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요즘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약을 잡수셔도 요즘은 증세가 자꾸 나빠지시는 민주 할머니, 일요일에도 벌써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셔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신다. 바로 옆방에 주무시던 엄마는 다른 가족들이 깰까봐 놀라서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면 할머니 옷은 어느새 소변으로 젖어있고 쾌쾌한 냄새는 온 집안에 진동, 멀리 있는 방에까지 전해지고 엄마 목소리는 목욕탕에서 물소리와 합쳐진다. 그 쾌쾌한 냄새는 아무리 이불을 뒤집어써도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우리 집 하루는 시작하는 것이었다.
지난 8개월 동안 엄마는 삼촌, 고모들이 둘이나 더 있어도 할머니를 모시지 못하겠다는 이유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시고 힘든 생활을 시작하셨다. 병원에서 모시고온 후 얼마간은 심하지 않으셨는데, 요즘은 가끔 짜증이 나시는지 할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는 것이 어쩔까 생각 중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다가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누구도 자기만큼 정성껏 잘 돌봐드릴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고 말씀 하신다.
할머니는 멀쩡하게 화장실을 가시다가도 가끔 방바닥에 변을 칠해 놓으시고 방안을 빙빙 돌기도 하신다. 이렇게 아침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실랑이는 끝이 없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목욕탕을 들락거리는 엄마도 가끔은 지치시는 것 같았다. 어쩌다 다른 형제들이 오면 며느리가 밥을 주지 않느니, 자기를 구박하며 나가지도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너무 밥을 맛있어 하셔서 변소를 많이 가시는 것 아니냐고 민주가 가끔 곁에서 말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친척들이 오면 허구 헌 날 어미가 밥을 굶긴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데, 우습게도 이 말을 친척들이 반쯤은 믿는 듯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하도 기가 차 할 말이 없다며 치매에 걸린 사람을 직접 모시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즘 엄마의 허리 병이 도져서 물리 치료를 받으시느라고 할머니를 큰집에 2주일동안 가 계시게 했다. 며칠 후 병원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엄마는 할머니가 궁금하셔서 큰집에 들리셨다고 한다. 그 큰집에 어머니가 계신 방은 바깥에서 방문 고리에 숟가락이 꽂혀있고 문을 여니 방 한쪽에는 요강이 놓여있고 발목에는 요강이 닿을 정도 거리만 움직일 수 있게 끈이 묶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 그릇에는 먹다 남은 개밥처럼 이미 말라비틀어진 밥과 숟가락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 사이 몸무게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았고 할머니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그만 엉엉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 눈빛에서 무엇인가를 얘기하시는 것 같아서 무조건 모시고 왔다고 엄마는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큰 동서는 친구들 모임이 있어서 외출했었다고 했다. 아픈 사람 병수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 말리는 일인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그날처럼 엄마가 화가 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무척 아끼고 애지중지 하는 베개가 하나있다. 누구도 이것에 손을 못 대게 하시는데 어쩌다 내가 만지면 알 수 없는 욕을 막 하시곤 했다. 일 년이 거의 되던 때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람들이 베개를 태우려 뜯었는데 그 속에 한 장의 편지와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왔다는 은비녀 그리고 그동안 짬짬이 모아온 돈이 조금 있었다. 편지를 읽는 엄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미야,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못할 짓만 하고 가는 구나. 어미야, 네가 나 때문에 고생한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안단다. 너의 예쁜 마음은 내가 잘 알고 있단다. 며늘아, 사랑한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내가 잠시 정신이 들어 이 편지를 쓴단다.”
지금도 엄마는 울적해지면 장롱 옷장의 구석에서 꺼내보는 보물처럼 아끼는 할머니 편지와 은비녀, 이제는 정말 엄마의 보물이 되어 오늘도 장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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