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마다 자기 일에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예컨데 식당주인은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렇고, 교사는 크게 성공한 제자들을 볼 때 그렇고, 의사는 중환자를 완치시켰을 때 그렇고, 목사는 불신자에게 세례를 줄 때 그렇다.
글쟁이인 기자들도 신바람 날 때가 있다. ‘스쿠프’(특종보도)로 타 언론사들을 압도할 때 그렇고, 독자들이 글에 공감한다며 격려해줄 때 그렇다. 필자도 글이 본업이지만 지난 11년간 해마다 하루는 글과 관계없이 뿌듯함을 느꼈다. 어제가 바로 그 날이었다.
한국일보 시애틀지사가 매년 연말연시에 펼치는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이 지난달 말 마감된 후 ‘한인사회 긴급기금(Korean Emergency Fund)’에 모아진 성금을 캠페인 이사회가 실제로 불우이웃들에게 배정하는, 이를테면 캠페인의 피날레를 장식한 날이었다.
올해는 특별히 신바람 날 이유가 있었다. 최악의 경기침체 상황에서 두달 남짓 동안 무려 5만6,136.36달러의 성금이 답지해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캠페인 시작 전에는 불안했다. 주위에 성금 기탁자보다 성금수혜 대상자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은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으면 도움의 손길을 펴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이 작년 캠페인에서 입증됐기 때문이다. 그해에도 불황이 우심했지만 역대 최고액인 5만3,272달러를 모아 역대 최다 수혜자인 41명에 배분하는 기쁨을 맛봤었다.
본보 캠페인만 성공을 거둔 건 아니다. 본보와 같은 기간에 캠페인을 벌인 시애틀타임스도 역대 최고였던 전년보다 15% 늘어난 92만6,069달러를 모아 기록을 경신했다. 그에 비하면 본보 모금액이 ‘새발의 피’라고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한인인구 규모나 척박한 이민사회의 여건을 고려할 때 본보 모금액 5만6,000 달러는 56만 달러나 진배없다.
어제 모임에서 KEF 이사들은 대한부인회, 한인생활상담소, 아시안상담소, 타코마 굿윌 등 4개 사회봉사기관이 추천한 43명의 수혜신청자를 한명, 한명 꼼꼼하게 심사했다. 이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사회봉사기관 대표들이 설명하면 이사들은 그들의 직업, 가족, 거주상황, 체류신분, 병력, 정부보조(푸드스탬프·소셜시큐리티·메디케이드)의 수혜여부 등을 일일이 체크했다. 정부보조를 몰라서 못 받는 신청자가 있을 경우 사회봉사기관 대표들이 받도록 해줄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성금을 최후의 구제수단으로 남겨두기 위해서다.
이사회 때마다 박귀희 선임이사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있다. “이 성금은 기막히게 귀중한 돈”이라는 것이다. 이사회가 정말로 불우이웃이 아닌 사람에게 단 1센트라도 배정하면 성금을 기탁한 독지가들의 정성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꼬집는다. 사회학자인 송성실 이사(워싱턴대학 교수)는 수혜대상자의 자격여부를 법률적, 사회학적 이론으로 진단하며 자격미달이거나 성금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족집게처럼 가려낸다.
철저한 심사가 3시간 이상 이어진 끝에 43명의 수혜신청자들은 상황이 심하거나 긴박한 정도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분류돼 각 그룹별로 책정된 액수를 분배받게 됐다. 올해 캠페인 모금액은 5만6,136달러 36센트지만 전년도 이월금 1만6,356덜러 12센트를 합쳐 가용금액이 총 7만2,492달러 48센트에 달했다. 따라서 개인별 배정액도 작년보다 훨씬 많았다.
수혜신청자들의 딱한 사정을 심사할 땐 가슴이 아리지만 이들에게 성금을 배분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듯 가볍다. 글쟁이인 필자가 글과 관계없이 매년 2월 느끼는 뿌듯함이다. 물론 겉으로 나나타지 않는 불우이웃은 더 많고, 더 많은 불우이웃에 동포사회의 온정을 전달하는 것이 본보가 해야 할 일이다. 올해 캠페인에 동참해주신 분들께 재삼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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