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보다 한국 전통문화를 더 많이 아는 외국인을 만나면 왠지 미안하고 창피하다. 이날 라크마에서 만난 로버트 털리(사진·Robert Turley)가 바로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이 왜 여태 우리 신문에 소개가 안 됐을까 하고 찾아보니 그는 뉴욕 한인문화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2008년 7월 한국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Korean Art and Antiques)와 한국미술 애호가들의 모임인 코리안 아트 소사이어티(Korean Art Society)를 동시에 창립한 그는 불과 3년반만에 KAS 회원이 전 세계에서 2,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회원들은 단순한 한국미술 애호가로부터 컬렉터, 큐레이터, 학자, 교수 등 전문인들이 수두룩하고 한국인과 대학생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거의 매달 털리 회장의 안내로 한국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등을 그룹투어하고 있다. 브루클린 뮤지엄, 뉴왁 뮤지엄, 이영희 박물관 등 뉴욕 인근의 전시관들은 물론 보스턴, 필라델피아, 미니애폴리스 등지의 뮤지엄을 찾아다니는 등 쉬지 않고 공부하는 한편 한국음식과 영화의 밤도 개최하는 등 한국문화 홍보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으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원래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털리 회장이 한국미술에 꽂힌 건 1995년. 음악작업을 위해 일본에 갔다가 한국을 방문,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를 보게 된 후부터다.
“국립박물관에서 청자를 보고 완전히 넋이 빠졌습니다. 그렇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도자기는 처음 보았어요. 그 다음 방에선 분청을 봤습니다. 그건 청자와는 정반대로 거칠고 순박한 아름다움의 도자기였지요. 이렇게 극도로 대조적인 도자기를 한 민족이 만들어 내다니, 너무 놀라고 매혹됐습니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청자의 세련됨은 클래식 음악이고, 분청사기의 투박함은 블루스와 같다는 털리 회장은 그때 이후 한국미술에 관해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고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한편 수차례 한국을 방문, 고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해 왔다.
“한국미술의 특징은 아름다움(beauty)과 혼(soul)이 함께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한과 역사, 아픔과 고통이 녹아 있는 혼이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멋과 유머는 아주 특별하죠. 민화에 그려진 호랑이의 얼굴을 보세요. 호랑이 얼굴에 성격을 부여하고 그렇게 익살맞게 그릴 수 있는 것은 한국인만이 가진 특별한 정서입니다”
올해 초 털리 회장은 특별히 미 고교 교과서에 최초로 한국미술사 챕터를 기술한 저자로 기록되게 됐다. 미국 최대의 교과서 출판사인 맥그로 힐(McGraw-Hill)에서 출판하는 세계미술사 교과서 두 종류(‘Explosive Art’와 ‘Art Talk’)에 그가 쓴 한국미술사 챕터가 수록된 것.
“이제껏 미국의 미술 교과서에는 한국 부분이 없었는데 이젠 모든 고교생들이 억지로라도 공부하게 됐으니 너무 기쁘다”는 털리 회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발행되는 한국 전통미술 뉴스레터(Korean Art Society Journal)를 2009년 8월부터 발간하고 있다. 이 잡지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 받아볼 수 있으며 코리안 아트 소사이어티에도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www.koreanartsocie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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