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을 넘긴 나이에도 전문적 기술과 총기를 유지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의사라고 해서 치매를 비롯한 ‘노인병’에 면역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8년 전,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혈관외과 전문의로부터 수술을 받은 한 여성이 폐색전을 일으켜 사망한 것. 폐색전이란 응고된 핏덩이가 폐동맥을 막아 혈액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으로 치명적인 심근경색을 불러올 수 있다. 환자의 심상치 않은 상태를 알아챈 간호사들이 수술을 담당한 집도의를 긴급 호출했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환자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당시 사고를 일으킨 외과 전문의의 나이는 78세였다. 병원 측은 캘리포니아 의료위원회(California Medical Board)에 즉각 신고했으나 그가 UC샌디에고의 능력평가 검사에 회부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년. 물론 능력평가를 받기 전까지 고령의 외과의사는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은 채 계속 수술을 집도했다.
응급환자 앞에 두고 수술 놓쳐 사망
미 현역의사 3분의1 65세 이상
상당수 인지능력 감퇴·전문성 처져
UC샌디에고 의사 평가 프로그램 디렉터 윌리엄 나크로스 박사에 따르면 문제의 외과의는 시각적 공간 지각력에 이상(異常)이 있었을 뿐 아니라 미세운동 능력이 비정상적이었고 정보 기억능력과 언어 지능지수도 기대수준 이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마디로 절대 수술칼을 들어선 안 될 상태였던 것. ‘인식능력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면허를 박탈당했지만, 문제는 심신의 기능과 전문적 능력이 내리막길로 접어든 고령 의사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현역 의사들 가운데 3분의1이 65세 이상이다. 베이비붐 첫 세대가 올해로 65세가 됐고, 재정적 압박으로 은퇴를 꺼리는 나이든 의료인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70세를 훌쩍 넘기도록 전문성과 총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의사도 사람인 이상 치매나 파킨슨씨병, 뇌졸중 등 이른바 ‘노인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어김없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은 심각한 결격사유를 지닌 의료인들로부터 환자를 보호해 줄 확실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국환자안전재단의 다이앤 피나키에위츠 회장은 “여객기 조종사들은 정년이 65세이고, 40세부터는 6개월마다 한 번씩 신체검사와 정신건강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비해 의사들에게는 정년이 없을 뿐더러 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인 능력평가 제도 역시 확립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분명 존재하는데 예방조치는 없고, 사후 징계가 있을 뿐이다.
현재 ‘사고 의사’에 대한 징계는 주 의료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데 2005년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과대학 졸업 후 40년이 지난 의사 가운데 6.6%, 의대 졸업 10년차 의사 중 1.3%가 징계조치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 나온 또 다른 보고서는 수술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비율은 일상적 수술의 경우 의사의 나이와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지만 복잡한 수술에서는 60세를 넘긴 의사일 경우에 훨씬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제도적 예방장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65세 혹은 70세에 도달한 의사들을 대상으로 정례적인 인지력 측정 및 신체검사를 해야 한다는 의료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자체적인 내부 검사절차를 도입한 병원도 아직은 전체의 5~10%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또한 일부 전문의 보드는 회원들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7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면허증 갱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면허증 재발급 규정도 강화했다. 의료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의사들은 주에 따라 매년 혹은 2년마다 한 번씩 일정시간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크로스 박사는 재교육이 무익한 ‘시간 때우기’일 수 있다며 실질적인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전문의 보드의 강화된 면허증 재발급 규정은 이른바 ‘할아버지 조항’에 따라 고령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된 회원들에게는 돈과 시간을 잡아먹는 면허갱신을 면제해 주는 일종의 특례조항이다. 일각에서는 이 조항이 재검증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고령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막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해 미 내과전문의 보드는 6만9,000명에 달하는 할아버지 회원들에게 자발적인 면허갱신을 권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노인의원’은 1% 미만이다.
사실 의료인들의 ‘제 식구 감싸기’는 언제 인명사고를 낼지 모르는 무능력 의사들의 퇴출을 가로 막는 최대 걸림돌 가운데 하나이다. 일부 고령 의료인들에게 나타나는 인지력 이상은 초기단계에서는 본인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의료 용어를 떠올리지 못하거나 새로운 의학 정보를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의료 지식을 문제해결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등의 증세를 보인다.
여기서 상태가 좀 더 심해지면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는데 실수가 생기고, 처방약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해 엉뚱한 처방전을 작성하거나 응급실과 같은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이쯤 되면 설사 본인이 감추려 해도 동료 의사나 간호사들이 눈치를 채게 마련. 규정대로라면 이들의 온전치 못한 행동과 불안전한 의료행위를 병원 당국과 주 의료위원회에 보고해야 하지만 나이든 ‘선배’를 고발하는 의사들은 거의 없다. 이들이 주재하는 수술실에 외과의를 추가로 배치하거나, 담당 케이스를 정기적으로 검토해 이상 여부를 체크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정 안되겠다 싶을 때에는 고발조치 대신 동료들이 직접 나서 은퇴를 유도하기도 한다.
병원과 건강관리 업체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전문 상담업체 그릴리 컴퍼니의 조나단 버로스 박사는 처음에는 좀 비정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병원마다 자체적인 내부 능력검사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나이 든 의사들에게 대한 온정적 배려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사 결과 이상이 드러나더라도 그 정도에 따라 업무의 양과 난이도를 줄여주고 감독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한시적이나마 활동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
물론 업무수행이 곤란할 지경이면 자신의 의지나 열의와 상관없이 면허를 반환해야 하지만, 이 역시 의료사고를 내고 만신창이가 된 채 불명예 퇴진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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