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내린지도 반년만 더 지나고 나면 만 10년이 된다.
처음에 소개된 집이 밸뷰라는 고급 동네에 월 2,300불짜리 호수가 보이는 주택이었다. 직장도 없고, 막연한 기대감과 그에 비례해서 불안도 가중되는 시기에 가져 온 돈은 야금야금, 공기 좋고 할 일이 없으니 그동안 못잤던 잠이나 실컷 잘려고 해도 오히려 잠도 없어지고 어찌어찌해서 새벽 조깅 길에서 만났던 분들이 조그만 교회로 인도해서 가보니 주일마다 기도하면서 온통 울고불고(?) 하기에 ‘이민생활이 얼마나 힘들면 저러시나,’ 사실은 은혜의 충만으로 감사의 기도였는데도 알 턱이 없었던 나는 오히려 헌금을 더 해야만 하였다.
언젠가 교인 중 누군가 이사를 한다고 공지를 해서 이사하는데 무얼 어떻게 하는지 궁금도 하고 하는 일도 없어서 가 봤더니 교인들 차량을 모두 동원해서 짐을 옮기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새로 이사한 집의 아파트 동호수를 몰라 곤란했던 기억이 있었을 뿐, 일부 집안정리만 남긴 채 주인들이 할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던데 비해서 별개 다 다르네, 말을 붙여봐야 본전도 못 찾을 시기이니 묵묵히 하는 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다.
그 뒤로도 공교롭게 거의 매월 이사할 때마다 하는 일 없는지 뻔히 아는 처지이다 보니 이삿짐 도와주러 다니길 예닐곱 번, 10개월을 살다가 정작 내가 메릴랜드로 이사 올 땐 이삿짐 센터에 짐을 모두 보내고 나서야 작별인사를 했다.
멀리서 구두로 아파트 전세 계약을 하게 되니 이곳 물정도 모르고 해서 락빌의 아파트를 1,600불에 세를 들었다.
어느 날 집사람이 델리 레스토랑에 취직을 했는데 차가 한 대뿐이어서 출퇴근을 시켜야 하기에 내려주고 돌아서려니 주인 아저씨가 이말저말 묻는 끝에“부르주아네”하는 것이다.
3층 아파트를 나무로 지어놨으니 위층의 걸음걸이가 그대로 들리고, 벽 하나를 두고 안방이 맞닿은 대칭형 구조라서 거구의 백인 신혼부부가 어김없이 밤 11시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 남짓 지속되는 신혼첫해 세러모니는 상상을 초월한다. 애들과 거실에서 TV 크게 켜놓고 12시가 넘어야 방에 들어가 잠을 자야 되는 아파트에 사는데 그게 부르주아라면 서민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집 지을 때 모서리나 계단 밑, 구석지마다 다용도 공간을 두어 공간 이용효과를 극대화해서 그런지 장롱이 필요 없고, 어플라이언스로 분류되는 냉장고, 세탁 건조기, 오븐 식기세척기 등은 누구나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택에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분류공간이 많아서 전등과 스위치가 많고 집안의 물건이 고장 났을 때가 여간 곤란하다. 처음에는 어찌 연결해서 사람을 불러다가 고쳐 보지만 물건 값과 거의 맞먹는 수리비용에 어안이 벙벙해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집집마다 그렇게 큰 장비함과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70년대 한국의 광고카피가 제시하듯 거대하게 분업화된 사회에서 갑자기 자급자족 사회로 회귀한 듯한 착각이 순간 스친다. 그것도 자주 해버릇하고, 어느 정도의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엔 전문가를 부르기가 부지기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일에 겁이 없던 우리부부는 일용직 인부 세 명과 함께 이사 트럭을 빌려서 5년 전에 했듯이 한여름 땡볕에 이사를 마치고 나니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고, 나이 먹은 걸 잊고서 아무리 이사를 자주 다녔다고는 하지만 좀 아끼려다가 사람 잡는 줄 단단히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융통부리다 보면 무엇으로 어떻게 절약을 하나, 그 10년이 사람을 이렇게 바꾸어 놨다.
와이프와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이 유난히 알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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