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예술이 마땅히 받아야할‘예의’보장 위한
로마 유적지의 군것질 단속에 관광객·주민‘못마땅’
이젠 로마에 가더라도‘스페인 광장’의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 오드리 헵번이 된 듯 기분을 내는 일은 포기해야 될 것이다. 로마 시당국이 유적지에서 음식물 먹는 행위를 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오드리 헵번의 흉내를 내고 싶다면 650달러의 벌금을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따뜻한 가을 오후, 산뜻한 흰 셔츠와 흰 모자의 유니폼을 착용한 로마시 경찰이 ‘스페인 계단’(Spanish Steps)으로 출동했다. 단속에 나선 것이다.
“어이, 스테파노, 저기 좀 봐! 먹는 사람 또 있네” 한 경찰이 동료 경찰에게 소리쳤다. 그는 계단에 앉아 막 먹기를 시작했다가 당황해 하는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용의자’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의 하나인 이곳에 자리 잡고 앉은 관광객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위법’의 증거물이 들려있었다: 샌드위치.
‘현장을 덮친‘ 경찰에게 주의를 들은 그들은 샌드위치를 도로 싼 후에 양순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자리를 떴다.
그들은 10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 시 조례를 어긴 것이다. 시 조례는 로마의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해 ‘역사적ㆍ예술적ㆍ건축적ㆍ문화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 장소’에서의 음식물과 음료수 섭취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최고 650달러의 범칙금을 물린다는 내용이다. 조례가 적용되는 구역은 스페인 계단과 콜로세움 원형경기장, 판테온 등 대부분의 관광명소들이다.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 도시들은 매너 나쁜 관광객들(그리고 주민들)로부터 기념물과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조례들을 제정해 왔다. 그러나 로마가 이번에 본격단속에 나서게 된 것은 최근 시내 중심부를 거닐던 지아니 알레마노 로마시장이 목격한 광경이 계기가 되었다 : 일부 사람들이 로마의 유적지를 마치 자기 집 안방인 듯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본 것이다.
관광을 담당하고 있는 안토니오 가젤로네 시의원은 당시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았다면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음식물 섭취 뿐 아니라 야영이나 “잠자리 펴기”도 금지시킨 새 조례는 “유적지가 마땅히 받아야 할 예의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가젤로네 시의원은 “로마와 로마의 아름다움은 보호되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달 1일부터 로마 중심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단속에 벌써부터 관광객과 주민들의 불만이 일고 있다. 아무리 유적지 보호 차원이라 하더라도 과도한 처사 아니냐는 관광객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고 주민들도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판에 다른 중요한 일이 많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점심시간에 스페인 광장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려다 경찰의 날카로운 호각소리에 먹는 걸 중단했다는 마시모라는 이름의 한 점원은 “샌드위치 먹는 사람 말고도 경찰이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사람들은 조례가 너무 광범위하다며 못마땅해 한다. 녹색당원인 안젤로 보넬리는 “앞으로는 관광객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콜로세움 주변을 걷다가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라면서 조례에 대한 항의로 판테온 앞에서 보란 듯이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알레마노 시장은 지난 5년간의 임기 동안 성매매 여성, 노숙인, 공원에서 셔츠를 벗고 일광욕하는 사람 등을 상대로 각종 금지사항을 통과시켰지만 효과는 미미했다고 지적한 보넬리는 “금지가 통치의 수단일 수는 없다”면서 이번 조치는 알레마노 시장이 ”시를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많은 로마 시민들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최근 한 주말에는 수백 명이 로마 시청 인근 계단에 모여 항의의 의미로 피자와 파니니를 먹어치우는 플래시몹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예절과 바른 매너를 홍보하는 조치들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베니스에선 매년 2,500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성마르크 광장 계단에 앉아 음식 먹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베니스를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들르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그 관광객들이 살라미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을 딛고 계단을 오르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고 베니스 시 관계자는 말했다.
플로렌스에선 성당주위 계단에서 먹는 것 뿐 아니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붐비는 시간엔 앉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계단 곳곳에 누워 선탠을 하거나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취해진 조치다.
로마의 가젤로네 시의원은 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관광객에게 무조건 벌금을 물린다는 뜻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이것은 기본적으로 예의에 관한 문제다. 백악관 계단에서 피자를 먹으면서 토마토소스를 사방에 흘릴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조례는 연말에 갱신되어야 계속 시행된다. 형식적 절차이니 갱신될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런 조례가 애초부터 없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것은 로마의 주민과 관광객들이 예절바르게 행동한다는 뜻이니까. 앞으로 벌금으로 시 수입이 한 푼도 늘어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것이 로마가, 로마의 아름다움이 존중받고 있다는 뜻이니까”라고 가젤레노는 말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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