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치료는 건강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금전적 손실을 초래한다.
환자는 꼭 필요한 의료 서비스 외에‘플러스 알파’를 원한다. 치료를 많이 받을수록 병을 빨리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급한 마음에서다. 약을 정량 이상으로 복용하면 효과를 더 빨리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의사 역시 환자가 병원을 찾은 이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무언가 의심스런 부분이 있으면 검사를 통해 반드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철저한‘직업의식’의 발로다. 환자의 조급함과 의사의 의욕이 서로 겹치게 되면 과잉치료의 위험성이 고개를 치켜든다.
담당의사 바뀔 때마다 동일한 검사 하고 또 하고
의사는‘직업의식’으로 환자는‘더 빠른 치유 기대’
경험자들“병원 발길 줄이니 건강호전” 이구동성
미 의학연구협회에 따르면 전염병처럼 번지는 과잉치료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매년 2100억달러 이상의 불필요한 부담을 짊어진다.
과잉치료는 단순한 돈 낭비로 끝나지 않는다. 심리적, 신체적 고통과 심각한 합병증을 불러오고 때로는 사망을 초래하기도 한다.
뉴아메리카 파운데이션의 건강정책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샤논 브라운리는 “의료검사가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과잉치료는 허약한 몸을 더 약하게 만들고 가벼운 돈주머니를 더욱 얄팍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잉치료를 다단계 폭포에 비유했다. 끝났나 싶으면 또 다시 쏟아지는 테스트의 ‘물줄기’에 실려 떠내려가다 보면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고 개인의 재정 상태는 피멍이 든다.
다단계 폭포의 아래쪽으로 내려 갈수록 외과적 검사가 늘어나고 나중에는 손을 써봐야 전혀 나아질 게 없는 문제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곤 한다.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담당 의사를 바꿀 때마다 바로 얼마 전에 받았던 동일한 검사를 반복해서 받아야 한다고 푸념한다.
의사가 바뀌었다고 환자의 혈액검사와 스캔 결과마저 달라지는 것은 아닐 터인데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검사 지시가 떨어지곤 한다.
목적을 가늠하기 힘든 이런저런 검사를 받다보면 “내가 병원을 찾아온 이유를 담당의사가 잊어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런 생각이 든다”는 환자도 더러 있다.
콜로라도주 브레켄리지에 거주하는 다이앤 파워(60)는 희귀 자기면역성 질환인 ‘베게너 육아종증’ 진단을 받은 후 의사가 추천하는 검사를 빠짐없이 받았다.
그녀의 주치의는 몸 상태와 상관없이 3주마다 한 번씩 진찰을 받으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혈액검사와 X-선 촬영을 지시했고 “몸 상태가 좀 나쁘다”고 말하면 곧바로 전문의를 추천했다.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와도 번번이 추가검사를 요구했다. 그녀가 감기증세를 보이자 “예방 조치”라며 덜컥 병원에 입원시켰다.
단 6개월 사이에 다이앤은 무려 스물다섯 번이나 주치의를 찾아가 진찰을 받았다. 의료보험의 적용되지 않는 치료나 커버리지 한도액 초과로 그녀와 남편 테렌스의 주머니에서 나간 치료비만도 연간 3만달러를 넘어섰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자 다이앤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욱 쇠약해졌고 의료비로 집안 살림은 거덜 나기 일보직전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 지원그룹에 속한 베게너 육아종증 환자들과 교류를 시작한 파워 부부는 주치의사의 검사 요구에 질문으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테렌스는 “주치의가 아내에게 자상하게 신경을 써주는 듯 보였고, 검사를 받아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기 때문에 몇 년간 믿고 따랐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점차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아내의 시간이라든지 계속되는 검사로 인한 고통 따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결국 다이앤은 남편 주치의의 권고를 받아들여 담당의사를 교체했다. 정기적으로 되풀이되던 검사를 중단하자 신기하게도 그녀의 병세는 호전됐다. 다이앤은 요즘 1년에 4~5차례 의사를 찾아간다.
애틀랜타의 카라 리만(43)은 불필요한 검사로 마음고생을 단단히 한 케이스다. 다리미판이 뒤집어지며 한쪽 눈을 치는 바람에 눈자위에 심한 멍이 든 리만은 의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의사는 그녀의 상태를 직접 살펴보지도 않은 채 간호사를 통해 CT스캔을 지시했다. 두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눈에 멍이 들었을 뿐인데 CT스캔을 받으라는 게 조금 엉뚱하다 싶었지만, 그래도 리만은 의사의 지시를 따랐다.
검사결과는 더욱 맹랑했다. “MRI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뇌종양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집안의 복잡한 암 병력 때문에 리만은 잔뜩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형선고라도 받은 양 전전긍긍하던 그녀에게 2주일 후 “검사 결과 전혀 이상이 없다”는 간호사의 연락이 왔다.
리만은 “눈에 멍이 든 게 전부였는데 의사의 엉뚱한 CT스캔 지시로 ‘10년 감수’했다”며 “그 사건 이후 질문 많고 의심 많은 의료 소비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녀의 보험사는 검사비로 7,000달러를 지불했다.
은행 감사관인 짐 도나휴는 4년 전 뇌졸중을 일으킨 아버지(79)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환각과 치매증상을 보이자 의사들이 처방한 여러 종류의 약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아버지에게 처방된 약 가운데 인지기능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두 가지 종류의 항울제를 찾아낸 그는 담당의사들을 ‘설득’해 처방을 바꿨다. 상태가 급속히 호전된 그의 아버지는 현재까지 4년이 넘도록 혼자 생활하고 있다.
도나휴는 “아버지에게 우울증 진단이 떨어진 것부터 잘못이다”며 “전문의들이 저마다 자신의 전공을 활용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LA 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캐스린 걸로의 다섯 살 된 딸 그레이스는 가벼운 뇌성마비 증세로 특수치료를 받고 있다. 임신 25주 만에 태어난 쌍둥이인 그레이스는 신생아 병동에서 집중적인 치료와 간호를 받은 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지금도 시력과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있다.
생후 3개월 만에 전문병원으로 옮겨졌을 당시 의료진은 그레이스에 대한 일련의 검사를 실시한다고 걸로에게 ‘통고’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이전 병원의 의사들이 “조산아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따로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 주었던 것들이었다. 걸로는 검사를 거부하고 서둘러 병원을 옮겼다.
얼마 전 그레이스의 의료팀은 전신마취를 필요로 하는 MRI 촬영을 권했다. 걸로와 그녀의 동거인 케이티 인그램은 담당의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질문은 “MRI 검사가 그레이스의 상태와 관련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였고 둘째 질문은 “검사결과에 따라 현재 치료방식에 변화가 올 것인가?”였다. 담당의사의 답변을 들은 뒤 걸로와 케이티는 검사를 불허했다.
걸로는 “납득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모든 미스터리를 빠짐없이 풀어야 할 필요도, 모든 문제를 전부 건드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세상사건 병이건, 손 대봐야 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든지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