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케네디 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수지 김 추모 음악회’에 다녀왔다. 보통의 음악회 정도로 생각하고 집을 나섰던 내가 잘못 생각했어도 한참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음악회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였다. 질적, 양적 규모나 진행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음악회임을 알 수 있었고 늘 그렇듯이 뒤에서 묵묵히 숨은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지휘자 김영수 박사, 24명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메트로폴리탄 여성 합창단원들, 피아니스트 고은애, 최윤아, 백지연과 케터린 수미 케이, 바이올린이스트 박지혜, 소프라노 홍선영, 조이스 진, 가수 제니퍼 루더포드 등 출연진의 다양한 음률의 선물은 근래의 찌는 듯한 더위로 고생했던 청중들에게 한여름밤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서양 음악보다 한국 가곡 부르기가 더 어렵다는데 ‘그리운 금강산’을 청아한 음성으로 잘 소화시킨 조이스 진씨와 ‘꽃구름’을 경쾌하고도 풍부한 성량으로 훌륭히 부른 홍선영은 장래가 촉망되는 ‘떠오르는 별’임에 틀림없다
메트로폴리탄 여성 합창단원들이 선사한 헨델의 ‘나를 울게 하소서(Lascia,Ch’io pianga)’와 ‘님이 오시는 지’는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인데 이렇게 어머님들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의 합창으로 들으니 더욱 좋았다. 피아니스트 고은애 씨의 반주는 박지혜 바이올린 연주와 절정을 이루어 청중들을 열광케 했으며, 최윤아씨의 ‘쇼팽 야상곡’은 밝은 달밤에 백조처럼 우아했다. 합창단원과 제니퍼 루더포드의 ‘Sunrise, Sunset(반주 백지연)’은 또 다른 면에서 우리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준 것 같다.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예술가의 연주를 듣고 본 분들은 대부분 “라디오나 CD등 음반으로 듣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보다는 유럽 특히 독일에서 더 유명한 박지혜는 가냘픈 외모와 목소리와는 정 반대(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신들린 것처럼 정열적이고 대담하면서도 한편으론 섬세한 기량으로, 바이올린 연주의 진수를 유감없이 청중들에게 선사했다.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생상, 사라사테 등의 곡 중에서 우리들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은 곡들을 선택하는 섬세함도 보여주었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리 앞에 더욱 많은 관람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이 모든 음악적 사실 이외에 그날 밤 나는 더 중요한 감동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특히 어머니들)의 가슴 저린 아픔이 큰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식을 앞세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대신 저를 데려가시지, 하느님 야속하십니다”라는 원망 또는 비탄이 지나쳐 실성하기도 하며 자식 가는 길이 영영 외로워 보여 동행까지 하는 어머니들을 우리들은 많이 봐왔다. 그러나 채 30이 되기도 전, 젊음을 펴보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딸에 대한 추모 음악회를 10년째 해오고 있는 비비안 김 회장은 분명 굳은 신앙을 통해 ‘비탄을 뛰어넘어 사랑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다. 딸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고 계신 훌륭한 어머니로 추모 음악회 수익금은 암 퇴치 연구기금과 젊은 음악도들을 위해 쓰인다.
모든 세상의 어머니들은 훌륭하다.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강인하다. 비비안 김 회장은 체구는 작지만 마음은 거인이다.
수지 양! 당신은 정말 훌륭하신 어머니를 두셨습니다. 수지 양! 하늘나라에서 이제부터는 이승에 계신 당신의 어머니를 위해 더욱 많은 간구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이승을 떠났어도 당신의 이름으로 더 큰 사랑이 이 세상을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 어머니의 애끓는 모정이 큰 사랑으로 승화돼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성길
의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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