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간 태권도 보급 한길..영원한 무도인
▶ 61년 맨하탄 57가에 미주최초 태권도장 개관
뉴욕에서 한인 처음으로 태권도 도장을 열고 한국 무술을 국제적으로 보급한 조시학씨(미국이름 헨리 조·76), 그는 최근 백악관산하 대통령 건강 및 체육 자문위원회가 수여하는 2011 PCFSN평생공로상을 수상, 한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를 만나면 ‘최초는 최고와 일맥상통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인 최초 평생공로상 수여
미국 어딜 가나 있는 태권도 도장에서 백인, 스패니시, 흑인 등 타인종들이 흰 도복을 입은 채 ‘차렷’, ‘경례’하고 한국어로 경례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이어 ‘하나’, ‘둘’, 한국어로 힘차게 구령하며 품세를 익히는 것을 볼 때 저절로 가슴뿌듯해진다. 현재 태권도는 전세계 5,000만명이상 수련자에 300만 명의 블랙 벨트를 지닌 세계인의 스포츠이자 무도가 되었다. 조시학씨는 수만 명의 제자를 가르쳤고 그중 수천 명이 블랙 벨트 소유자이다.
지난 5월10일 조시학씨는 백악관산하 대통령 건강 및 체육자문위원회(President’s Council on Fitness Sports & Nutrition-PCFSN)가 수여하는 2011 PCFSN 평생공로상을 한인최초로 수상했다. 지난 50년간 미국 내 태권도 보급에 힘쓰며 국민 건강과 체력 향상을 위해 공헌한 공로였다. “영광이다. 이 상은 아이젠하워 대통령때 시작되어 빌리진 킹, 미셀 콴, 드류 브리스(금년도 수퍼보울 MVP 수상선수)등 20여명의 이사가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번에 뉴트리션, 건강 등에 공헌한 의사와 박사 등 5명이 상을 탔는데 나를 추천한 기계체조 3관왕인 도미닉 다워즈가 태권도를 배우면서 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다워즈 이사가 태권도를 배우게 된 것은 사범과 학생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 절 하고 예의범절을 지키는 도장 분위기가 입관한 첫 번째 이유였다고 한다.
조시학씨는 “시상식 후 나와 같이 사진 찍자는 제안에 그는 ‘물론이죠, 대사범님. 그런데 클라스에서처럼 저와 맞절하면서도 한 장 찍으시지요’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조시학씨가 뉴욕은 물론 전미주 최초로 ‘헨리 조 인스티튜트’ 도장을 맨하탄 57가에 개관한 것은 61년말, 그 당시 미국에는 20~30년 먼저 자리잡은 일본 가라테 도장과 중국 쿵푸가 있었다. 코리안 가라테 도장은 개관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62년 11월 자니 카슨쇼, 그외 잭팟 쇼, 와이드 월드 오브 쇼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탔다. 1964년에는 미국, 캐나다 지역을 10주 동안 돌면서 멋진 격파 시범묘기를 보여주었다. 이때 얻
은 닉네임이 ‘수퍼 도깨비(Super imp)’, 작고 다부진 몸매를 귀신처럼 날려 송판을 격파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1965년 헌터 칼리지에서 전미오픈선수권대회를 열었는데 선수가 300~400명, 관중은 1,500~2,000명으로 성황을 이루었는데 거의 미국인이었다. 67년 제3회는 전미동양무술대회로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었다. 이때부터 몇 년간 브루스 리가 뉴욕, 워싱턴, LA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 게스트로 참여하여 쿵푸를 보여주었다” 매년 3월 첫 주 열리는 전미동양무술대회 (올 아메리칸 태권도 가라데 쿵푸 챔피언십)는 막 연예계에 데뷔한 브루스 리에게도 홍보 기회가 된 셈이다. 현재 태권도, 가라데, 쿵푸 대회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에 이준구씨가 있다면 뉴욕에는 조시학씨가 태권도의 입지를 다진 다음 1970년 코리안 가라데란 이름을 버리고 태권도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태권도 보급 공로로 한국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선사했다.
▲초창기 힘든 시절
23가, 28가, 56가 렉싱턴 애비뉴 시절을 거쳐 56가(5&6 애비뉴)에서 16년간 도장을 열다가 2001년 후배에게 도장을 물려주고 은퇴한 조시학씨는 뉴욕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초창기라고 한다.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도장을 운영하면서 ‘운동에 사무쳐 살았던’ 그 시기, 도장개관시 필요한 조항을 잘 몰라 관리소홀 및 소방시설 미비로 재판까지 갔다. 맹인 건물주가 ‘헨리 조는 가장 월세를 잘 내는 세입자이고 도장 문 닫으면 저희 맹인들은 먹고 살 것이 없다’고 증언하여 재판에서 이겼다.
