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퓰리처상 사진전’ 관람 후 내게 제일 깊은 인상을 남긴 사진들은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또렷한 눈망울이 찍혔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감상하느라 몰랐지만 생각해보니 뇌리에 남은 이유는 그 눈들이 상기시켜주는 어떤 기억 때문이었다.
기억의 주인공은 바로 고등학생 시절 봉사 활동을 갔던 남아공 한 중학교에서 만난 여학생이다. 그 친구는 비록 짧으면 짧다 할 수 있는 이 주일간의 시간 동안 생전 처음 본 신기한 동양인 이였던 나를 잘 따라 주었던 학생이었다. 비록 언어가 달라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창인 눈을 통해 교감하며 많이 친해졌었다.
마지막 날 자기를 잊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도 내 손에 쥐여 주었기 때문에 더욱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특별했고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은 분명 소중했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시간에 쫓기다보니 모두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로 분류되어 잊혔다.
곧 나는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 중에 하나로 꼽히는 고3이 되었고 입시 준비에 혈안이 되어 학생들에게 했던 내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기억하지도 못했다. 나중이 돼서야 마지막 날 찍은 기념사진을 보며 추억할 뿐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나처럼 그 순간에는 깊은 감정이나 의미를 느끼지만 얼마 안 되면 흘려보낸다. 그렇기에 어느 방식으로든 기록을 남기는 것 같다. 사진전 덕분에 덮어두었던 이런저런 회상과 그에 대해 반성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어디 갔다 왔는지 궁금해 하셨다. 사진전에 다녀왔다고 대답하자 엄마는 살짝 실망한 목소리로 “아, 엄마랑 가기로 했었던 그거?”라고 말끝을 흐렸다.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 다짐하며 돌아왔는데. 무안함과 미안함과 동시에 오히려 작은 일이 더 지나치기 쉽다고, 다음이 있을 거라 순간적으로 변명하는 나 자신이 어이없었다. 바쁜 일상 탓에 사진전의 사진들처럼 매우 중요한 일들을 기억 한편에 접어 두기도 하지만, 사소한 것들은 더 많이 놓치고 지나가는 듯하다. 큰일이던 작은 일이던 좀 더 되돌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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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경제학 전공 3학년생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지금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을 체험하고 여러 사람과 교류할 때 즐거움을 느껴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하기 위해 교내 한인 방송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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