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센터빌에 있는 자택에 미주 심훈기념관을 둔 심재호 선생이 부친 심훈 친필전시회에 선보일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위). 심훈, 김기진, 한무숙, 이광수(가운데줄 왼쪽부터), 김형석, 김주영,김말봉, 이어령(세째줄 왼쪽부터).
심훈- 김기진- 한무숙- 이광수- 김형석- 김주영- 김말봉- 이어령
문학적 성과-삶 정리
기념·추모사업 적극적
수집한 유품 보관도
창작의 길을 걸은 작가들. 그들의 문명(文名)의 뒤에도 가족이란 이름의 핏줄들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의 혈연적 자취는 모국어가 희미해지는 워싱턴, 이 이역(異域)의 땅에도 뚜렷하다. 춘원 이광수, ‘상록수’의 심훈, 한국 근대 문학비평의 개척자인 팔봉 김기진, 대중소설의 지평을 연 김말봉, 동양적 감성의 작가 한무숙, 수필가 김형석 교수, ‘객주’의 김주영, 한국의 석학 이어령 교수…. 요즘 들어, 선대(先代)가 이 지상에 남긴 문학적 성과와 삶을 정리하고, 되살피고, 알리는 기념사업에 나선 후손들의 열정이 빛나고 있다.
최근 선대 기념사업에서 두드러지는 후손은 민족작가 심훈(1901-1936)의 셋째 아들 심재호 씨(79). 버지니아 센터빌에 거주하는 심 씨는 오는 27일(금)부터 3월1일까지 부친인 고 심훈 친필전시회를 페어팩스에서 연다.
심 씨는 “아버지가 남긴 4천여점의 친필 원고는 세계 작가들 중에도 유례가 드물다”며 “해외에서는 처음 여는 이 전시회는 약소민족이 당한 작가의 증언이자 저항의 기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자로 활동하다 1974년 도미한 심 씨는 2007년 현 자택에 미주 심훈기념관을 설립하고 그간 각고의 노력 끝에 수집한 선친의 유품들을 보관해왔다. 지난해에는 심훈 선생이 소설 ‘상록수’를 집필한 충남 당진시의 필경사(筆耕舍)에 문화재청, 충남도, 당진시와 협력해 기념관을 건립하는데도 앞장서왔다.
한국 근대 평론의 새 장을 연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 1903-1985)의 딸 김복희 씨도 아버지 추모사업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버지니아 맥클린에 거주하는 김복희 씨(87)는 3남1여를 둔 팔봉의 외딸로 이화여대를 나와 성악가로 활동해온 인물. 그는 오래전 ‘아버지 팔봉 김기진과 나의 신앙’을 펴내 아버지의 삶과 문학의 내면을 전해줬다.
89년에는 형제들과 기금을 기탁해 ‘팔봉 비평문학상’을 제정, 매년 한국일보에서 시상하고 있다.
팔봉 선생은 ‘해조음(海潮音)’과 ‘청년 金玉均’ 등의 장편소설 작가이면서도 문학비평에 계급성과 과학성을 도입함으로써 한국 문학비평에 일대 전환을 이룬 위업을 남겼다.
김복희 씨는 “올 5월은 아버지가 작고하신 지 30년 되는 해라 워싱턴에서도 간단한 기념행사를 가질까 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무숙(韓戊淑, 1918-93년)을 기리는 기념사업은 일찌감치 워싱턴에서 진행형이다. 그의 장녀인 김영기 교수(74, 전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어문학과장)는 어머니 이름을 딴 ‘한무숙 한국 인문 콜로퀴움(학술간담회)’을 1995년 설치해 미국인 교수 2명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인문학 토론의 장으로, 한국 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한무숙은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 등의 단편과 ‘빛의 계단’, ‘석류나무집 이야기’ 등의 장편을 남겼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문인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외아들 이영근 씨는 메릴랜드 타우슨에 거주하고 있다.
춘원은 19세 때 고향 처녀 백혜순과 구식 결혼을 했지만 와세다 대에 유학한 그는 신여성이자 의사인 허영숙(許英肅)과 사랑에 빠져 본처와 이혼하고 1남2녀를 두었다.
부친의 납북과 친일 논란 속에서 한국에서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을 그의 세 자녀들은 모두 1950년대 도미했다.
장남 이영근 씨(86)는 존스 홉킨스대 원자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했으며 부인 이옥경 씨는 타우슨대 미대 교수로 활동하다 역시 은퇴했다.
딸인 이정란(83) 씨는 영문학자이자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막내인 이정화 씨는 이정화 펜실베이니아 의대 부속병원 연구실 분자생화학 교수로 있다 은퇴했다.
맏이인 이영근 교수는 1990년대 북한을 방문해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고 볼티모어 선 지에 북한 방문기를 기고하기도 했다. 이들 삼남매들은 남양주 사릉(思陵)에 있는 춘원의 구(舊) 가옥을 문학원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춘원의 며느리인 이옥경 교수는 “아버님 기념사업은 막내 시누이가 한국에서 춘원학회와 함께 하고 있으며 올 3월 시카고에서도 작은 학회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명수필로 서울의 지가(紙價)를 올린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金亨錫) 교수. 그의 맏딸 김성혜 씨(70)는 현재 맥클린에 거주하고 있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와 미국에 유학,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 씨는 ‘서울대보다 하버드를 겨냥하라’ 등 다양한 교육서를 펴내며 부친의 뒤를 이어 교육학자로 활동해왔다.
김성혜 씨는 “아버님은 올해 96세이지만 강연을 다녀도 한두 시간은 원고도 없이 계속 서서 할 정도로 아직 건강하시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자유를 즐기고 싶어 하신다”고 근황을 전했다. 김형석 교수는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1959년 삼중당에서 간행한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은 전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널리 읽혔다. 2013년 강원 양구에 기념관이 설립됐으며 딸이 있는 워싱턴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일제 말기 혜성처럼 등장하며 대중소설의 지평을 연 김말봉(金末峰, 1901~1961).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찔레꽃’ ‘밀림’ ‘생명’ 등 30여편의 신문 장편소설로 문명을 얻었다. 현재 인패스 청소년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유홍종 씨(54)가 그의 외손자이다. 유 음악 감독은 “2001년에 외할머니 탄생 100주년 추모 모임이 한국에서 열렸다”며 현재는 별다른 기념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지휘자 금난새의 부친인 금수현 작곡가가 김말봉의 사위이기도 하다.
장편소설 ‘객주’로 민중의 삶을 재현해낸 작가 김주영(金周榮, 76) 선생은 1남2녀를 뒀다. 그 막내 딸 김태미 씨가 버지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남편인 노석현 씨(그레이스 홈 부동산 에이전트)와 결혼 후 12년 전 도미했다 한다. 딸이 워싱턴에 사는 관계로 김주영 선생도 워싱턴을 찾기도 했다.
수필과 평론으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의 조카인 그레이스 김 씨는 얼마 전까지 페어팩스에 거주했다. 이어령 교수가 작은 아버지이다. 그레이스 김 씨는 2년여 전 딸이 있는 하와이로 남편인 김종빈 박사와 이주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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