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동네서 갈비 구워 팔던 임성우 고수
권총차고 캐리아웃 가게 했던 장경호 씨
-플로리다 마켓의 사람들
워싱턴 D.C. 기차역인 유니온 스테이션 뒤쪽으로 큰길인 뉴욕 애비뉴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플로리다 애비뉴를 만난다.
미국에서 벙어리 대학교로 유명한 캘러댓(Callaudet) 대학의 담을 끼고 흑인들의 전통시장이었던 파머스 마켓 터에 한인들의 도매상가가 형성되었다. 한인 식품도매상들이 주축이 되어 하나씩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여 80년도에는 50여개가 넘는 한인업체들이 도매 상가를 이루었다. 현재도 많은 한인업체들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름해서 워싱턴 플로리다 마켓.
초창기 상인들 중에는 배추장사로 시작하여 기업으로 성장시킨 삼왕식품의 최상오, 고 최상용, 최상만 형제들, 주미대사관의 해군무관을 하다 식품도매상을 경영했었던 고 조한용 씨(전 워싱턴한인회장), 워싱턴실업인협회 회장을 지냈던 한국식품(KFC)의 고 박재선 씨, 미 전역에 20여개의 대형 수퍼마켓 체인 그랜드마트를 창업한 강식품의 강민식 씨, 현재 워싱턴 평통회장을 맡고 있는 수입 주류도매상인 원트레이딩의 황원균 씨, 워싱턴대한체육회장을 지냈던 김치공장의 고 윤훈 씨, 한 달 간 워싱턴한인연합회장으로 있다 병마로 유명(幽明)을 달리했던 세븐세븐잡화 도매상의 고 김옥태 씨, 굴지의 부동산 투자회사로 성장한 파머스마켓의 최상권 씨, 잡화도매상 점보 트레이딩의 이정보 씨, 베스트 식품장비회사의 최상봉 씨 등이 있다.
당시 필자도 무역회사를 경영하던 형의 권유로 플로리다 마켓 내에서 창고와 매장을 가지고 무역과 수입물품 도매상을 경영하며 장사꾼으로 변신을 시도할 때이다.
-언덕 위의 돼지집
워싱턴은 연방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 관공소와 박물관 등이 모여 있고 해외 각국의 공관과 주재원들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빠져나가 거주지인 버지니아나 메릴랜드로 나가면 거리는 텅텅 비며 워싱턴의 절대다수 주민인 흑인들의 세상이 된다. 워싱턴의 밤은 난폭한 흑인들의 무법천지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곳이다.
80년대 워싱턴의 흑인지역은 영세한 빈민촌이 대부분이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흑인들이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곳이지만 갓 이민 온 한인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험악한 곳이었다. 술 취하고 굶주린 흑인들이 언제 폭도로 변할지 모르는 위험하고 살벌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한인들은 전쟁터에 출전하듯 비장한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하였다. 생계를 위한 돈벌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임성우 씨는 온 가족 이민으로 워싱턴에 정착한 분으로 태권도로 단련된 장골에 단단한 몸매의 미군 출신이다. 바둑도 상당한 고수여서 처음부터 싸움바둑으로 시작하여 난타전으로 끝내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힘 바둑이다.
그가 이민생활을 위해 부인과 함께 흑인들 지역에서 참나무 돼지갈비 구이집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름 하여 ‘언덕 위의 돼지집(Hog on the Hill)’이다.
임씨와의 인연은 그의 부인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임씨 부인이 우연히 플로리다 마켓에 들렀다가 서로 알게 되어서 필자와는 둘도 없는 바둑 호적수가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바둑 열성 동호인으로 장경호 씨란 분이 계신다. 장 씨 역시 흑인지역에서 부부가 함께 캐리아웃 가게를 운영하던 분으로 동네가 하도 험악하여 안전을 위한 호신용으로 총을 두고 일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당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린아이를 데리고 장사를 하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짐작했다.
장 씨는 필자의 플로리다 마켓 사무실에 바둑 두러 자주 왔었다. 장 씨는 요즈음도 가끔 기원에서 만나는데 그때 그 어린아이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성공하여 미국경제가 호황을 누렸다. 많은 한국의 제품들은 미국의 관세 면제를 받는 등 우호적인 경제혜택을 받을 때였다.
워싱턴 지역의 한인 이민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한인타운도 버지니아 애난데일에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많은 한인사업체가 태동(胎動)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싱턴 한인이민 경제성장의 전면에는 불철주야 새벽별을 보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개척정신으로 임했던 워싱턴 한인상인들과 위험을 무릅쓰고 흑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자영업으로 생활했었던 초창기 이민자들의 노고(勞苦)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워싱턴 플로리다 마켓 시절 자주 모여서 바둑 두던 임성우 고수, 이종석 고수. 장경호, 유선영, 임종헌, Dr 윤성원, 박진 고수, 곽한용 씨 등이 생각난다. 자, 우리 언제 다시 만나서 바둑 한판 벌려 보자구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choi1581@daum.net
풍운재 최환정(Charles Choi)
미국바둑협회(AGA) 공인 7단
워싱턴바둑동호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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