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신용(Credit)의 사회이다. 신용이 있는 사람은 손안에 현금이 없어도 현금을 사용하듯이 살 수 있다. 그래서 ‘팡세’를 쓴 프랑스의 작가 조셉 주베르는 “신용은 재산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솝 우화가운데 ‘양치는 소년’의 이야기는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가르친다. 그 이야기는 한번 재미로 시작한 거짓말이 계속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사람들이 정말 위기에서는 믿어 주지 않는 큰 위험을 만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은행은 신용이 생명이다. 한국의 어느 은행장이 고객들의 저금을 혼자서 독식하기 위해 몰래 밀항하려다 적발되었다고 한다. 그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은행은 문을 닫게 될 위험이 생겼다. 이것을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회 윤리의 공동화(空洞化, ETHICAL EMPTINESS) 증상이다. 개인적인 범죄를 그 개인에게만 돌리기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구조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 만일에 현대사회에서 신용이라는 것이 무너지게 되면 모든 경제구조가 무너지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경제마비가 오게 된다.
신용은 반복적인 성실과 신뢰 속에서 쌓여지게 된다. 그래서 신용에는 언제나 점수(POINT)가 있게 된다. 잘하면 점수가 올라가고, 못하면 점수가 내려가게 된다. 점수가 좋은 사람에게는 그만한 혜택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낙오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신용은 자기 행위에 의한 결과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은 신용과 다르다. 신앙(FAITH)은 신용처럼 행위의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닌 하늘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기독교는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거저 받는 선물, 곧 구원을 은혜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8-9).”
교회에서는 신용보다는 신앙이 우선이다. 신용은 잘한 것에 대한 인정, 그리고 못한 것에 대한 평가, 무시, 배척을 원리로 한다. 하지만 신앙은 자격이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가난하고, 병들고, 죄짓고, 문제가 있고, 난폭한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을 받아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곳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지식과 경제가 발전하면서 교회도 신앙보다는 신용이 더 강조되는 위험한 풍조에 물들게 되는 경향이 있다.
교회를 누가 세웠으며, 교회를 누가 인도하며, 때로는 교단과 총회, 그리고 교계에서 누가 더 많은 업적을 세웠는가에 대한 것이 앞서서 주도권 싸움을 할 경우가 있다. 교회에서 누가 더 행위를 통해 신용을 많이 쌓았는지 경쟁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자신의 신용을 자랑을 했다. 사람 앞에서 보여준 선과 의, 성실과 근면을 자랑했다. 그가 어디 사람이며, 그가 무엇을 했는가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바로 믿고 나서 그는 자신이 만든 신용을 버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신앙만을 자랑했다.
신앙은 자신의 허물을 보게 하고,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우게 한다. 그러나 신용은 나만 위하는 것이다. 나를 자랑하고,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신용이 사회 구조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 이 신용논리가 잠입할 때 신앙이 머물러야 할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은혜가 아닌 행위가 더 강조되기 때문이다. 신용이 신앙보다 앞설 때 교만이 생기고, 신앙이 신용을 낳을 때 교회의 덕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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