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은퇴한 딕과 캐롤 벡텔 부부는 메디케어와 보조보험, 치과보험으로 매년 9,000달러 이상을 지불한다.
의료경비가 치솟고 있다는 것은 만인의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나온 몇몇 조사결과에 따르면 의료비 상승을 염두에 두고 은퇴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금융서비스 그룹인 피델리티 인베스먼트는 최근 발표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올해 일터를 떠나는 65세 동갑내기 커플의 경우 은퇴 후 총 24만달러의 의료비를 필요로 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동일한 커플을 가상해 산출한 액수에 비해 무려 6%가 늘어난 수준이다.
대부분 노년층“메디케어로 충분할 것”이라 착각
장기 간병 필요상황 땐 은퇴자금 순식간에 바닥
‘유산 지키려’자녀가 부모 위해 비싼 보험 가입도
올해 조사에서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남성과 여성 은퇴자의 잔여수명을 각각 17년과 20년으로 잡았다.
피델리티의 고객 베니핏 상담그룹 선임 부사장인 서닛 파텔은 “노년층을 위한 공공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전통적인 직장 건강보험에 비해 커버리지의 범위가 훨씬 좁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은퇴하는 65세 커플이 필요로 하는 24만달러의 의료비는 의사 진료비인 메디케어 ‘파트 B’와 처방약을 커버하는 ‘파트 D’의 본인 납입금(프리미엄) 외에 피보험자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급해야 하는 디덕터블과 보험료 공동 분담금, 시력검사와 보청기 등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경비 등을 포함한다.
네이션와이드 파이낸셜이 내놓은 또 다른 연구결과는 은퇴 플랜을 구상하는 근로자들이 메디케어 커버리지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용자 이익연구소(EBRI)에 따르면 메디케어는 의료 서비스의 51%만을 커버한다.
금융회사 푸트남 인베스트먼츠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인 로버트 레이놀즈는 최근 뉴스 브리핑을 통해 “의료비용을 빼놓은 채 노후자금이나 평생 대체소득을 논한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푸트남이 개발한 ‘평생 소득 분석도구(Lifetime Income Analysis Tool)라는 이름의 계산기는 노후자금으로 개인이 모아둔 돈이 얼마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고안됐지만 내년부터는 개인의 건강상태와 여생을 보낼 주거지의 물가 수준까지 감안해 얼마의 자금을 모아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이 도구를 사용한 계산방식에 따르면 담배를 피우는 당뇨병 환자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에 비해 잔여수명이 훨씬 짧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후자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별로 노후 생활비가 가장 적게 드는 지역은 루이지애나인 반면 가장 많이 드는 곳은 알래스카이다.
은퇴자들이 가급적 생활비가 적게 들고 날씨가 따듯한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세(state tax)가 없고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할 수 있는 플로리다로 은퇴자들이 몰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 해도 의료비를 고려하지 않은 은퇴계획은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싱어 세노스 웰스 매니지먼트의 최고 투자책임자 페이스 세노스는 은퇴를 앞둔 상담 고객들에게 연간 총 가계예산의 5%를 의료관련 경비와 디덕터블로 따로 떼어둘 것을 권한다. 그녀는 “은퇴 후 메디케어로 필요한 모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디케어와 고용주가 제공하는 퇴직자 보험만으로 노후의 의료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다. 세노스는 “만약 65세 이전에 은퇴하고 싶다면 디덕터블이 높은 의료보험을 구입하고, 건강저축 계좌(health savings account)를 사용해 본인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경비를 충당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조언했다.
장기 간병보험(long-term care insurance)도 은퇴 구상 과정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할 이슈다. 이제까지 나온 다양한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65세에 도달한 사람들의 30~50%가 은퇴 후 장기적인 간병을 필요로 한다.
2008년 피델리티가 실시한 개별 연구는 1년간의 장기 간병에 들어가는 비용을 7만6,000달러로 추산했다. 또한 2008년에 은퇴하는 부부의 50%가 최소한 1년 이상, 20%가 최고 5년간의 장기간병을 필요로 할 것으로 전망했다.
캘리포니아주 샌호제 소재 힐리스 파이낸셜 서비스의 존 힐리스 사장은 “장기 간병보험은 보험료가 비싸긴 하지만 수익을 올리기 힘든 상품이기 때문에 취급을 중단하는 보험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힐리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장기 간병보험의 구입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의붓어머니는 99세에서 반년을 더 산 후 너싱홈에서 타계했다.
힐리스는 노후계획에 관한 상담을 할 때마다 의붓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2~3년간 월 1만 달러 이상의 간병비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지만 프리미엄이 연 2만달러에 달하는 장기 간병보험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샌호제에서 거주하다 2006년 부부가 나란히 은퇴한 딕(81)과 캐롤 벡텔(68)은 안락한 노후가 보장된 축에 속한다.
생활비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 삶의 질을 만족시킬 만한 조건을 지닌 지역을 물색한 끝에 테네시주 페어필드 글레이드로 옮겨간 이들은 샌호제의 집을 판 돈으로 골프장에 위치한 주택을 현찰로 구입한 후 남은 돈을 은퇴예금 구좌에 집어넣었다.
벡텔 부부는 메디케어 보험 외에 이를 보충할 보조 플랜과 치과 보험을 갖고 있다.
캐롤이 장기 근속한 스탠포드 대학이 은퇴자들에게 제공하는 보험이 메디케어의 커버리지 부족분을 보충해 주는 보조플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방어막을 갖춘 셈이지만 아무래도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이들이 올해 부담해야 하는 프리미엄은 총 9,058달러80센트에 달한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이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올해 들어 딕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이후 어쩌면 장기 간병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 탓이다.
전문적 장기 간병 서비스를 받게 되면 노후자금이 바닥날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캐롤은 “영감에게 장기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내가 직접 보살필 것”이라며 “내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지금부터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세노스는 “장기 간병 플랜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자녀”라고 귀띔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을 재산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싼 보험료를 대납하는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세노스는 “커플 기준으로 장기 간병 보험료가 연 2만달러 정도이기 때문에 사실 자녀 입장에서도 부담이 따른다”며 “나중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플랜 구입에 앞서 그들이 유산 상속인 명단에 올라 있는지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노후자산을 몽땅 써버리지 않도록 부모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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