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도시를 가 봐도 그곳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있다.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란츠히드(Lánchíd)인데 란츠와 히드는 각각 체인(chain)과 다리(bridge)를 뜻한다. 이 다리가 부다페스트의 상징물이 된 것은 다뉴브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야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된 헝가리의 대표적인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명성 덕분이기도 하다. 해질 무렵,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이 다리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있노라면 화려함을 넘어 슬픔을 느낄 정도이다.
1849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서울의 남북을 처음으로 연결하는 한강철교(1900년)처럼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최초의 다리인데 다리 양쪽에 있는 4마리 사자상 때문에 ‘사자다리’라고도 한다.
세상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 다리 역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다리가 완공된 후 개통식이 열렸는데 사자상을 만든 조각가가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다고 공언하면서 만약 사자상에 조그만 흠이라도 있으면 다뉴브강으로 뛰어 내리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곳에 참석한 어떤 사람이 사자상에 혀가 없다고 말했고 이에 그 조각가는 강 아래로 뛰어 내렸다고 한다. 전설의 내용처럼 사자상에는 실제로 혀가 없는데 어쨌든 이 다리에 얽힌 죽음의 모티프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도 재현된다.
아름다운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글루미 선데이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있었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1999년 가을 부다페스트에 온 한 대사가 써보(Szabó)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악사들에게 글루미 선데이라는 노래를 주문한다. 음악이 흐르면서 그는 피아노위에 놓인 한 아름다운 여자사진을 보곤 돌연 심장이 멎어 숨을 거둔다. 그리고 영화 속의 이야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60년 전인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태인 출신의 레스토랑 주인 라슬로(Szabó László)는 자신의 연인이자 종업원인 아름다운 미모의 일로너(Varnai Ilona)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할 피아니스트 언더라시(Aradu András)를 고용하는데 이때부터 일로너와 언더라시의 운명적 사랑이 시작된다.
일로너의 생일날, 가난한 아마추어 작곡가 언더라시는 자신이 작곡한 노래 글루미 선데이를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독일 청년 한스도 일로너에게 청혼한다. 청혼을 거절하는 일로너. 글루미 선데이의 아름다운 선율을 되뇌며 한스는 다뉴브강에 몸을 던지고 그런 그를 라슬로가 구한다. 그 후 한스는 라슬로에게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독일로 떠난다. 일로너와 라슬로 그리고 언더라시 사이에 뒤엉켜있는 사랑의 구조는 불안한 상태에서 계속 유지되지만 한스가 독일군 장교가 되어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면서 급격히 해체된다. 한스의 임무는 유태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었다. 한스를 구한 유태계의 라슬로도 예외일 순 없었다. 냉혈인간이 되어버린 한스는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라슬로를 구하기 위해 일로너도 한스를 찾지만 그는 일로너의 육체에만 관심이 있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일로너는 사랑하던 언더라시와 라슬로를 죽음으로 내몬 한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60년을 기다린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처음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일로너는 부다페스트 대사로 부임한 한스의 80세 생일파티가 써보 레스토랑에서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 그의 음식에 독약을 넣어 복수함으로써 이 영화는 끝난다.
1935년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쉬(Rezső Seress)가 작곡한 노래 글루미 선데이는 영화보다 더 유명세를 치렀다. 이 곡이 처음 발표된 이후 3일 동안 부다페스트에서 5명이 자살한 것을 시작으로 8주 만에 187명이 자살했다. 미국의 젊은이들도 이 곡을 듣고 허드슨 강으로 뛰어내렸다. 결국 BBC를 비롯한 세계 여러 방송국은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죽음의 노래 글루미 선데이는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이 곡이 ‘자살을 부르는 노래’라는 불명예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은 것은 1968년 1월 7일 작곡가 레조 세레쉬의 자살이었다.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는 향년 78세의 나이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하였다.
(한국외대 교수/UC버클리 객원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