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경기 한파, 양조업으로 이겨내
▶ 인구 8만의 피폐한 도시, 벤드 ‘맥주 도시’로 새롭게 발돋움
오리건 산속에 있는 인구 8만의 작은 도시 벤드.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부동산 에퀴티로 돈이 생긴 사람들이 몰려들어 값싼 이곳 집들을 사들인 덕분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곳이 또 이곳이다. 인근에 고속도로도 대학도 없는 첩첩산중의 외딴 도시 이곳이 경제 한파를 빗겨가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바로 맥주 양조업 덕분이다.
캐스케이드 산맥 속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이 어떻게 경제를 되살렸는 지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이 분석을 한다면 아마도 ‘맥주’는 제일 나중에야 거론될 것이다. “어떻게 맥주가 벤드를 살렸는가” 같은 말을 처음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테크놀로지 관련 분야 창업이나 주식 시장의 활성화 같은데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이 높은 지역의 청명한 하늘과 스키 타기 안성맞춤인 산정들 등 이곳의 자연 경관을 경기 활성의 한 요인으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지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실업률은 여전히 두 자리 숫자이고, 건축 관련 일자리는 대부분 사라졌고, 부동산 경기는 이전 같지가 않다.
하지만 수치에 근거한 이런 공식적 분석 보다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이 동네에는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예를 들면 10여명이 페달을 밟으며 맥주를 마시고 도시를 관광하는 사이클 펍 이야기 같은 것이다.
얼마 전 벤드 시내에서 커다란 바이크에 단체로 올라탄 12명의 남성들이 소리를 지른다.
“와, 저기 본야드가 있네! 본 야드야!”
그리고는 또 외친다.
“페달을 밟아! 페달! 페달!”
그들이 타고 있는 것이 바로 사이클 펍이다. 말 그대로 페달을 밟으며 맥주를 즐기고 원하는 양조장을 찾아가는 이동식 술집이다. 이들의 목적지는 본야드 양조장. 이 작은 도시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양조장 중 하나로 대단히 성업 중이다. 경제 분석가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본고장이라면 시애틀이나 덴버, 브루클린, 델라웨어 등지가 우선 꼽힌다. 하지만 인구 일인당 양조장 숫자로 볼 때 벤드를 능가할 곳은 없다.
인구 8만의 이 작은 도시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도 없고, 대학도 없고,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가파르고 눈 덮인 산을 넘어 16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그런 곳에서 변화가 일어났는 데 그것은 온전히 맥주 덕분이다.
오리건주 경제 분석가인 캐롤린 이건이 지난해 가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곳 데슈티스 카운티에서 2010년 양조장과 맥주집 관련 일자리는 450개다. 이것은 오리건주 전체 양조업계 일자리의 15%에 달하는 숫자이다. 주 전체 일자리 중 이 카운티가 차지한 일자리는 4%(25개 일자리 중 하나 꼴)에 불과한데, 양조업계 일자리로 보면 오리건 주 전체 일자리 7개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4~5년 전만 해도 벤드는 새로운 서부 붐 타운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민 등 부동산 에퀴티로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이곳 집들을 사들이면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동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모두가 무너졌다. 주택 시장이 붕괴하면서 일자리도 곤두박질 쳤다. 투자나 주택 임대 수입으로 부유하게 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살아남은 것이 맥주였다. 벤드의 맥주가 갖는 가장 큰 매력은 이곳에서 그 맛을 보는 것이다. 도시 매니저인 에릭 킹은 지난해부터 벤드에서 거둬들이는 숙박업소 세금이 스키나 바이크를 타기위해 와서 머무는 데슈티스 카운티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고 말한다.
전에는 사람들이 높은 산을 즐기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이 제는 도시로서 벤드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맥주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오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데슈티스 양조장은 지난 1988년 패리 피시가 맥주집 하나와 함께 창업한 양조장이다. 그후 몇 차례 붐도 있었지만 주저앉고 말았다. 벤드는 임업을 연명하는 ‘황폐한 곳’이었다고 피시는 회고한다.
그후 지난 수년간 피시는 지역 비즈니스 대표들과 연대를 맺고 상공회의소와 경제개발 그룹들에 참여했고, 이어 이들 그룹을 이끌어 나가는 데 힘을 보탰다. 아울러 양조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살롱 같은 것을 육성하고, 그들이 양조장을 창업하게 도왔다.
벤드는 이제 실리콘 밸리나 나파 같은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맥주 양조업에 더해 파생적 벤처사업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사이클 펍. 페달을 밟으며 맥주를 마시는 사이클 펍은 이제 다른 도시들로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시내관광을 하는 에일 트레일, 실리콘 맥주잔을 만드는 실리핀츠 등이다.
“이런 문화를 창조하게 된 것은 개리 피시 덕분”이라고 데슈티스의 양조 기술자였던 래리 시도어는 말한다. 그는 올 여름 양조장을 열기 위해 지난해 벤드를 떠났다.
벤드가 일종의 양조 훈련장, 크래프트 맥주의 산란장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양조장이 늘어나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수가 늘어나다 보면 맥주의 질이 희석되면서 ‘맥주 버블’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본야드에 들른 단골손님 롭 리오니그의 말이다.
“벤드를 미국의 맥주 도시로 만들려고 해요. 새로운 양조장들이 항상 생겨나지요. 그러다 보면 언제가 누군가가 정크를 만들기 시작할 때가 오지 않을 까 걱정입니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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