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연금·보험 관련은 기본 은행계좌·자동차 명의변경 전화료·약값 자동이체 취소 마지막 세금보고 등등… 처리할 일 몇달 째 이어져
▶ 유족들 “이렇게 성가실 줄 몰랐다”
헤이디 포어맨의 부친은 지난해 11월 타계했다. 운동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해 온 로널드 포어맨(85)은 은퇴 후 수년간 시름시름 앓았고, 말년에는 만성 폐질환 치료를 위해 필라델피아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난해 11월“가족들과 추수감사절을 함께 지내겠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한 로널드는 그로부터 며칠 후 아내와 네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 로널드의 생애는 거기서 끝이 났지만 그의 삶에 대한 뒷정리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사후처리는 간단치가 않았다.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산 사람이 거쳐야 하는‘지옥의 절차’였다. 유족들은 이 일이 얼마나 귀찮고 성가신지 미처 알지 못했다. 겨우 한 가지 작업을 마쳤다고 한숨을 돌리는 순간 된통 뒤통수를 맡기 일쑤였다. 단 한 차례의 시도로 마무리되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시카고에서 마케팅 컨설턴트로 근무하는 큰 딸 헤이디는 끝 모르게 이어지는 사후 서류처리를 ‘행정잔무’(administrivia)라는 조어로 표현했다. 행정잔무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마저 짜증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상심을 지닌 사람들조차 인내심을 시험받을 정도였다.
더구나 60년간 동고동락해 온 남편을 잃은 필리스(82)는 평생 ‘홀로서기’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행정적 절차가 필요한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남편이 처리해 주었는데 이제 최종 마무리가 그녀의 몫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의 무제한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뉴저지에서 샌프란스코에 이르기까지 산지사방에 흩어져 사는 자녀들에게 언제까지고 매달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후 뒤처리로 호된 곤욕을 치른 포어맨 가족은 ‘공공봉사’ 차원에서 상을 당한 사람들이 처리해야 할 잔무 리스트를 작성했다.
단, 유언장과 유산 등에 관한 재정문제 관련사항은 명단에서 제외했다. 망자의 옷가지와 유품 정리도 잡무에서 열외시켰다.
한마디로 행정적 처리를 요구하는 일들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가장 먼저 소셜시큐리티국에 연락을 취할 것을 권했다. 까다롭게 들릴지는 몰라도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단 한 통의 전화 인터뷰로 메디케어 보험을 취소하거나 생존 배우자에게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이전할 수 있다.
헤이디는 “거대한 정부 조직과 관료주의에 대한 비난을 자주 들었지만 이번에 직접 겪어보니 일반 기업보다 정부기관의 일처리가 훨씬 정확하고 효율적이었다”고 말했다.
생명보조장치 사용여부에 대한 사전 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s)를 새로 작성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대다수의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필리스와 로널드도 각자의 헬스케어 대리인(healthcare proxy)으로 서로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물론 필리스의 위임장도 남편의 이름으로 작성됐다. 따라서 필리스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 의료진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지 결정해 줄 대리인이 사라진 것이다.
이 문제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존엄사 의향서(living will)를 작성해 공증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은행계좌 변경도 놓쳐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포어맨 부부는 공동명의의 계좌를 사용했기 때문에 남편 사후에도 필리스는 아무런 문제없이 계속 계좌를 이용할 수 있었다.
만약 계좌가 남편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면 은행은 이를 동결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법원이 유언장을 승인하고 유언 집행인을 임명할 때까지 수 주일에서 수개월간 계좌 접근이 차단된다.
다음은 고인이 몰고 다니던 자동차 처분. 여기에는 사망확인서가 필요하다. 사후 뒤처리는 사망확인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감안해 퓨너럴홈(funeral home)으로부터 미리 여러 건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소유주의 사망확인서와 함께 자동차 타이틀도 같이 제출해야 명의변경이 가능해진다. 이 때 자동차 타이틀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
포어맨 부부는 중요한 서류들을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내화상자(fireproof)에 넣어 보관해 왔기 때문에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번잡스러움을 피할 수 있었다.
고인이 단독으로 관리해온 고지서를 찾아내 정리하고 혹시 취소해야 할 것이 있는지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전기료, 신용카드, 전화료 등이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대상이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뤘던 로널드는 온라인 뱅킹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계좌를 통해 각종 고지서를 납부했다. 그러나 필리스는 어느 고지서가 어느 계좌에서 나가는지 헷갈려 이중 납부를 하거나 연체 통고를 받는 등 실수를 저질렀다.
일단 중복지불을 하고 나면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돈을 되돌려 받기가 기진할 정도로 힘들었다. 필리스도 딸의 힘을 빌려 여러 통의 전화를 걸고, 편지를 띄운 후에야 겨우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정기적인 월간 구입물을 취소하는 것 역시 성가신 일이었다. 다른 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널드는 우편주문을 통해 값비싼 약품을 한번에 90일분씩 정기적으로 구입해 복용해 왔다. 문제는 프라이버시 보호법 탓에 약품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힘들어 이를 중단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남편 사후에도 우편주문 약품은 꾸역꾸역 날아들었다. 결국 필리스의 남동생이 장장 90분간 우편주문 회사 측과 전화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야 주문을 취소할 수 있었다.
비상연락처를 바꾸는 문제 역시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필리스는 그녀가 기재한 모든 양식에 비상 연락처로 남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뒤늦게 여기에 생각이 미친 필리스는 의료기록과 체육관 회원권, 지갑에 넣고 다니는 카드 등에 남편 대신 자녀들의 연락처를 기입했다.
남편의 마지막 세금보고도 마쳐야 했다. 다행히 아는 회계사가 도움을 제공하고 나섰고 로널드가 꼼꼼히 자료들을 챙겨두어 큰 힘을 덜 수 있었지만 그래도 1099 양식과 필요한 영수증을 챙기는 것은 유족들의 몫이었다.
이 외에 집문서 명의변경, 보험지급 확인, 병원 예약 취소 등 처리해야 할 뒷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로널드는 해당사항이 없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원호 수당이라든지 직장연금 등도 확인해야 한다.
헤이디는 “부친 타계 후 벌써 4개월이 지났는데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겨 언제쯤 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푸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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