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철을 타고 딸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엘 간다. 딸애는 지난 여름 낳은 막내둥이까지 합해 이젠 3남매의 엄마가 되었다. 열두살 짜리 첫째 딸은 사만타, 이제 곧 세살이 되가는 둘째 딸애는 데니엘, 그리고 막내둥이 사내애의 이름이 니콜라다. 그들 가족은 사만타는 샘, 데니엘은 데니, 니콜라는 니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우리 딸 이름이 알렉산드라여서 그애도 알렉스란 애칭으로 부르기 때문에 모두 남자 이름 같지만 사실은 여자들 이름이다. 그 집에 도착해서 내가 처음 부르는 이름은 니코야!다. 그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제일 처음 나를 반기며 뛰어나오는 아이는 둘째딸인 세살배기 데니다. 끄랜마! 유 갓 마이 프레젠트? 그애는 눈을 반짝이며 늘 그렇게 묻는다.데니도 예쁘지만 아무래도 9개월 짜리 젖살이 통통하게 찐 니코가 내겐 우선이다. 아마 그래서 옛말에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나보다. 그 조그맣고 통통한 손과 앙징 맞은 발을 보고 있으면 꼭 깨물어 주고 싶다. 내가 니코야!하고 부를때마다 그녀석은 싱글벙글 환하게 웃는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도 그녀석은 내 얼굴과 목소리를 아는것 같다. 내가 니코를 누구보다 더 예뻐하는 이유는 이 녀석의 생김새가 꼭 한국애를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절반이 한국애고 그애 남편인 내 사위는 그리스계인데 어찌 유독 동양인만 닮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처음 니코를 임신한 것을 알았을때 그들 내외는 기쁨보다 약간 당황한 듯이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세째는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는데 덜컥 임신이 되자 약간의 걱정이 되었던것 같다. /저 먹을 복은 다 지가 타고 난단다./ 나는 그들에게 그런식의 한국 속담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애가 태어나자 딸 부부는 니코에게 홈빡 빠져버렸다. 딸만 둘 있다가 아들애가 태어나니까 그 기르는 재미가 또 다른가보다. 엄마! 나는 참을성도 없는데 왜 하나님은 내게 셋이나 되는 아이를 주신것일까요? 딸은 가끔 힘이 들때마다 이렇게 푸념 비슷한 말을 한다. 아마 바로 그 이유때문이겠지. 네게 인내심을 주시려고라고 나는 대답한다.
딸 아이 집은 늘 소란하다. 아이들이 웃고 우는 소리, 떠드는 소리로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다. 둘째인 데니가 한참 말썽을 부리는 세살짜리라서 그애와 놀아주고 밥 챙겨주는 일만도 손이 모자란다. 니코가 가진 장난감은 모조리 달려가서 뺏는다. 그러면서도 니코가 잠에서 깨면 달려가서 하이!바디! 하면서 뽀뽀도 해준다. 어느때는 몰래 한대 때리기도 한다. 아마 샘이 나기도 하고 심술이 나서일 것이다.
요즘엔 니코가 구개월이 넘어 가면서 제 누나가 장난감을 뺏으려면 안 뺏기려고 소리를 지르고 얼굴이 벌개지며 큰소리로 울기도 한다. 아기에서 점점 생각이 있는 한 인격체로 변해 가는것 같다.
지금이 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황금기야! 짜증 내지 말고 엔조이해!라고 말해주면 아직 딸애는 그말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그애가 그 말의 뜻을 깨달으려면 한참의 세월이 흘러가야 한다. 우리 애들이 연년생으로 태어나 힘들때마다 한 아파트에 사는 나이 지긋한 분들은 언제나 내게 그렇게 똑같이 말해주곤 했다.
이제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그 말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말 그때가 좋았지. 아이들이 어리고 집에 다 모여 있을때, 저녁을 먹이고 일찍 목욕을 시켜서 모두 잠자리에 들었을때, 이젠 나만의 시간이구나!하며 한권의 책을 손에 쥐고 누리는 그 한가로움과 평화가 진정한 행복이었던것을! 언제나 사람들은 행복할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어리석음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인생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행복의 선택이라는 수필집을 읽었다. 그중 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었다. 당신은 지금 즐거운가? 행복한가? 돌아오는 전철역 안에서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운 좋게도 나는 아직 즐거워! 행복해!라고 자신 있게 말할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삶이 감사하고 가족들 모두가 다 건강한 것이 감사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 주는 것이 감사하고 내 아이들중 누구 하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또 감사했다. 엄마! 고마워요. 아이 러브 유! 딸은 전철역 앞에 나를 내려주면서 항상 그렇게 말한다. 나도 고맙긴 마찬가지란다. 어딘가 이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내가 베푼것보다 더 많은 기쁨을 선사 하니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들어 기꺼이 빠이!빠이!를 한다.
미국 속담에 손자들이 올때도 반갑지만 갈때는 더 반갑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새삼 지금 내가 가진 자유가 더 좋다. 남편은 나를 픽업해서 태우고 가는 차 안에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비록 딸애의 집이 매일 시끄러운 장마당 같지만 ,그애들의 집은 홈이고 우리 집은 그냥 하우스에 불과 하다고.
이제 또 세월이 흘러 우리 딸이 내 나이가 됐을때, 그애도 제 딸에게 나처럼 말해줄 것이다. 지금 엔조이 하거라 얘야!인생은 그리 긴것이 아니란다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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