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훈 전 행장 별세
▶ 은퇴 후 예술가로 왕성한 작품활동
정원훈 전 행장이 전시회에서 선보인 대표작‘팜 플라워’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별세한 정원훈(93) 전 행장은 ‘한인 은행계의 대부’로 통한 타고난 금융인이었다.
60여년을 금융계에 몸담아서만이 아니다. 그는 고객 앞에선 가족처럼 포근하고 돈 앞에선 얼음처럼 냉정했다. 그래서 한국과 LA를 오가는 한평생 금융계 생활에서 잡음 한 번 일으킨 일이 없을 정도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가진 완벽한 금융인이었고, 한편으로는 평생 미술과 서예를 사랑하고 노년에서 새로운 배움을 놓지 않았던 예술인이자 학자이기도 했다.
정원훈 전 행장은 지난 60년간 만주와 한국, 미국의 금융계에 몸을 담으며 가주외환은행을 비롯, 한미, 새한, 아시아나은행 등 4개의 한인 커뮤니티 은행을 설립한 미주 한인 금융계의 산 증인이었다.
정 전 행장은 1941년 만주 중앙은행을 시작으로 저축은행(제일은행의 전신), 한국은행을 거쳐 한국외환은행에서 전무까지 지냈으며, 도미 후 또 다시 28년간 한미, 새한, 아시아나 은행 등의 초대 행장을 거치면서 한국에 이어 이번에는 미주 한인사회 은행계의 기반을 다지는데 혁혁한 족적을 남겼다.
정원훈 전 행장은 금융계에 몸담으면서도 한 평생을 그림과 벗하며 살아왔다.
은퇴 후에는 남가주한인미술가협회와 미주한인서예협회 정회원으로 수차례 개인과 단체전을 가지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부인 정애경씨와 지난 1999년 사별 이후 그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미술과 서예활동이었다.
정 전 행장이 선뵌 작품은 유화 29점과 서예 7점 등 총 36점. 대부분 2001년 은퇴한 이후 작업한 것들이다. 그의 인생궤적을 보여주듯, 디자인에 본인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간 가주외환 및 새한, 본인이 직접 고안한 한미, 아시아나 은행 등의 로고로 이뤄진 그림도 있다.
그는 화가로서도 UCLA와 오티스 아트 칼리지에서 미술수업을 받고 개인전도 여는 등 불꽃처럼 살았다. 1996년과 2004년에는 한국의 하나은행 갤러리와 포스코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정 전 행장의 당시 작품 중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귀천’(歸天)이라고 쓴 한문 서예도 있다.
정 전 행장은 한국일보 창간 기념 휘호로 飛翔(비상), 日新日日新(일신일일신) 등을 남겨 독자들에게 삶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고 정원훈 전 행장 약력>
▲1920년 평북 철산 출생 ▲경성고등상업학교(서울대 상대 전신) 졸업 ▲매서추세츠주 클라크대 경제학 석사 ▲만주국 중앙은행 ▲저축은행(제일은행의 전신) 론 오피서 ▲한국은행 조사·국제부장, 전무 ▲한국외환은행 창립멤버·전무 ▲가주외환은행 설립·초대행장 ▲가주외환은행 고문 ▲한미은행 설립·초대행장 ▲한미은행 고문 ▲새한은행 설립·초대행장 ▲아시아나은행 설립·초대행장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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