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노인들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86세인 빌 프리드만은 최소한 ‘돈 걱정’ 없이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상속받은 재산에 IRA와 소셜시큐리티 연금까지 합하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안락한 여생을 즐기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든든한 노후자금을 믿고 생각 없이 긁어댄 신용카드가 화근이었다. 지난해 10월 낙상을 입은 프리드만을 간병하기 위해 맨해턴의 아파트를 찾은 딸 낸시는 그의 책상서랍에 수북이 쌓인 신용카드를 찾아냈고, 전화조회 결과 아버지가 1만5,000달러의 카드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프리드만은 “아직 그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내심 겁이 났던지 자신의 돈 관리를 딸에게 일임한다는 위임장을 써주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 말년’에 경제적 주체성과 독립성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셈이다.
렌트·의료비 돌려막다 파산 일쑤
일단 카드 없애고 지출 자제해야
최근 들어 프리드만처럼 카드빚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노인들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보스턴 칼리지 슬로안 노화센터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근로자들 가운데 30%는 비축해둔 노후자금보다 신용카드 빚이 더 많고, 41%는 양쪽이 서로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55세 이상의 미국인들 가운데 과반수가 앞으로 적자상태에서 은퇴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뉴욕의 공공정책연구기관인 데모스도 지난 2009년 7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인들의 신용카드 의존도가 높아졌으며, 65세 이상 연령층의 1인당 신용카드 평균 채무액은 1만235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덧붙여 데모스의 부소장인 호세 가르시아는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는 미국인들 가운데 노년층의 비율이 가장 빠른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위기 이후 신용경색이 심해 카드발급 받기가 이전에 비해 어려워졌다고들 하지만 카드발급 업체들은 연금 등 고정 소득원을 지닌 노인들에게 우호적이다. 대출금 상환이 끝난 주택소유주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 76세인 아그네스 브래디도 서류상으로 보면 신용카드사가 원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연금이 있고, 집을 처분해 채무도 깨끗이 정리했다. 우량한 신용등급에 연간 소득이 4만2,000달러 정도이니, 신용카드를 발급받는데 문제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프리드만의 경우에서 보았듯 안정된 소득이 있더라도, 지출을 자제하지 않으면 ‘적자인생’으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뉴욕 몬로의 1베드 콘도에 거주하는 브래디는 매월 렌트비로 1,200달러를 지불한다. 본인부담으로 나가는 의료비용도 월 200달러가 넘는다. 매월 날아드는 각종 고지서를 처리하고 그녀가 끔찍이 사랑하는 손자손녀들에게 가끔씩 선물을 안겨주고 나면 가계부엔 늘 구멍이 뚫린다.
브래디는 이자율이 21.9%에서 23%에 달하는 메이시스와 TJ 맥스, 피어1 임포트 등 소매업체들이 발행한 5개의 신용카드에 각각 2,400달러에서 5,015달러 사이의 빚을 지고 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비자카드는 폐기했지만 7,488.39달러의 대금이 연체된 상태다.
현재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신용카드 빚의 총계는 2만2,000달러. 이제는 매달 미니멈 페이먼트를 지불하기도 벅차다.
카드빚은 한번 빠지면 탈출하기 힘든 모래 늪과 같다. 고리의 연체 이자에 휘둘리다 보면 원금을 끄기가 쉽지 않다. 눈사태처럼 불어나는 카드빚 탓에 전국 신용상담재단(NFCC: National Foundation for Credit Counseling)을 찾는 노인들의 수도 늘고 있다. 이들 중 한명인 필라델피아의 메리 워드(82)는 6개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이른바 ‘돌려막기’를 해온 케이스.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생활비를 충당하고, 형편이 어려운 딸에게 급전도 내주었다. 쥐꼬리 만한 연금 외에 노후자금이 따로 없는 워드에게 신용카드는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이자율이 비싸지만 그래도 급할 때 의지할 것이라곤 신용카드뿐이다. 워드는 한 쪽에서 돈을 꺼내 다른 쪽의 페이먼트를 지불하는 ‘풍차 돌리기’를 시도했고, 결국 6,000달러의 빚을 졌다. 빈민자인 그녀에게 6,000달러는 엄청난 거금이다. 게다가 연체 이자율이 20%에 가까우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짓누르는 빚더미의 무게는 늘어나게 된다.
다행히 NFCC가 신용카드 발급사들과 협상을 벌여 이자를 크게 낮춘 덕에 워드의 월페이먼트는 이자와 원금을 포함해 240달러로 떨어졌다. 이제 9월이면 그녀는 빚에서 해방된다. 물론 신용카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NFCC의 대변인인 게일 커닝햄은 일부 케이스의 경우 파산신청도 카드빚을 끄는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부채상환을 재정적, 도덕적 의무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같은 ‘꼼수’에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자존심 강한 노인들은 정당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재정능력연구소(IFL)의 “나만을 위한 꿀단지(노후자금)를 마련해 두고, 신용카드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
이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브래디의 충고다.
<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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