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인사회의 자랑이 된 행사가 있다. 매년 가을 버지니아 센터빌의 불런 공원에서 열리는 ‘코러스 페스티발’이다. 한국과 미국을 뜻하는 단어의 앞 글자를 따 만든 ‘코러스(Kor-Us)’ 한인사회는 물론 소수계, 나아가 주류 백인 커뮤니티도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역 명물이 됐다. 해마다 사흘간 축제장은 인파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한인연합회가 12년 전 축제를 처음 개최했을 때 한인 커뮤니티 단합과 추석 명절을 대신한 ‘우리들’만의 놀이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지역사회에 한인들의 존재감을 크게 과시하고 한류를 뽐내는 대표적인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한인보다 인구가 더 많은 소수계들도 감히 이런 규모의 행사를 기획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러스 축제는 금전적인 손익계산에 앞서 크게 성공한 문화 기획 상품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이슈와 아젠다를 선점해야 한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이라는 숙제와 관련해 코러스 축제의 성공이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워낙 커져서 코러스 축제가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기가 쉬워졌다는 설명도 맞지만 그것만이 성공의 유일한 인자는 아니었다.
뭐든지 하면 ‘화끈하고 크게’ 판을 벌이는 습성, 넉넉한 나눔 풍속,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마음만 맞고 또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손발을 맞춰 해내는 조직력과 치밀함 등 한인들이 가진 우수한 능력들이 모아져서 치러지는 것이 코러스 축제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느 민족보다 찬란한 문화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라는 매력은 코러스축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한인사회의 정치력 향상에 목을 매는 것은 다름 아니다. 주류사회의 주목을 받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한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함이다. 숫자는 비록 얼마 안 되지만 미국 역사에 흔적을 남기고, 또한 보다 새롭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미래를 건설하는 일에 당당한 일원으로 참여해야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리 많지 않은 유대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계와 재계, 언론계, 문화계를 주무르듯 미주 한인들도 단지 수혜자라는 위치를 벗어나 미국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개척자로 함께 서겠다는 각오가 정치력 향상이라는 어쩌면 막연한 목표에 앞서 한인들이 가져야할 의식전환이다.
코러스축제는 미국에 사니까 미국식 방식을 흉내내는 것도 좋지만 자신 있게 우리 것을 내놓으니 어느새 가장 미국적인 문화 상품으로 용납되는 현상은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 가진 최대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더욱 능동적(proactive)으로 주도해야 할 분야는 더 있다. 그중 하나는 교육이다.
<이병한 기자·2면으로 계속>
한인들의 교육열은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자주 언급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부끄럽다. 자기 자녀에게만 국한된 편협하고 소인배적인 열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뛰어넘어 지역사회와 주, 미국 전체의 교육의 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종국적으로 미국의 진로를 바꿔놓을 교육 개혁은 한인사회에 맡겨진 몫이 있다.
또 하나를 언급하자면 한인들에게는 이민자들로 이뤄진 미국사회의 화해와 인류 평화에 일조해야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북통일, 북한 인권이라는 당면 이슈가 걸려 있어 더욱 시급하다. 세계 유일 분단국가라는 치명적인 약점, 일개 소수계 민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가 오히려 시선을 끌고 주위를 환기시키는 확성기가 될 수 있다. 약자를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미국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은 소수계 민족에게 천금의 기회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정치력이란 정부 고위직에 몇 명을 진출시켰느냐, 선거에서 몇 명의 한인 후보가 당선됐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주 한인사회가 가진 총체적인 힘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총체적인 힘이란 우리만의 문화요, 아름다운 가치요, 아이디어요, 개척자 정신이요, 또한 희생하고 나누는 넉넉한 마음에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미주 한인 모두는 나름 제 위치에서 정치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각자가 창의적이고 유익한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대의를 품은 자녀 교육에 힘쓰고, 사회봉사에 힘쓰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힘쓸 때 한인사회의 정치력은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획기적으로 정치력 향상을 가져오는 ‘묘약’은 없다. 소수이되 미국의 주인처럼 살아가는 한인들에게 주류사회의 시선은 모이기 마련이고 그 때부터 큰 변화는 시작된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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