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혀 왔다. 도대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전기를 켜려 하니, 그제야 파워가 완전히 나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전기가 나가니 인터넷도 안 되고, 텔레비전도 안 나오고, 컴퓨터를 켤 수가 없으니 해야 할 작업도 할 수가 없었다.
저녁 때가 되어 부엌으로 아내가 간다. 휴대용 블루스타를 꺼내서 대충 있는 것으로 끼니를 떼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새 9시가 되니 이제 서서히 실내가 어두컴컴해 진다. 아내와 아들 녀석은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로 기어 들어간다. 나보고도 빨리 그만 잠을 자는 게 낫다고 하는데, 이렇게 일찍은 잘 수 없다고 소파에 앉아 저항을 해 본다. 가능한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보다가, 10분도 채 안 되어 포기하고 책을 덮었다. 소파에 앉아 방과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 내가 마치 다른 집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낯선 곳에서의 2박 3일. 전국을 미친 듯이 뜨겁게 달구었던 이 엄청난 열과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서 전기가 나갔던 지난 7월 6일부터 8일까지 겪었던 경험을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 3년 동안 매우 낯익은 그 공간이 전기가 이틀 반 동안 들어오질 않자, 어느 새 매우 서먹서먹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 공간을 벗어나고자 몰로, 맥도널드로, 파네라로 더위에 지친 차를 몰고 방황했던 것이다. 너무도 사랑했던 공간이, 이렇게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까.
낯선 곳에서의 2박 3일. 다행히도 3일 만에 나의 생활은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불이 켜지고, 에어컨이 ‘우-웅’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우리 가족은 환호성을 질러 댔다. 이제 우리는 살았다. 어지럽혀 있었던 방과 거실과 부엌을 분주하게 치우고 소파에 앉아 한숨을 돌리면서, 나는 문득,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특히,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갑자기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내가 아닌 마치 다른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너무도 익숙한 장소였던 ‘집’이 너무도 피하고 싶은 그런 ‘낯선 곳’이 될 수 있듯이, 우리는 갑자기 변해 버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달라진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런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한인 사회의 가정이나 사회에서 폭력과 살인, 마약과 게임 중독 등의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이곳 워싱턴 지역의 여러 상담기관이나 교회에서도 이 문제의 해결을 찾기 위해서 이런저런 세미나를 열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원래 자기의 모습을 자꾸만 잊어버리게만 만드는 그런 숨 가쁜 삶 속에서 살아가는데 지쳐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낯선 나’를 느끼기를 강요하는 이 미국땅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한 자기를 발견하고 세워가야 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기는 3일이면 들어와 더 이상 몰이나 다른 곳으로 방황할 필요가 없이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왔지만,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낯선 나’의 정체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우리는 좌절과 절망에서 빠져 나오는 시간이 더디게 된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문뜩 당신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서 ‘낯선 자신’을 느낀다면, 삶의 발걸음 잠시 멈추고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파워가 다 나간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 보는 시간을 이 여름에 갖는 건 어떨까. 그래서 낯선 곳에서의 30년 혹은 40년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돌아가야 할 곳, 익숙한 나머지 친근한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 너무 늦어서 그곳조차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런 인생으로 막을 내려서는 안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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