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위락공원 할리웃 유니버설 스튜디오 관광의 압권중 하나는 바로 스튜디오 투어다. 스튜디오 곳곳의 영화 촬영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투어에는 매년 수 십 만명이 찾는다. 특히 스튜디오 투어 중 멕시칸 빌리지는 오랜 기간 인기를 끌고 있는 장수 코스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멕시코 마을에 갑자기 폭우가 덮치며 순식간에 홍수 사태가 나면 관람객들은 화들짝 놀란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쏟아지는 물의 양은 자그마치 1만여 갤런에 달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지를 데리고 이 투어를 관람했다. 친지는 “어머, LA는 가뭄이 심각하다는 데 저렇게 많은 물을 하루에 몇 십 차례나 낭비해도 되나”라며 걱정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캘리포니아의 심각한 물 부족 사태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며 한국에서 온 친지도 어느 새 절수모드가 되었나보다. 물론 그의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이 물은 당연히 리사이클 된다.
캘리포니아는 지금 지독한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주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가뭄으로 분류되는 ‘5단계 지역’이 주 전체의 80%에 달한다. 가뭄의 후유증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LA 일원을 누비며 물 낭비 단속을 벌이는 ‘워터캅’이 등장한 것은 물론 농장들은 앞 다퉈 물을 많이 먹는 아보카도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물을 적게 먹는 올리브 나무를 심고 있다. 농지는 쩍쩍 갈라져 거북등이 되었으며 요세미티의 폭포마저 바짝 말랐다.
최악의 가뭄은 우리 집 텃밭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여든을 넘긴 모친이 소일거리로 가꾸는 작은 텃밭의 고추며 가지며 토마토 등 채소들은 목이 말라 시들 시들이다. 텃밭을 통해 농사의 작은 행복을 만끽하는 모친은 물을 넉넉히 주고 싶지만 수도요금 걱정이 앞선다. 심각한 물 부족 사태도 나 몰라라 외면하기 힘들다며 모친은 결국 텃밭 절반을 갈아엎었다.
이웃들의 잔디 모습도 초라해졌다. 제때 물을 주지 못해 푸르게 물들어야 할 잔디들이 곳곳에서 누런 속살을 드러냈다. 차라리 잔디를 깔지 않은 것보다 더 흉하다. 이렇게 누렇게 된 잔디에 짙푸른 색을 입혀주는 신종사업까지 등장했다니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가뭄이 그저 절수나 수도요금 폭탄 정도의 걱정과 불편만 초래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농축산업 비중이 높아 혹독한 가뭄은 일자리를 뺏어가고 물가마저 앙등시킨다. 2009년 가뭄 때 캘리포니아 농업은 3억4,000만여 달러의 피해를 입었으며 1만명이 실직했었다.
문제는 캘리포니아의 물 부족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는 보통 11~3월이 우기인데 어찌된 일인지 2007년부터 강수량이 줄면서 저수량은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술 더 떠 금세기 안에 캘리포니아 강수량이 24∼30%나 급감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캘리포니아 인구는 팽창하고 최근 몇 년간 급수 상황 악화에도 불구 주민들의 물 사용량은 늘어나고 있으니 이래저래 걱정이다.
캘리포니아의 가뭄은 올해만의 특별한 기상현상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가뭄 관리와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
이런 정부의 대책만큼 중요한 것이 주민들의 절수 노력이다. 우선 오랜 생활 속에 뿌리 깊게 박힌 물 낭비 습관부터 고쳐보자. 세면시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거나 오랜 시간 샤워하기, 컵을 사용하지 않고 수돗물을 틀어놓은 채 양치질하기 등은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의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모이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불, 석유, 원자력, 신재생에너지에 이은 제5의 에너지로 ‘에너지 절약’을 제시한 바 있다. 가뭄을 이겨내는 일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힘을 보탠다면 ‘제5의 에너지’ 창출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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