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새 봄이다. 그러나 봄은 봄이지만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낮 기온은 높다. 비가 더 많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철이다.
멀리 낮은 산 언덕에 푸른 방초들이 햇살을 받아 가지런하고, 지난
계절에 잎을 떨구었던 나무들은 가지마다 촘촘히 새움들을 틔우며
제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가다듬어 가고 있다.
가지 끝까지 열심히 물을 길어 올린 나무들이 하나씩 꽃을 피운다.
맨 먼저 돌배꽃(Flowering Pear)이 하얗게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봄이라면 으레 추위를 이겨낸 매화꽃이 처음으로 피기 마련이지만
겨울 없이 날씨가 온화한 이곳 북가주에서 매화를 보기란 어렵다.
매화와 목련을 제치고 눈송이처럼 하얀 꽃들을 피운 돌배꽃에서
봄으로 향한 설레임 같은 것을 느낀다.
햇볕 바른 곳에서는 벌써 꽃자두(Flowering Plum)가 분홍 양산을
걸치고 봄나들이를 나서려는 듯 화사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돌배꽃이라든가 꽃자두라든가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 나무들은
모두 꽃을 내세울 뿐 불행히도 그 열매는 있으되 너무 작고 떫어서
먹지 못하는 나무들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먼저 피어나서 그나마
관심을 두었으나 나무로서의 모양은 바람에 약해서 잘 넘어지며
풍성함도 없어 큰 그늘을 만들지도 못한다. 꽃은 자그맣고 여리며
피는 시기도 짧아 바람 한번 불면 후루루 꽃비 내리듯 흩날린다.
세상의 모든 대상은 그 고유의 이름으로써 존재 의미가 있다는데
그렇다면 돌배꽃이나 꽃자두는 봄을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로서
그 역할을 다한 셈이 아닐까 한다.
어느 꽃이나 쉽게 피는 꽃은 없다. 꽃은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햇빛과 물과 바람만 있으면 스스로 알아서 핀다. 추위를 이기어
내고 지금 이 순간도 꽃봉오리를 여는 꽃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꽃이 없는 봄이란 얼마나 삭막한가
봄은 아무래도 꽃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도약을 위한 계절이다.
주어진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고 움츠리는 것은 건강에도 안 좋다.
겨울을 참아내며 새 움이 맺힌 것처럼 봄 훈풍에 기지개를 펴고
바라보는 푸른 하늘 위로 봄새들 지저귀는 맑은 소리가 들린다.
이제 목련이 필 차례이다.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런 연꽃이라고
‘목련’이라 부르는 목련은 봄이 와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의 모양과 향기를 애써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오므린 듯 펼친 듯 큰 꽃잎을 연다. 2 년 전에 필롤리 가든(Filoli
Garden)에서 황목련을 보고 그 우아한 자태에 넋을 흠뻑 잃고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나무에 대해 많이 아는 나 이지만
이 곳에 20 여 년 살아오면서 처음 본 황목련에 탄성과 황홀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진 않았지만 오랜 기다림과 눈맞춤이 있은 후
그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봄이 왔어도 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종소리를 울리며 마치 ‘일어나 걸어라! ‘ 하는
깨달음을 주는 것처럼..
나무는 겨울이 되고 잎이 다 떨어져야 그 전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런 후에야 엇갈리고 쓸모 없는 가지들을 솎아내고 잘라주며 봄을
준비해주면 나무는 대견스러이 나이테 하나를 또 키워간다.
나무의 나무다움은 고통을 인내하며 봄을 기다리는 겨울에 있다.
그렇다. 언 땅이 녹으며 봄을 일으킨다는 입춘(立春)도 지나고,
봄을 알리는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고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녹아
물이 많아진다는 우수(雨水)가 멀지 않았다.
이렇듯 ‘이 봄에 부치는 나의 노래’ 는 삶의 열정과 희망을 담았다.
<누워있는 절망들이여, 움츠린 희망들이여, 이제 일어나라!
이 봄은 우리의 것이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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