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나드는 사람 없어 유령 나올 듯 고요
▶ 집 주인은 세계 각국의 부호들 연중 잠깐씩 머물러 평소는 빈 집
런던의 벨그라비아 구역은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어둠이 내릴 때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혹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귀가할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창문들 중 절반은 불이 켜지지 않은 상태다. 런던의 최고급 주택가 집들을 외국의 부호들이 사들인 후 그곳에서 살지를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벨그라비아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보통 사람들은 근처에도 갈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되는 데 그들은 사실상 그곳에 눌러 살고 싶어 하지를 않는다. 지난해 부동사 회사 사빌스 조사에 의하면 런던 중심부의 가장 비싼 지역 부동산 매입자들 중 최소한 37%는 주 거주용으로 그 집을 산 것이 아니었다.
“벨그라비아가 점점 사람 안 사는 동네가 되어 가고 있다”고 지역 부동산 중개인인 알리스테어 보스카웬은 말한다. 집값이 750만달러에서 7,500만달러로 정신없는 이곳을 그는 ‘괴짜 동네’라고 부른다.
이곳 주택 매입자들은 러시아, 카자크스탄, 동남아시아, 인도 등 외국의 수퍼 부호들. 이들에게 런던은 뉴욕, 모스크바, 모나코 등과 더불어 세계를 외유하며 잠깐씩 머무는 거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제과점과 작은 부틱들이 들어서 있는 인근 거리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콜럼비아 출신으로 벨그라비아에 사는 한 주민은 애완동물 가게에서 샤핑을 하고 있었다. 개 침대는 358달러, 고양이 담요는 289달러 하는 곳이다. 그는 자기 집이 있는 길을 따라 영국 사람은 두 명 살 뿐 사실 많은 다른 이웃들은 거기에 있는 지 없는지 알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프랑스인, 미국인,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비싼 부동산을 사서 평소에는 비워두는 도시로 런던이 유일하지는 않다. 이들은 세계 여러 곳에 저택을 매입하고, 한 곳에 머무는 동안 다른 곳의 집들은 비어 있게 된다. 대표적인 곳이 맨해턴이다. 맨해턴과 다른 점이 있다면 런던의 경우 외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외국 사람들이 동네 전체를 사들인 것 같아 보일 정도이다.
런던 중심부의 고급 주택가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런던 주민들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외국인들의 부동산 매입이 과도하게 많아지자 영국 의회가 신경을 쓸 정도이다. “세계 최고 부자들이 투자용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있다”며 “여름에 며칠 지낼 뿐 연중 내내 다른 곳에 사는 이들은 지역 경제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 건물들은 새로 지은 것인데 모두 불이 꺼져 유령 같은 것이 정말 문제”라고 한 의원은 말한다.
사빌스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11년~2012년 켄싱턴, 첼시, 메이페어, 벨그라비아 등 런던의 최고급 주택가에서 집을 산 사람들 중 34%는 외국 사람들이다.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 2007년 이 비율은 24%였다. 그중에서도 고급지역으로 제한하면 외국인들은 주택 매입 비율은 59%에 달한다.
그 결과 이들 지역은 보다 국제적이고, 보다 비싸지고, 보다 텅빈 상태가 되고 있다. 벨그라비아의 한 옷 가게 점원에 의하면 연중 어떤 시기가 되면 동네 전체가 완전히 텅 빈다. 그래서 “8월이면 한달 내내 가게 문을 닫는다”고 그는 말한다.
외국인들 중 고급 주택을 사서 세를 놓는 경우가 절반 정도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불 꺼진 런던’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최고 부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이들이 세를 주려고 집을 살 리가 없는 것이다. 자신들만을 위한 개인 호텔을 사들이듯 집을 사는 것이니 가족이 다른 곳에 머물 때면 집은 완전히 불 꺼진 채 있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외국인 투자로 집값은 기대 이상으로 뛰어 오르고 있다. 런던 노른자위 지역에서 개인 주택을 장만할 때 영국인은 평균 225만달러를 쓴다. 한편 외국인들은 평균 375만달러를 쓰고, 러시아나 중동 출신이 되면 가격은 750만 달러로 뛰어 오른다.
최근 개발된 한 ‘초호화’ 아파트 단지에서 호텔 스타일로 운영되는 아파트 가격은 750만달러가 넘는데 지난해 팔린 아파트 중 78%는 외국인들이 사들였다고 사빌스 보고서는 밝혔다. 상황이 이러니 브로커들은 새 부동산단지가 개발되면 영국에서 광고하기 전에 홍콩이나 싱가폴에서 마케팅을 한다. 예를 들면 리전츠 팍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콘월 테라스가 그런 경우. 이곳 아파트 가격은 4,500만달러에서 8,700만 달러 사이다.
더욱 심한 케이스는 원 하이드 팍. 아파트 가격이 17억달러나 하는데 매입자 대부분이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아일 오브 맨, 케이먼 제도 같은 세금 피난처에 등록된 아리송한 회사 뒤에 숨어 있어서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2년 전 아파트 건물 개장 후 영국 신문들은 도대체 누가 그곳에 사는 지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최근 배니티 페어는 기록을 꼼꼼히 조사한 결과 아파트 소유주들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포커 게임하고 왔음직한 사람들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부동산 거부, 나이지리아 텔레커뮤니케이션 부호, 우크라이나 최고 부자, 카자크스탄 동 광산 억만장자 등이다.
그중 우크라이나 사람인 리나트 아크메토프는 2억400만달러에 펜트하우스 두 채를 산 후 9,000만달러를 들여 전체를 하나로 텄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에 의하면 총 판매가격 40억달러에 달하는 76채의 아파트 중 매입자가 이곳을 주 거주지로 등록한 아파트는 17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세컨드 홈’이어서 연간 재산세가 수천달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역 비즈니스나 런던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런던의 주택시장은 영국의 다른 지역과 반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지금은 예산 절감 바람에 강타 당한 영국의 주택가격은 런던을 제외한 전국에서 지난 5년간 10%가 떨어졌다. 반면 런던 내의 집값은 21%가 뛰어 올랐다. 고급주택가의 가격 상승은 더욱 가팔라서 메이 페어의 경우 30%가 올랐다.
벨그라비아 팰리스의 수백만 달러 상당 아파트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한 미국인은 적막함이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말한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집에 없는 것 같고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러시안 가족들이 길 건너에 이사 왔을 때 그는 너무나 반가워서 찾아가 인사를 했다. 이어 그들이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해 러시아 고전 음악을 들으며 캐비어를 먹고 보드카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는 못 봤어요. 그 가족은 대부분의 시간을 팜비치에서 보내는 것 같아요.”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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