬 것처럼 의욕이 생긴다. 그래서 책상에 앉는다. 첫 문장을 쓴다. 이 첫 문장을 쓰고 나니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더이상 재미있지가 않다.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던 이야기들이 한순간 사라진다. 나는 재능이 없는가? 그것이 아니다. 원래 그런 것이다. 첫 문장을 쓰면 자연스럽게 두번째 문장이 따라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막막함. 이게 바로 시작이다.
심사평을 왜 이런 말로 시작하는지 의아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예심에서 읽은 많은 글들에 이 막막함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막막함이라고 말하니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바꾸어보자.
첫문장을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 고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많은 글들이 첫문장을 쓰기 이전의 단계, 그러니까 이야기가 머릿속에만 뒤죽박죽 들어차 있는 단계에 머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은, 특히 단편소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못지 않게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장르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문장 사이에 감춰두는 소설들이 부족했다. 그렇다보니 소설을 읽는 느낌보다는 시놉시스를 읽는 느낌을 받는 작품들이 많았다. 주인공이 자신의 사연을 나열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 작품을 읽다보니 아쉬웠다. 조금만 더 세련된 방식으로 감추고, 절제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면 훨씬 좋아질 작품들이었다. 주인공이 진실을 말했다고 진실이 바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무엇을 쓸까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조금 더 연구해보았으면 좋겠다. 소설의 형식미에 대해 고민해본다면 훨씬 즐거운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투고한 모든 분들의 건필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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