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항 전 유엔군사령관 특별고문 초청
한미우호증진협의회(대표의장 박덕준)는 25일 ‘6.25 전쟁과 휴전협정’ 세미나를 새한장로교회에서 개최했다.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을 앞두고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전 주한 유엔군 사령관 특별고문을 지낸 이문항 선생이 초청돼 그가 겪은 한국전쟁과 휴전협정, 그리고 남북 간의 군사적 대립의 역사를 증언했다.
이문항 선생(84)은 개성 태생으로 서울대 공대 재학중 전쟁이 일어나 바로 미 해병1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 인천상륙작전, 낙동강 전투 등 주요 전투마다 투입됐으며 정전 후에는 미 국방성 초청으로 도미해, 유학생활을 거친 뒤 국방성 북한 정보분석관, 극동사령부 정보담당관 등을 지냈다. 이후 정전위원회 역사편찬관을 거쳐 주한유엔군 사령관 특별고문으로 93년까지 복무하다 은퇴했다. 판문점의 산 증인으로 여러 권의 영한 저서를 썼으며 현재 버지니아 비엔나에 거주 중이다.
이문항 선생은 강연에서 남북간 군사분계선에 관한 설명과 함께 38선 분단에 얽힌 비화와 1.21사태 당시의 체험담 등을 소개했다.
그는 “소련이 대일전 참전을 선언하고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한반도에서 남진하자 미국은 당혹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단 38선을 소련에 제안한 것”이라며 “38선의 주역은 미 육군성의 딘 러스크(훗날 국무장관)와 스틸웰(주한유엔군 사령관 역임) 대령으로 이들은 38선이 분단선이 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간에 논란이 되어온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문제에 대해서는 “휴전 협정 당시 육지의 군사분계선은 있으나 해상에는 없다”며 “다만 상대의 연안을 존중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밝혔다.
이 선생은 또 1960년대 들어 베트남전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면서 1.21 청와대 기습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울진삼척지구 침투사건 등을 예로 들며 증언했다. 그는 “1966년 제4회 조선공산당 대표자 대회에서 김일성이 베트남전을 언급하며 미국의 침략행위는 곧 북한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며 “그 후 북한은 대남대미 무력투쟁을 본격화해 한반도는 제2의 전쟁직전까지 가는 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택용 총재와 윤희균 준비위원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나오미 합창단(단장 이순애)이 찬양을 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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