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년’서 미혼모..’꽃잎’ 이후 16년만의 장편영화
1996년 영화 ‘꽃잎’의 주연으로 열여섯 살의 나이에 데뷔한 이정현(32)은 가수로 진출해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 테크노 댄스로 인기를 끌며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까지 ‘N’ 세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군림했다.
가수 활동이 워낙 성공적이었기에 ‘꽃잎’ 이후 스크린으로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최근 몇 년간은 중국에서 가수와 연기자로 바쁘게 활동하며 한국에서 연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2010년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파란만장’에 출연해 영화계에서 다시 주목받은 데 이어 장편영화로는 16년 만에 출연한 ‘범죄소년’으로 오는 22일 관객들을 만난다.
13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배우로서의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보면 많이 아쉬워요. 연기를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었는데 좋은 작품이 안 들어왔거든요. 아무래도 가수 활동이 강해서 그랬던 듯 해요. 가수는 내가 모든 걸 만들어서 혼자 힘으로 쉽게 나올 수 있는데 비해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작품이고 그쪽에서 날 찾아야 하는데 기회를 잘 만나지 못했어요. 그래서 ‘좋은 작품이 안 들어오니까 그냥 음반 만들자’ 그런 식으로 계속 가수 활동만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된 것은 ‘파란만장’ 출연이었다.
"그전엔 공포물 아니면 광녀(미친여자) 역할밖에 안 들어왔어요. 그런데 자꾸 공포로 나오는 게 부담이 많이 됐죠. 일반적인 연기를 하면서 가끔 공포를 하면 모르겠는데, 그런 이미지로만 계속 보이는 건 싫었거든요. 그러다 박찬욱 감독님과 같이 하게 됐고 여러 감독님들이 그걸 잘 봐주셨는지 이후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이번 ‘범죄소년’의 강이관 감독님도 ‘파란만장’ 스태프를 통해서 연락을 하셨고 곧 촬영에 들어갈 다음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박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좋은 영화에 목말라 있긴 했지만, 이번 영화 ‘범죄소년’의 출연 결정은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저예산 영화여서 출연료도 전혀 없는 데다 미혼모 역할 역시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처음엔 거절을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계속 설득했고 미혼모 관련 방송 다큐를 본 게 마음을 움직였어요. 미혼모들이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아무런 보호가 없는 상태에서 아기와 둘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어요. 그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는데 사회의 지원도 몇 개월밖에 안 되고 보호자도 없이 방치돼 버리더라고요. 그런 미혼모들을 보고 안타까워서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듯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범죄소년들도 보호자가 없어서 가벼운 싸움으로 소년원에 들어가는 애들도 많더라고요. 저도 굉장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모르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됐고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또 사회적으로도 누군가가 그런 제도를 많이 개선해 주신다면 지금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가난이 대물림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어요."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효승’은 열일곱 살에 아이를 낳고 가출했다가 13년 만에 소년원에 있는 아들을 다시 찾게 된다. 아들을 보고 살아갈 의지를 갖게 되지만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함께 살 방 한 칸 얻지 못해 좌절하는 인물의 감정이 틀에 박히지 않은 이정현의 연기로 스크린에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극중 얹혀살던 후배에게서 쫓겨날 위기에 놓여 통사정을 하다가 결국 거절당하자 발작을 하듯 분노를 폭발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세 달간 영화를 촬영하는데 촬영 회차가 많아서 계속 밤을 새우면서 촬영을 했어요. 시간이 없어서 한 테이크로 갔는데 미리 동선만 맞춰보고 촬영에 들어갔죠. 그 장면은 대본에 ‘효승이 폭발한다. 억눌린 감정을 한순간에 토해낸다’라고 돼 있었는데 그냥 연기를 하다보니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말 그대로 본능에 가까운 연기를 한 것이다.
그런 연기처럼 그는 인생에서도 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항상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때그때 현실에 충실하게, 상황에 맞춰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좀 더 이른 나이에 연기에 뛰어들지 못해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 하게 돼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커졌다고 했다.
"어렸을 때에 비하면 지금 더 많이 살았고 세상이나 삶에 대해 느끼는 것도 달라졌고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지금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해요."
그는 연기를 하면서 국내에서 가수 활동도 계속 할 계획이다.
"아이돌과의 경쟁은 옛날에 포기했고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색깔을 표현해서 마니아 팬층을 두텁게 하는 게 목표예요. 음반 녹음을 지금 하고 있는데 신중하게 하고 있어요. 내년 초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동시에 발매할 예정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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