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는 단발, 똑 부러지는 말투, 차가운 눈빛.
최근 막을 내린 SBS 주말극 ‘청담동 앨리스’에서 신인화 팀장은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 그 자체였다.
첫 회에서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조로 열심히 살아가는 한세경(문근영 분)에게 "안목이 후지다. 노력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독설을 날리는 장면에서는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대사 하나만으로 캐릭터를 살리는 배우의 내공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신인화를 연기한 배우 김유리(29)를 지난 30일 을지로에서 만났다.
단정한 외모는 여전했지만 눈빛은 한결 부드러웠다. 차가운 신인화의 모습이 자신과 반대라 끌렸다는 그다.
단발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에 "안 그래도 주변에서 머리 기르지 말라고 하더라"며 "파격적인 스타일을 해보고 싶어서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좋은 작품을 만나 신나서 잘랐다"고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김유리는 "인화가 가진 ‘타고난 도도함’을 스타일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도 종류가 많은데 인화의 도도함은 절제되고 딱 부러지는 느낌이잖아요. 스타일로 그런 걸 보여주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더 냉철해 보이려면 커트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잘랐는데 원래는 더 짧게 자르려고 했어요. 약간 보이시한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스타일리스트의 도움으로 지금의 세련된 단발이 만들어졌다. 스타일이 계획된 것이었다면 연기는 계획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신인화를 연기하는 데 특별한 설정은 없었다"며 "대본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인물에 빠지다 보니 저절로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 톤과 눈빛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신인화는 미모와 실력, 배경을 두루 갖췄지만 성공에 대한 욕심을 접지 않는다. 집안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재벌남’ 차승조(박시후)와 정략결혼을 꿈꾸지만 세경의 등장에 위기를 맞는다.
후반부 세경의 비밀이 담긴 동영상을 승조에게 공개하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그는 혼자 남는다.
이런 인화를 두고 김유리는 "욕심보다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인화는 악역이 아니에요.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어 긴장감을 줘야 하는 역할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비즈니스가 우선이라는 교육을 받아온 인물이다 보니 가업을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어떻게 보면 불쌍한 아이에요. 사랑이란 감정을 모르고 살다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는 사람(차승조)을 만났는데 세경이 나타나면서 자존심이 상한 거죠. 동영상 공개는 어찌 보면 인화스럽지 않은 모습일 수 있지만 인화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김유리는 "실제 나라면 세경의 비밀을 눈감아주고 ‘두 분 행복하세요’라고 말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로는 평범하고 무던한 성격이라는 그는 동영상 공개 장면을 집에서 보다 문근영에게 ‘세경아, 미안해’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연기할 때는 정말 화가 나서 찍었지만 캐릭터에서 나와 시청자 입장에서 보다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그는 "근영 씨가 ‘실장님이 좀 심하셨죠’라는 답문자를 보내서 진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며 돌아봤다.
공교롭게 김유리는 내리 세 개의 출연작에서 사랑보다 미움을 많이 받는 역할을 했다.
2011년 MBC ‘불굴의 며느리’에서 이기적인 쇼핑호스트, 작년 KBS 1TV ‘복희누나’의 못말리는 말괄량이, 그리고 신인화까지 그가 연기한 인물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유리는 "악역을 하면 스스로 정말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연기지만 늘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해야 해서 힘들어요. 오래 하면 사람이 망가지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시청자들이 욕하는 건 괜찮아요. 그건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으로도 볼 수 있잖아요. 다만 누군가에게 나쁜 행동을 하고 독설을 계속 하는 게 힘들어요. 이런 삶을 계속 살다 보면 ‘힐링’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김유리는 2006년 KBS TV소설 ‘강이 되어 만나리’로 데뷔한 후 소속사 문제로 한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011년 ‘불굴의 며느리’를 만나며 ‘연기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었고, ‘청담동 앨리스’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던 장이었다.
그는 "’청담동 앨리스’는 선물 같은 작품"이라며 "앨리스처럼 꿈꾼 것 같다. 따뜻한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기 욕심이 많은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 많다고 했다. 다음번에는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인화의 도도한 매력과 반대되는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가 아닌 ‘촉촉한 느낌’의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사랑도 받고 싶고요.(웃음)"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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