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수필가)
무더위 속에 헉헉거리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평소에도 별 일 없는 작은 동네는 요즈음엔 더욱 한가로운 거리로 변한다. 누군가는 이 텁텁한 여름의 실체를 벗어 던지고 산으로 바다로 달려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 짜릿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쉬기 운동도 버거운 대낮에 뜨겁게 달구질 된 아스팔트 도로 위를 질주하는 구리 빛 청년을 바라보면서 청량함이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올해는 잡다한 이유들 때문에 초복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맘때 꼭 먹어야 한다는 삼계탕을 끓였다.
뜨겁게 먹어야 제 맛인 음식이기에 뻘뻘 땀을 흘리며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올 해 더위도 반쯤은 덜어 낸 것 같은 시원한 기분이다. 초록의 향연은 하늘 끝자락에 너울거리고 여물 어 가는 뒤뜰에는 누구라도 품어 줄 넉넉한 그늘이 드리워진다. 보이는 욕망에 충실하며 내 달려와 과부화가 걸린 내면에도 쉬엄쉬엄 쉬어갈 시원한 그늘 한켠 마련해야 하리라.
지난해 겨울부터 망설이고 뜸들이다 시작 하게 된 줌바 클래스가 매 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있다. 춤과는 거리가 먼 나에게는 대단한 도전 이었는데 시작부터 난항이다. 몸매가 뚜렷이 드러나는 줌바에 어울리는 꼭 맞는 옷을 입는 것이 민망해서 평상시 입었던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맨 뒷줄에 서서 갓 전학 해 온 학생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남미 특유의 빠른 템포를 그것도 한 번에 두세 가지 동작을 따라 하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힘이 들었다.
양팔을 위로 뻗고 허리를 돌릴 때는 팔 만 올리다 말고 스텝에 박자를 맞추며 엉덩이를 흔들어 줄 때면 엉거주춤 어느새 아리랑 품새가 되어 버렸다. 라틴 음악에서 비롯된 줌바 댄스는 춤과 피트니스가 적절히 혼합된 반복되는 동작으로 전신 운동이 가능하고 스트레스를 날려 주며 우울증 해소에도 좋다고 한다. 미국, 영국, 유럽 국가에서 최근에는 전 아시아까지 유행하고 있다고 하니 뒤 늦게 선구자의 대열에 합류해서 한 시즌 열심히 따라 하다 보니 이미 굳어 버린 학습력이 뒤쳐진 내 몸에도 낯설었던 줌바가 조금씩 리듬을 타고 있다.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 하다 보면 행복이 저절로 따라 온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그 것이 위대한 일인지 아닌지 생각 하지 말고 ,방을 청소할 때는 청소에, 요리 할 때는 요리에만 몰두할 때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윗도리를 벗어 허리쯤에 질끈 동여 메고 숨 가쁘게 달리던 그 청년도 떨군 땀방울 보다 더 많은 행복이 채워졌으리라 믿고 싶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서서 구경꾼 이었지만 어느새 정해진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발끝에 스프링을 달아 놓은 듯 통통 튕기는 오리지널 줌바에는 턱 없이 모자란 학생에게 선생님은 가끔씩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며 쉽게 지쳐 가는 열정에 응원도 잊지 않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는 짤막한 한마디가 내게는 정답이 되어 버린 올해의 여름이 되었다. 목요일 클래스가 끝난 뒤 나 보다 훨씬 젊은 선생님이 벌컥벌컥 물병에 안달 난 나를 불러 세운다.
항상 웃으면서 열심히 수업에 빠지지 않아서 고맙다며 그 날 틀어 놓고 수업한 줌바 CD 를 한 장 건네준다. 사실은 이왕에 하는 것 똑바로 해 보자고 애를 쓰다 보니 턱턱 숨이 차올라 저절로 벌어진 입 꼬리가 올라 간 것 뿐 이었는데...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여름도 보내기 나름이란 생각에 휴가를 반납한 섭섭함도 한 순간에 사라진다. 가을날 더 진하게 물들일 단풍도 이 여름 땀 흘리는 고통이 없이는 기대 할 수 없으리니 가자 ! 내가 여름이 되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