한국무도를 알리는 한편 72년~74년까지 제11대 뉴욕한인회장을 지내며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도 잊지 않았다. 이때 한인회를 비영리 단체로 등록하고 한인회장 임기를 2년으로 정했다. 태권도를 통한 단정한 몸가짐과 품성이 몸에 밴 조시학씨는 당시 태권도는 성인들의 호신을 위한 개념이었고 그리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다고 한다. 조시학씨는 1935년 조맹열·임문제씨의 4남 중 막내로 군산에서 태어나 해방이 되면서 서울로 이사했다. 8살 위 셋째 형을 따라 어려서부터 유도를 배웠고 몸을 날리면 발과 손을 같이 사용하는 태권도(당시 권법, 당수라 부름) 시범을 구경하면서 태권도에 매력을 갖게 되었다.
“나는 항상 말로만 듣던 신비에 싸인 이 무도는 호신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의 인격을 만들어 준 무도로 접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성동중학시절 6.25가 나고 다시 군산으로 피난을 가 군산고를 다니면서 1953년 지도관(Ji Do Kwan)에서, 고려 대학에 들어가서는 윤쾌병 관장을 모시고 운동을 계속했고 공수도부 주장까지 했다. “1958년 미국 유학을 왔다. 유명대학에 입학하려면 특기활동이 중요해 특기란에 코리언 가라테 블랙벨트 2단이라고 기입했다”1961년 일리노이 주립대학원 경영경제학과 석사를 받고 한국으로 가려는 그에게 부모님은 ‘5.16이 일어나 어수선한 시국이니 미국에서 정착할 것’을 권했다.
▲지면서 이기는 무도
“1960년대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태권도 사범 수천 명이 미국으로 몰려왔다. 미국에 있는 일본 가라데 사범들은 한때 우리 태권도 사범을 존경하고 부러워했다. 우리가 잘 뭉친다는 것이었다. 태권도 사범수가 수백 명일 때 일이다. 요즘 불협화음이 종종 일어나는데 한국에서 온 사범 수가 많아서인지 파벌이 생겨서인지 원로로서 걱정이 된다. 해외와 한국간의 다리 역할을 잘 하여 태권도 조직체를 잘 재정비하고 더욱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태권도에 관한 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태권도는 스포츠이며 무도다. 화랑도 정신은 태권도 정신과 같다. 많은 도장에서 운동시간에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께 효도하며 친우간 신의, 임전무퇴, 살생유별 등을 영어 또는 타국말로
번역하여 가르친다. 태권도가 그 짧은 기간동안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경기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시합에서 이기면 ‘어떻게’, 그리고 ‘왜?’ 이겼는지를 잘 생각해 보고 기억한다. 그리고 지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어떻게’, ‘왜?’ 졌는지 생각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잘못을 교정하기 위한 수련을 하고 노력하여 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한다. 그것이 자신을 이기는 태권도인의 길이다, 이렇게 자기를 다스리고 이기는 것은 상대방 어느 누구를 이겨 받는 상보다 더 중요한 상이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가 걸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50개국 100여명의 선수가 참여하고 있다. “올림픽에 연연하는 것은 무도인의 자세가 아니다.”는 그는 태권도를 품세와 겨루기에만 치중하지 않고 모든 동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해명하며 또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가르친다. 그의 가족은 패션디자이너· FIT 교수이던 부인 조명숙씨, 아들 둘은 모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지금도 세인트존스 대학 태권도팀 헤드 코치로 일주일에 두 번 태권도를 가르치는 조시학씨, 태권도에 관한 한 언제라도 ‘열혈청년’의 몸과 마음이 된다. 뉴욕의 태권도 역사를 정리할 의무를 느낀다는 그에게 꼿꼿하고 푸른 무도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조시학씨의 태권도 저서. 그외 공동집필로 태권도 저서 3권을 출간했다. (Tae Kwon Do; Secrets of Korean Karate (Charles E.Tuttle Co., 1968), better Karate for Boys,(Dodd, medd, Medd and Co., 1969), self-Defence Karate. Stravon Publication, 1970)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