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계, 환자에 ‘보통품질 장기’권유 증가세
이식수술을 위한 장기가 심각한 공급부족 현상을 일으키자 이제까지 수술에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던 장기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식수술에 사용된 대부분의 장기는 사고사를 당한 젊은이, 혹은 중년 남녀에게서 나왔다. 이들의 몸에서 떼어낸 장기는 이식수술에 가장 적합한‘최상급’ 으로 간주된다. 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거의 손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가 기증자의 수를 압도하는 상황이라 이제 더 이상 최상급만 고집하기가 어려워졌다. 환자들에게 비전통적인 출처의 장기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지 묻는 병원이 늘어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건강한 신장 원할 경우 대기기간 5년 넘게 걸려
“병세 심한 환자가 차선의 선택 주저할 이유 없어”
양질 아니지만 수술 전후 엄격한 모니터링은 동일
비전통적, 혹은 비표준적 장기란 이제까지 이식수술에 다소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온 장기를 뜻한다.
우선 기증자의 나이가 50세 이상이면 대부분 표준 장기에서 제외된다.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심장마비 사망자의 장기 역시 이식수술에 적합지 않다. 심장발작이 일어나면 장기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생존력(viability)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혈액 공급을 받지 못한 장기는 수분이 모자라 시들어버린 꽃과 비슷하다.
하지만 워낙 장기가 부족하다 보니 선택의 기준선을 낮출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방 정부가 지정한 미시간주의 장기적출 프로그램인 ‘기프트 오브 라이프’(Gift of Life)의 사무국장 리치 피트로우스키는 “기증자 표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로 이 같은 현상을 요약했다.
디트로이트 소재 ‘세인트 존 하스피틀 & 메디칼 센터’의 장기이식 외과전문의 달라 그레인저 박사는 “최근 발생하고 있는 변화는 꼭 필요한 것”이라며 “대기자 명단에 오른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장기 사용에 보다 창의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간 기증을 받기 위해 2년을 기다려온 미시간주 이스트랜싱의 조앤 스미스(69)는 완전치 못한 장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다고 비표준 장기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처지에선 기꺼이 차선의 선택을 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아직은 조금 더 기다리는 쪽을 택하는 환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환자와 의사가 장기 선택에 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웹기반 도구를 개발 중인 미시간대 간 전문의 마이클 볼크 박사는 “장기를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모든 장기는 그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의 질은 기증자의 연령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특히 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능이 퇴화하는 대표적인 장기로 꼽힌다.
척출한 장기를 이식수술이 이루어지는 곳까지 운반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기증자의 몸에서 떼어낸 장기는 얼음으로 채워진 박스에 담겨 환자가 있는 장소로 옮겨지는데 얼음 위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장기의 신선도가 달라진다. 간에 어느 정도의 지방이 끼었는지도 이식수술 적합성 여부를 판정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다.
미시간대 장기이식 수술과 과장인 제프리 펀치 박사는 환자들이 일부 기증 장기를 ‘고위험, 저질’로 함부로 폄하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펀치 박사는 “그 말은 결국 그런 장기를 이식받으려면 수술 후 상태가 오히려 악화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며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능에 큰 이상이 없는 멀쩡한 장기를 버릴 때마다 누군가 목숨을 잃거나 제 명을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능하면 완벽한 장기를 이식받고 싶은 게 환자들 모두의 공통된 소망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공급원을 통한 ‘표준 장기’를 얻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디트로이트 헨리 포드 병원에서 사고로 사망한 젊은이나 중년 남녀의 건강한 신장(콩팥)을 구하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후 보통 5년5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같은 곳에서 비표준 신장을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년2개월로 훨씬 짧다. 비표준 장기라 해도 이식수술 전후의 엄격한 모니터링 과정은 표준 장기와 차이가 없다.
미시간 로열오크 소재 뷰몬트 병원 이식외과 과장인 알랜 코프론 박사는 병세가 심할수록 비표준 장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환자의 몸 상태가 괜찮으면 양질의 장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지만 심장이 대상부전을 일으켜 신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면 비표준 장기 사용을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비표준 장기를 이식하게 되면 장기의 종류에 따라 1년에서 3년 사이에 이상을 일으킬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헨리 포드 병원 장기이식 연구소의 마르완 아보지오드 박사는 비표준 장기를 거부할 경우의 사망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아보지오드 박사는 만약 그가 환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면 비표준 장기 이식을 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잘라 말한 후 “내 스스로 이식을 거부할 정도의 장기라면 절대 환자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드릭 벤닛(63)이 비표준 간을 이식받기로 결정할 때까지에는 꼬박 2년 반의 시간이 필요했다. 만만치 않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건강한 장기를 이식받고 싶다는 미련을 접기가 어려웠다. 부실한 간을 이식해 봤자 건강을 되찾기는커녕 헛고생만 할 뿐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에게서 간의 일부를 제공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세 명의 장성한 자녀들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를 구한답시고 간을 기증할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내 한 목숨 살리려고 자식들에게 위험부담을 지우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목을 길게 늘이고 건강한 간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자신의 차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병세가 심해지자 우울증까지 찾아들었다.
트럭 운전기사로 골프광이던 그는 독거생활을 청산하고 딸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쯤에는 이미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린 상태였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며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지난여름 의료진은 벤닛과 그의 가족에게 비표준 장기이식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그에게 남겨진 시간이 수개월에 불과한 상황에서 비표준 장기 이식은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지난해 11월 성공적으로 이식수술을 받은 벤닛은 이제 골프채를 다시 잡아도 좋을 만큼 건강이 회복됐다. 그는 “내게 내일은 더 이상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비표준 장기는 훌륭한 옵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년반 전에 지금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번번이 아쉽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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