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인권문제 안보리 개입 촉구’ 8년 전부터 있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리 비젤(왼쪽)과 바출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2006년 11월16일 주유엔 체코대표부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제61차 유엔총회 부대행사로 마련한 북한인권회의에 참석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유엔>
세계 인권학자 3명, 2006년 유엔총회 당시
“북 인권침해, 핵문제와 동등하게 다룰 것”촉구
69차 유엔총회 앞두고 위키리크스 폭로
<유엔본부=신용일 기자> “저명인사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를 촉구했다.”
2006년 11월16일 오후 2시 존 볼튼 당시 주유엔 미국대사가 워싱턴 D.C. 국무부 본부에 보낸 비밀 외교전보의 제목이다.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최근 ‘케이블게이트’(Cablegat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폭로한 이 전보는 엘리 비젤, 바출라프 하벨과 쉘 분데빅이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유엔 간부들과 회원국 대표들을 공개·비공개 접촉하며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안보리의 신속한 행동을 주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북한이 자국민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반인도범죄를 제도적으로 행하고 있다”며 “따라서 안전보장이사회가 ‘보호의 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 주의 아래 핵 문제와 함께 나란히 인권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보고다. 특히 “김정일 체제에 정치범들의 석방과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 개선 등 구체적인 행동을 안보리가 요구해야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비젤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스의 홀로코스트를 생존한 저명 인권학자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공산독제체제 체코의 ‘민주화 아버지’로 불리는 하벨은 자유총선 체코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인권운동가. 분데빅은 노벨평화상의 나라인 노르웨이를 대표한 전 총리이다.이들 거물급 세계 인권인사 3명이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1차 총회의 부대행사로 주유엔 체코대표부가 마련한 북한인권회의에 참석해 한 목소리로 안보리의 직접 개입을 촉구한 것이다.
이들 3인방은 당시 열린 공개회의에서 인권탄압 상황을 고발하는 157 페이지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북한의 정치적 탄압과 인권문제가 세계 안보와 평화에 북한 핵 문제에 버금가는 중요한 사안임을 강조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16일 개막한 제69차 유엔총회는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해 유엔과 안보리의 국제형사조치 개입을 촉구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권고 내용이 담긴 북한인권결의안을 처음으로 심의할 예정이다.따라서 비젤, 하벨과 분데빅이 8년 전 유엔 관리들과 회원국 대표들에게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안보리의 개입을 촉구하며 제출한 북한인권 보고서가 다시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3인방의 주문을 받아 2006년 10월 미국 워싱턴 D.C. 법무법인 DLA 파이퍼와 비정부기구 북한인권위원회(www.hrnk.org)가 공동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안보리는 지난 1994년 르완다 대학살과 관련 만장일치로 채택한 2005년 결의에 의거해 북한에 특정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
‘보호의무 불이행: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행동 촉구’(Failure to Protect: A Call for the UN Security Council to Act in North Korea)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유엔 안보리가 회원국들이 자국민을 명백한 인권침해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R2P)가 있다는 주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함에 따라 새로운 국제외교 도구가 생겨났다”며 “국가들이 자국 영토에 대한 주권은 유지할지라도 만일 자국민을 극심한 인권침해로부터 보호하지 못할 경우 이제는 국제사회에 유엔 지역기구에서부터 안보리까지를 동원해 개입할 의무가 주어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김정일과 북한 정부가 반인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가 명백하다”며 “북한은 1990년대 식량난에서 최고 100만 명까지, 어쩌면 그보다도 더 많은 자국민들이 죽도록 놓아두었고 북한 아동 37 퍼센트의 만성적 영양실조를 포함해 굶주림과 기아 문제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외에도 북한은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현대판 ‘강제 노동수용소’(gulag)에 감금해 놓았으며 지난 30년에 걸쳐 그 제도에서 40만 명이 넘게 사망한 것으로 추산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러한 북한 정부의 반인도적인 정책이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북한 핵실험에 대해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1718호) 대상에 포함 된다”며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안보리가 북한 상황에 개입할 것을 강력히 촉구 한다”고 결론지었다.
볼튼 대사의 비밀 전보에 따르면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분데빅은 개별적으로 볼튼 대사를 방문했다. 튼 대사는 이 자리에서 “분데빅은 10년전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와 한국 방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기존상태로서는 지역 안정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고 (탈북)난민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안보리의 개입을 포함해 유엔이 (북한)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국과 ROK(대한민국) 모두의 국익에도 부합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전보는 이에 볼튼 대사가 “미국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오고 있고 안보리 결의 1718호의 전문에 인권우려에 관한 제한적 언급을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며 “그러나 DPRK의 인권침해 논의가 북핵 6자회담 절차를 방해할 수 있다고 보는 일부 이사국들로 인해 안보리에서 “거대한”(enormous) 반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밝혔다.
또 볼튼 대사가 분데빅에게 인권문제에 적극 나선 3인방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 뒤 “(한반도) 지역, 구체적으로 한국을 상대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활동을 강화하는 노력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하자 분데빅이 11월17일 금요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당선자를 만나 북한 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강조할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는 당시 한국 노무현 정부가 대북포용정책으로 북한인권 문제 접근을 기피하고 있는 것과 관련 볼튼 대사가 분데빅 전 총리의 협조를 요청하자 분데빅이 차기 유엔사무총장 취임을 앞둔 반 한국 외무장관을 만나 그 같은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응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 인권 3인방이 참석한 유엔 북한인권회의는 유엔 간부들과 회원국 대표부 관계자들 100여명이 참석해 국제 언론은 큰 관심을 갖고 보도했으나 당시 한국에서는 AP 통신의 유엔발 기사를 번역한 뉴시스 통신사의 보도가 유일해 한국인들에게는 회의 자체는 물론 보고서 내용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인권 문제를 멀리한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앞서 2006년 8월15일 윌리암 브레닉 주유엔 미국대표부 정무공사가 워싱턴 D.C. 국무부 본부에 보낸 비밀전보에서도 드러난다.
브레닉 공사의 전보는 갓 임명된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대북특사가 최용진 당시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를 예방 한 사실을 보고한 내용이다.
전보는 레프코위츠 특사가 다가오는 10월 유엔총회 제3위원회(사회, 인권과 문화)에서 심의될 예정인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한국이 기권표를 행사할 경우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히고 찬성표 협조를 요청하자 최 대사가 “그에 대해서는 4년 전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며 그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결정(찬성표)은 정부 최고위급 차원(대통령)에서 내려질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그해 11월 제61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2005년 기권 입장을 바꿔 찬성표를 던졌으나 2007년 다시 기권표로 돌아섰다가 노무현 정권이 교체된 이후인 2008년부터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해 계속 찬성표를 행사하고 있다.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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