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메이(34)가 캠코더로 찍은 막내아들의 모습은 조금 특이하다. 대부분의‘보통 엄마’는 첫 걸음마처럼 아이의 삶에 이정표가 될 만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에게 아기의 사랑스런 미소를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내 딸이 이렇게 앙증맞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홈 비디오를 만든다. 다시 말해‘보통 엄마’의 전형적 비디오는 볼 때마다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그러나 니콜의 비디오는 되돌아보기 싫은‘두려움의 기록’이다. 니콜이 홈비디오를 찍기 시작한 이유는 넷째 아들 니키(2)의 특이한 행동을 의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상 아이 기대하며 넷째까지 가졌으나 빗나가
각기 다른 특성… 식사도 잠자리도 온통 전쟁터
가족 외출 때 남들의 따돌림·눈총이 가장 고통
생후 13개월로 접어들면서 니키의 행동거지에 변화가 생겼다. 이름을 불러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엄마와 눈을 맞추려들지도 않았다. 대신 날갯짓을 하듯 양팔을 위아래로 펄럭이는 동작을 줄기차게 반복했다.
니키의 행동변화를 감지한 순간 니콜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막내아들 역시 자폐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장남 제임스(10), 차남 도미니크(6), 셋째 아들 존 주니어(세살 반)에 이어 막내까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자폐증은 ‘집안 내력’이다. 집안에 자폐아가 한 명 있을 경우 같은 증상을 지닌 아이가 태어날 위험성은 20% 정도이고 둘 이상일 경우 또 한 명의 자폐아가 추가될 가능성은 32%로 올라간다.
이 때문에 자폐아 가정의 부부는 대부분 단산을 선택한다. 메이 가족처럼 네 명의 자폐아를 둔 가정이 극히 드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니콜의 남편 존(40)은 친척과 인척 가운데 자폐 증세를 지닌 친척을 각각 한 명씩 두고 있다. 그러나 메이 부부는 자폐증과 관련된 변형유전자 확인검사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설마’하는 마음에서였다.
니콜과 존은 아이들이 자폐증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채지 못했다. 처음에는 네 명 모두 정상적인 유아와 다를 바 없었다. 방긋방긋 웃고 옹알이를 했으며 부모의 눈길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첫 돌을 넘긴 후 행동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자폐아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다.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의 자폐적 특징(brain signature)은 일찍부터 드러나지만 1년 이상 잠잠히 지내다 걸음마 단계에 이르러서야 눈에 뜨이는 이상행동을 유발한다.
첫 아들 제임스는 다섯 살 되던 해에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그때는 이미 둘째 아들 도미니크가 태어난 뒤였다.
도미니크마저 자폐증세를 보이자 정상적인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셋째를 가졌고, 확률로 보아 또다시 자폐아가 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딸을 얻으려 ‘마지막 모험’을 했다. 하지만 확률은 그들의 기대를 피해 갔다.
현재 미국의 자폐아 인구는 100만명을 헤아린다. 줄잡아 미성년자 88명 가운데 한 명이 자폐아다.
자폐아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다. 보살펴야 할 자폐아동의 수가 한 명 이상이면 평범한 가정생활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메이 일가의 경우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한 끼의 식사를 같이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첫 아들은 음식냄새가 싫다고 아우성이고 둘째는 목청껏 고함을 질러댄다. 셋째는 주스만 마시려들고 막내는 식탁 위를 기어 다닌다.
매주 금요일 피자를 주문할 때마다 니콜은 피자를 반드시 16등분 해줄 것을 신신당부한다. 큰 아들 제임스는 숫자와 패턴에 대단히 민감하다. 피자가 균등하게 열여섯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으면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상당수의 자폐아들은 제임스처럼 일반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숫자와 패턴을 알아채는 능력을 보인다. 니키의 수학실력이 평균 이상인 것도 이런 능력과 무관치 않다.
메이 부부는 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네 아들 가운데 세 명이 아직도 엄마, 아빠와 같은 방에서 잔다.
막내 니키는 자주 잠에서 깨고, 야경증에 시달리는 둘째 아들 도미니크는 잠을 자다 공포에 질려 울부짖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부부의 침대는 매일 정원초과다. 아침에 네 명의 식구가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켓에 가거나 교회 예배에 참석하려면 인내심의 철갑으로 겹겹이 무장을 해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 때문에 메이 부부는 어디에서건 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아이들이 멋대로 행동하면 부모도 한 묶음으로 따돌림과 눈총을 받는다. 니콜이 몸으로 체득한 쓰라린 ‘진리’다.
가끔씩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생각을 했느냐”는 ‘잔인한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니콜은 참담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자폐아가 동물도 아닌데 집에 가둬 기르라니,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나 할 소리다.
일전에는 한 나이든 양반이 “우리가 젊었을 때만 해도 주위에 자폐아들이 없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어미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당시 자폐아들은 대부분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니콜은 자폐증으로 네 아들의 삶이 제약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세상이 자폐아들에게 맞춰 변화할 리 만무다. 그러니 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니콜의 가정은 솔직히 ‘이상적’이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쳐 완고한 편견과 험난한 세파에 맞선다. 네 아들은 보통 아이들과는 분명 다르지만 소중하기는 마찬가지다.
자폐아 가정을 둘러싼 또 하나의 ‘미신’이 있다. 바로 이혼율이다. 성치 않은 아이 때문에 부부 사이에 균열이 생길 위험이 높다는 얘기가 그럴싸하게 나돌지만 이들의 이혼율은 사회 전체 평균치와 전혀 차이가 없다.
니콜은 “다른 부부와 마찬가지로 남편과의 관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존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마치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니콜은 첫 아이를 갖기 전부터 자폐아 지도교사로 활동했다. 지금도 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받을 수 없는 자폐아들의 집을 찾아가 ‘방문 지도’를 한다.
그녀는 교장에게 “다른 클래스를 맡게 해 달라”며 여러 번 떼를 썼으나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마다 제자리를 지켰다.
“기도와 시 쓰기가 나를 버티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라는 니콜은 “이제는 자폐아들을 돌보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