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누를 수 없는 질투와 분노로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후예로 태어난 우리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질투와 거짓, 분노와 싸움을 배운다. 금세기 최고의 영성가로 불리는 루이스(C.S. Lewis)도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범죄와 전쟁, 질병과 테러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우리 조국 한반도도 조그마한 땅덩어리의 반만년 역사에 크고 작은 전쟁이 자그마치 천여번이라 하니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말에 ‘이웃 사촌’이란 말이 있고, 영어에는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는데, 자주 보지 않으면 생각도 멀어지게 된다는 뜻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에는 생명을 내걸고 험악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꽃다운 젊은이들이 오늘 하루도 무사하기를 소원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대부분 우리들은 이 격전의 포성과 저들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또한 직접 우리의 자녀나 가까운 사람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 전쟁을 거의 잊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바쁜 전쟁터에서 모처럼 틈을 내어 보내온 친구의 아들 지미의 이메일에 의하면, 이제 날씨가 따뜻해져 거의 매일 적들의 공격을 받는다고 했다. 지미는 전쟁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보냈다. 적의 총탄에 두 다리가 모두 날아간 전임 소대장의 자리를 떠맡고,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병들을 이끌기 위해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기도 부탁을 해왔다. 부하가 총탄에 맞아 엄청 피를 흘리며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갈 때 탈레반의 총격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 헬리콥터에 부상병을 호송하는 장면을 마치 영화의 한편같이 생생하게 그려 보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는데 아픔이 있다.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이 전쟁은 천문학적인 경비가 계속 들어가고, 약 1500여명의 미국 병사가 목숨을 잃었는데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직장 동료의 아들 존은 사병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고 있다. 동료로서 무언가 힘이 되어 주어야겠기에 위문품을 모아 후방에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격려의 편지와 함께 군사우편으로 보냈는데, 오랜만에 온 답장에서 자기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것에 대해 아주 감사해 했다. 감사의 편지와 함께 위문품을 앞에 놓고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며칠 후 존의 바로 옆에 앉았던 동료가 전사했다는 슬픈 소식을 보내왔다. 아프리카의 개발되지 않은 오지에서 사역하는 K 선교사는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에게 심지어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조차 잊히는 외로움이라고 했다. 하물며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의 군인들은 말할 것도 없겠다.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모두 잃고, 그러나 제대 후 국회의원까지 된 루이스 풀러(Lewis Puller)는 사랑하는 아내가 떠나간 후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는데, 퓰리처상을 받은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자서전(Fortunate Son)에서 자기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냉소, 무관심, 그리고 반대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미와 존, 그리고 교회 구역장의 아들 피터는 전쟁터에 있다.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새벽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무릎 꿇고, 가끔은 격려의 편지와 위문품을 보내기를 원한다. 할 수만 있다면 워싱턴 근교의 수많은 한인 교회들도 전쟁터의 한 부대를 입양하여 구체적으로 위로와 격려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발상을 해본다.
이러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젊은이들에게 마땅히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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