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라서기 홀로서기, 끝장 새 출발
▶ 케익은 음울한 색에 거꾸로 세워놓은 형태, 신랑을 케익 끝으로 밀어내는 모양도 인기, “어려운 일 극복해내려는 긍정의 몸짓”해석
제빵사 더프 골드만이 이혼식을 위해 만든 물구나무서기 케익. 케익의 위아래가 뒤바뀐 형태를 취하고 있다(아래 사진). 위는 신부가 신랑을 밀어내는 모습을 담은 이혼 케익.
이혼은 그리 유쾌한 인생사가 아니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자던 약속을 깨는 것이니 피차 웃고 떠들며 즐겁게 맞이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이혼이 결혼에 버금가는 삶의 이정표적 사건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결혼이 인생의 중대사인 것처럼 이혼도 그렇다. 물론 확연한 성격의 차이는 있다. 결혼은 ‘좋은 일’이지만 이혼은 ‘궂은 일’이다. 적어도 사회적 통념이 그렇다. 결혼은 떠들썩하게 하면서 이혼은 가급적 조용히 처리하려 드는 ‘깨진 커플’의 일반적 태도는 이 같은 사회적 인식에 뿌리가 닿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개인적인 계약의 파기는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건 왁자하게 나발을 불어 동네방네에 알려야 할 ‘장한 짓’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회적 규범은 시대상을 반영하며 진화한다. 이혼율이 가파른 상승 추세를 이어가는 현실에서 관련 규범도 변했다.
이혼에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오명이 급속히 희석되자 ‘결혼 해약’을 바라보는 시각도 ‘갈라서기’에서 ‘홀로서기’로, ‘끝장’에서 ‘새 출발’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결혼생활의 마무리 방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파티족’(party animal)의 유전자를 공유한 사람들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도 적절한 의식을 통해 맞이하길 원한다.
이로 인해 ‘이혼 파티’나 ‘이혼 케익’이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 탄생했다.
이제 이혼은 파티로 전환되고 있다.
이벤트 기획 전문가와 제빵사, 변호사와 학자들은 지난 수년에 걸쳐 이혼식이 꾸준히 늘어난 사실에 주목한다.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품이 이혼 케익이다.
이혼 케익은 모양부터 특이하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결혼 케익의 상단에는 신랑신부 축소모형이 세워지는 게 상례다. 하지만 이혼 케익에는 신랑을 향해 살상무기를 겨누거나 휘두르는 신부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케익 가장자리로 신랑을 밀어내는 신부를 보여주는 케익도 제법 인기가 있다.
신부는 맨 위층에 위풍당당하게 서있고, 그녀에 떠밀린 신랑이 맨 밑층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형태의 노골적 막장 케익은 ‘전 남편’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이혼녀들이 선호한다.
결혼을 뒤집어엎은 게 이혼이라는 생각에 결혼 케익을 거꾸로 세워놓은 형태를 취한 것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종류의 케익은 검은 색 아이싱으로 덮여 있어 음울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볼티모어와 LA에서 참시티 케익을 운영하는 공인 제빵사 더프 골드만은 10년 전 처음 이혼 케익을 만들었다. 그는 “수요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매월 끊이지 않고 한두 개의 주문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이혼식은 말 그대로 ‘분리의식’이다. 어감이야 조금 칙칙하지만 이혼 파티의 분위기는 차분하기보다는 떠들썩하다. 비용 역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지역의 이벤트 기획 전문가인 리처드 오말리는 2년 전 2만5,000달러짜리 이혼 파티를 맡았다. 그녀의 첫 이혼식 프로젝트였다.
오말리는 ‘파토 난 결혼생활’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에 초점을 맞춰 전체 컨셉을 잡았다.
결혼식장처럼 근사한 장소에서 8인조 밴드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이혼녀와 그녀의 손님들은 칵테일 리셉션을 거쳐 저녁식사를 하면서 차례로 건배를 제안했다.
이혼녀는 웨딩가운은 아니지만 화려한 흰색 드레스로 치장을 했다. 예식이 시작되자 그녀의 아버지가 혼자 입장, 제단 앞에 서 있는 딸을 향해 나아갔다. 8년 전 사위에게 넘겨준 딸을 되찾아 오는 역방향 의식이다.
이어 결혼식 당시 신부 부케를 받았던 들러리가 이혼녀에게 꽃다발을 날렸다. 주인공 여성은 8년 전 찍어두었던 결혼선물 사진을 액자에 넣어 이혼 파티에 참석한 원소유주에게 돌려주었다.
이혼식은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기념하려드는 현대인이 파티족 성향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유니버시티의 마케팅 교수 마이클 안 스트라히레비츠의 설명에 따르면 파티족은 어렵고 힘든 일든 일에 긍정적 꼬임을 주고 싶어 한다.
예컨대 동성애자들은 커밍아웃 파티를 하고, 암을 이겨내 환자들은 완치판정 시점에서 일정기간이 지날 때마다 잔치판을 벌인다. 주변의 눈총 대신 성적 정체성 회복에, 사망의 공포 대신 생존의 기쁨에 무게 중심을 둔 ‘적극적인 사고’와 ‘긍정의 몸짓’이다. 그러다보니 이혼도 ‘자유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축하할 만한 사건으로 탈바꿈했다.
텍사스주 오스틴 외곽에 거주하는 스티브 울프는 갈라선 전 처와 공동으로 이혼 파티를 열었다.
슬하에 세 아들을 둔 이들은 잔칫상에 내놓을 레몬 맛 케익을 같이 만들고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았다. 울프는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혼을 하려니 확실한 끝맺음 의식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울프와 전 처는 10년 전에 그랬듯이 함께 레몬 케익을 잘랐다. 케익의 아이싱에는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던진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격언이 적혀 있었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기회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전 처가 집어넣은 문구였다.
울프는 “우리에게 이혼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자녀 양육과 사업의 공동관리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의 전 처는 이혼 후에도 둘이 공동으로 설립한 특수 음향효과 회사에서 계속 일한다.
이혼식이 진화된 사고의 산물인지, 물구나무 선 가치전도의 본보기인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부관계 해지의식인 이혼식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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