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길 아름답게 떠나도록 고인 마지막 길 배웅”
고인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게 배웅해주는 30대 한인 여성 장례사가 있다. 그는 이승의 삶이야 어떻든 마지막 길에서는 누구나 외롭게 떠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고인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직업에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먼 길 아름답게 떠나도록 고인을 곱게 화장도 해준다. 고인의 삶과 유가족의 슬픔에 함께 웃고 울기도 한다. 매일매일 고인들에게 ‘아름다운 배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뉴저지 중앙장의사의 하혜민(34) 장례사이다.
편안한 또 하나의 가정
“장의사(funeral home)는 편안한 또 하나의 가정입니다”
하혜민(34) 장례사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앙장의사에서 공부하고 뛰놀면서 지내왔다. 장의사에 대한 개념이 없이 그냥 편안하고 아늑한 또 다른 가정으로 여기며 생활한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장례사’는 아니었다. 어릴 적엔 수녀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자라면서 과학자의 꿈을 품고 브롱스사이언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서울대 의예과 99학번으로 대학갈 나이에는 의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예과 6년 과정을 마친 예비 의사로 그쳤다. 응급실 인턴시절 죽음을 앞둔 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접하면서 죽음으로 슬픈 이들에게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그 일이 바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행복해 하던 삶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고인을 편안하게 배웅할 수 있는 장례사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망설임 없이 뉴욕에 돌아와 2006년 맥알리스터 장례대학에 입학해 장례학과를 마치고 2008년과 2009년 뉴욕과 뉴저지 공인장례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아버지의 후배이자 정식장례사로서 일을 시작했다.
하 장례사는 “어린 시절부터 장래의 꿈이 여러 번 바뀌긴 했지만 직업만 다를 뿐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며 “장례사의 길을 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인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편히 주무시는 모습처럼
뉴욕, 뉴저지 공인장례사(Funeral Director)로서 장례 상담부터 고인을 직접 모시고 슬픔에 잠긴 유족을 마음으로 달래주며 복잡한 장례절차를 불편함 없도록 조율하고 안내해 주는 일을 한다. 때문에 존중, 사랑, 예우가 몸에 배어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도 시신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소중한 내 가족처럼 고인에게 예우를 갖추고 있어서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활발하며 붙임성 있는 성격은 고인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여자라고 더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염, 영구화장 등 장례절차의 모든 업무를 다 할 수 있다. 장례 상담을 할 때는 오히려 여성 장례사들을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유족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한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기 때문에 고인의 인자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영구 화장을 통해 고인의 사진을 보면서 본래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시신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한다. 시신은 체온이 다르기 때문에 고인들에게 사용하는 전용 화장품으로 장례 미용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인의 얼굴빛을 원래 피부 톤으로 화장해 드리면 돌아가신 게 아니라 편히 주무시는 것 같다며 유족들이 고마움을 표현한다”며 “장례 미용은 유가족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장례사는 봉사하는 마음과 보람과 자부심이 있어 일을 즐기는 편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일 년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기 때문에 불규칙한 스케줄로 자유롭지 못하고 연중무휴 언제든 근무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장례사로서 힘든 점이라고 귀띔한다. 그는 “장례사는 유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되어야 한다. 고인은 살아 주무시는 것처럼 살아생전의 모습 그대로 예쁘게 만들어 유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이 원하는 대로
“어떤 식으로 장례를 할까요?” 가 아닌 “어떻게 장례를 치르실 건가요?”라고 묻는다.
고인이 생전에 원했거나 유족들이 원하는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최선을 다 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유족들의 의견이 분분해 싸울 때도 있지만 최종 장례절차 결정은 꼭 유족의 뜻을 모아서 할 수 있도록 한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좀 더 편하게 모시고 유족들도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즘은 자신의 장례를 사전에 준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장례를 치르고 있다. 최근 돌아가신 한 할머니의 장례식도 그렇게 진행됐다. 장례식 때 평소 좋아하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틀어 놓고 관의 꽃장식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타와 이름을 새겼다. 고인이 생전에 원했던 것이기에 유가족들도 매우 만족하고 행복해했다고 한다.
장례를 영화촬영 하듯이 한 적도 딱 한번 있었다. 패션디자이너인 딸이 숨진 어머니를 위해 장례식장의 커튼, 조명, 영정사진 등 모든 인테리어를 스스로 꾸미고 장례를 치른 것이다. 트럭까지 동원해 장례식장을 영화세트장처럼 꾸민 것도 유족이 원하는 것이라 그렇게 하도록 배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고인과 유족이 원하는 장례라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 이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괜찮은 장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고인과 유족들을 만났지만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당황해 하는 유가족들이 참 많아요. 죽음은 연습할 수 없지만 준비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요즘은 나이에 상관없이 유언장을 작성하고, 장례 에이전트를 선임하는 등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유족들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 같다”고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죽음과의 만남은 순간의 소중함을
“수많은 고인과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죽음 앞에서 펼쳐지는 갖가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처럼 보다보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수많은 죽음 가운데 아이와 젊은이들의 죽음에 더욱 가슴 아파한다. 나이가 들어 숨진 고인의 유가족들은 슬픔 가운데도 지나간 고인의 추억을 되새기며 행복해 하지만 짧게 살다간 죽음은 가족들에게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남기기에 가슴이 더 아플 뿐이란다. 물론 어린 아이들을 남긴 젊은 부부의 죽음도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유족들은 누구나 고인들이 천국에 갔다고 믿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관에 넣어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성경책, 자녀 편지, 가족사진 등이 가장 많다. 목마를까봐 물도, 골프를 좋아했으니 골프채도, 추울까봐 이불도, 사계절용 옷을 챙겨 주기도 한다. 평소 좋아하던 콜라도, 눈이 안 좋았으니 불편하지 말라고 안경을 넣어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누구도 죽은 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적이 없으니 저승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며 “살아생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한 것을 고인이 가는 마지막 길에라도 다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 같은 것 같다”고 말한다.
행복은 가까운 사람에게 잘 하는 것
“행복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가족과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며 사는 것”
중앙장의사 하봉호 장례사와 황미광 부부의 1녀2남 중 장녀로 태어난 그는 삶에 있어서 가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2007년 성당 피정에서 만난 남편과 주말마다 버지니아와 뉴욕을 오가는 2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그리고 현재 2년 터울의 세 딸의 엄마가 됐다. 결혼을 통해 나의 식구가 생겼고, 친정과 시댁의 식구까지 한 가족이 됐으니 그저 행복할 뿐이란다. 가족을 삶의 1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그는 “아버지가 지금 하고 계신 무료 추석성묘, 자살예방세미나, 행복세미나, 사랑 주제의 에세이 콘테스트 등도 한인 가정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행사로 준비한 것”이라며 “가족이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해 진다”고 가족의 중요함을 거듭 강조한다.
지금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고인이 마지막 길을 편하게 가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장례사로서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런 그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인터뷰 내내 고인과 유족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한결같은 정성’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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