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자 한겨레신문 머릿기사가 나를 놀라게 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박근혜 왜 지지 하느냐고? 박정희 잘했잖아…그 딸이니까”이었다. 한국 언론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한겨레에 실린 기사로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겨레는 이날 서울 강서구 방화동 임대아파트 주민 7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정치의식에 관한 인터뷰 결과를 실었다. 임대아파트 주민은 이른바 ‘소시민’을 대표한다. 이들의 정치의식은 아파트 소유 주민과는 크게 다를 것으로 기대하고 인터뷰를 실시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 결과 가운데 두 가지 하이라이트를 소개해보자. “올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박근혜 47.2%(33명), 안철수 21.4(15), 문재인 7.1(5) 손학규 4.3(3)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 누구입니까?”에는 박정희 50.0(35), 이명박 2.9(2), 전두환 4.3(3), 김대중 12.9(9), 노무현 21.4(15)라는 결과가 나왔다.
왜 중소층에 속하는 이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박근혜를 꼽았을까? 이 인터뷰의 결과로 보면 아버지 박정희 때문이다. 박근혜는 대통령감으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잘 했으니 딸도 분명히 잘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점수를 준 것이다. 박정희는 ‘좋아하는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의 인기를 모두 합한 것과 맞먹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박정희를 선호할까? “이 바보야, 경제야 경제, 이념이 밥 먹여줘?”이다.
또 한겨레는 지난 6일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무작위로 선택,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정치의식을 알아봤다. 이 여론조사는 한겨레가 ‘창간 24돌 기획: 가난한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실시했다. 보수여부를 묻는 질문 가운데 빈곤층 26.8%, 중층 19.1%, 상층 21.6%가 “난 보수”라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 결과는 14일자 신문에 나란히 소개됐다. 보수성향의 강도가 중층이나 상층보다 빈곤층에서 더 높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도 같은 대답이 아닐까? “이 바보야, 경제야 경제, 진보친북이 밥 먹여줘?”이다.
한국 여러 중앙지를 양분하면 보수와 진보로 대별할 수 있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 전자에 속한다면 한경(한겨레 경향신문)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언론기관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소신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언론은 독자들을 가끔 오도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할 경우가 많다. 언론은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보수 진보 두 언론을 모두 좋아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노선을 내세워 반대측 언론을 비판하는 행위는 너무나 바람직한 행위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상대편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의견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륜이 정한 ‘사회정의’조차도 보수 진보의 편을 갈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겨레신문이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선정 부정사건에 대해 ‘사회정의’ 편에 서서 냉정하게 판단하여 보도한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어떤 면에서 조중동보다 더 냉혹하게 비평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특히 당권파는 부정을 부정으로 인정하고 난투극 대신 ‘회개’하고 새 출발을 했어야 한다. 국민이 얼굴을 돌리면 끝장이다. 어느 나라던 보수 진보는 모두 필요하다. 한국 땅에서 진보가 살아남는 길은 ‘사회정의’를 붙잡는 길이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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