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 추기경 115명 전원이 지난 7일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에 전 세계에서 모두 모여들었다. 베네딕토 16세의 퇴임으로 새로운 교황을 뽑는‘콘클라베’를 위해서다. 교황 선출 투표인 콘클라베는 오는 12일 시작될 예정이고, 며칠 후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게 된다.“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고색창연한 형식과 상징을 통해 독특한 장엄함을 연출하는 콘클라베의 안과 밖의 모습을 통한 교황 선출과정의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
세속 뺨치는‘카더라’통신 봇물
추기경들 속보 목마른 언론 이용
추기경 총회가 결정적 영향력
차기교황 선출 흰연기 필 때까지
한인간에게 신의 지상 대리인(교황) 자격을 부여하는 비밀회의. 콘클라베는 붉은 수단을 입은 교회의 황태자(추기경)들이 머리를 맞대고 순백색 신성권력을 추출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신성으로 포장된 교황권의 이면에는, 바티칸이라는 나라를 다스리고 국제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적 권한이 이미 녹아들어 있다.
언뜻 콘클라베는 종교적 절차로 외부에 읽히지만, 결국엔 한 사람의 지도자를 뽑는 행위, 곧 선거라는 점에서 명백한 정치행위다. 세속화를 막으려는 각종 금기 때문에 추기경들의 정치는 은밀한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교황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뽑히지만, 교황 선출을 위한 정치는 성당 밖에서 결판이 난다. 세속의 선거가 투표소 밖에서 좌우되는 것처럼.
바티칸에 집결한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바로 지금이 교황 선거의 백미 기간이다. 성의(聖意)의 베일 뒤에서 펼쳐지는 은밀하고도 드러매틱한 교황 선출의 정치를 추기경들의 말과 바티칸 전문가들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자.
■콘클라베를 흔드는 손
교황이 사망(또는 사임)하고 바티칸이 콘클라베를 준비하는 사이, 교황청 밖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여론전과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이 역할을 주로 담당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차기 교황 유력후보가 누구인지 보도하며 여론몰이에 나선다.
교황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추기경들도 언론 인터뷰를 이용한다. 출마의사를 밝히거나 특정인 지지를 표명하는 일은 금지돼 있어, 추기경들은 최대한 우회적 표현으로 생각을 드러낸다. 이번에도 션 오말리(69ㆍ미국), 크리스토프 쇤보른(68ㆍ오스트리아), 대니얼 디나르도(64ㆍ미국), 지오반니 라졸로(78ㆍ이탈리아) 추기경 등이 잇달아 언론과 접촉했다.
문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여론몰이가 추기경들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가톨릭 전문지인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 기자로, 바티칸 내부사정에 가장 정통한 언론인으로 꼽히는 존 앨런은 “누구도 소문이 진실인지 검증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네거티브가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특정 후보를 끌어내리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탐색의 장, 추기경 총회
지난 4일 시작된 추기경 총회는 추기경들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행사로 꼽힌다. 추기경 총회는 교황 궐위 상황에서 교회 현안을 다루기 때문에, 당연히 차기 교황이 갖춰야 할 덕목이나 자질문제가 주로 논의된다. 차기 교황의 윤곽도 여기서 대충 드러난다.
추기경 총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교황이 오른 이는 바로 전 교황인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이다. 10개 국어를 구사하는 라칭거 추기경은 추기경 단장 자격으로 2005년 총회를 이끌었는데, 추기경들을 한사람 한사람 만나 상대 모국어를 써 가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의 로트바일러’(독일산 맹견)라 불렸던 라칭거는 이런 접촉을 통해 강성 이미지를 상당히 희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추기경 총회에서는 킹메이커의 활약이 돋보였다. 당시 추기경단에서 가장 존경을 받던 프란츠 쾨니히(오스트리아) 추기경은 카롤 보이티야(요한 바오로 2세)라는 무명의 폴란드 추기경을 지지하자는 여론을 조성했다. 가톨릭이 공산주의와 화해하기 위해서 동유럽 출신 교황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바티칸의 밤을 주목하라
추기경 총회기간에는 친분이 있는 추기경끼리 로마 시내 레스토랑 등에 모여 투표전략을 짜거나 다른 추기경을 설득할 방법을 논의하기도 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언어권이 같은 추기경들의 모임도 교황 선출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변수다. 로마 시내 판테온 근처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라우 비바,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가까운 레스토랑 아브루치 등이 주요 회합 장소로 꼽힌다.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의 외부 접촉이 차단된다. 추기경들은 낮동안 시스티나 성당에서 하루 오전 오후 두 번씩 최대 네 차례 투표를 하고, 밤에는 숙소에 격리되어 휴식을 취한다. 실제 콘클라베에서는 기도와 묵상, 그리고 투표만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어서 추기경들의 의견 교환이나 이견 조율은 주로 숙소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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