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지사 재임시절, 엘리엇 피츠제럴드가 고급 창녀와 밀회를 즐긴 사실이 들통이 나자 전국의 라디오 토크쇼 프로그램들은 여성들의 화끈한 참여로 청취율 ‘대박’을 터뜨렸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배우자의 외도는 눈 먼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는 점이다. 요컨대 제 아무리 ‘알뜰 외도’를 한다 해도 기본적 ‘숙식비’가 필요하고, 관계 유지를 위한 ‘관리비용’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돈이 있어야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 상대가 전문적인 매춘업종 종사자라 해도 돈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눈먼 돈 없으면 바람 피고 싶어도 실행 막혀
동료 밥값 카드계산 후 현찰 비축 등 수법다양
재정부정 탓 이혼 비율 낮지만 관계 치명적
토크쇼 참여자들은 자신의 쓰린 경험까지 공개해 가며 “투명한 가계 재정을 통해 남편의 부정을 원천봉쇄하라”고 조언했다. 라디오 토크쇼 열기가 뜨거워지자 내로라하는 사계의 권위자들까지 끼어들어 돈과 외도의 상관관계를 진단했다. 이들은 배우자의 재정적 부정(不正)이 반드시 외도를 전제로 하지는 않지만, 부부관계에 있어서의 부정(不貞)은 대부분 금전상의 부정행위를 동반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중심주제는 배우자의 재정적 부정 쪽으로 옮겨갔고,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사실 돈 문제만큼 부부 사이의 긴장을 유발하는 사안도 드물다. 최근 USA투데이가 전국 1,001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금전적 부정행위를 이혼사유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명백한 배신행위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 조사에서 드러난 가장 괘씸한 부정행위는 배우자의 비밀 은행구좌. 557명의 기혼 응답자 가운데 62%가 남편이나 아내의 ‘비자금’ 조성을 중대한 ‘관계위반’으로 규정했고, 11%는 이혼사유라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미혼자 444명 중 55%가 이를 심각한 배신으로 간주했으며 13%는 이혼사유로 평가했다. 배우자가 모르는 신용카드 소지 역시 응답자의 60%로부터 중대한 위반행위라는 판정을 받았으나 기혼자들의 6%만이 이를 이혼사유라 답했다.
전문가들은 설사 외도를 동반하지 않는다 해도 재정 부정은 부부관계를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계 재정설계자인 지니타 월은 돈과 관련한 사소한 거짓말로 부부관계에 금이 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직장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고, 동료들부터 현금을 받아 꿍친다든지, 물건을 사들고 온 다음 오래 전에 구입해 장롱 속에 처박아두었던 것처럼 설레발을 치는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보다 심한 케이스도 얼마든지 있다. 25년간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지속해온 월의 한 여성고객은 주말에 장을 볼 때마다 캐시백을 받아 이를 여동생 명의의 은행구좌에 집어넣었다.
이런 방식으로 20여년에 걸쳐 남편 몰래 모은 돈이 자그마치 25만달러. 늘 적자를 내는 아내가 못마땅했던 남편은 사실을 알게 된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둘의 결혼생활은 파탄이 났다.
이혼전문 변호사 앨턴 아브라모위츠는 재정적 부정행위는 생각보다 훨씬 발생빈도가 잦다고 귀띔했다. 라스베가스에서 ‘거금’을 날리고 배우자에게 시치미를 뗀다든지, 부부 공동구좌에 봉급을 전액 입금하지 않거나 상대방 몰래 개설한 신용카드의 영수증을 집이 아닌 회사에서 받아보는 ‘양심불량자’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8년 전, 콜로라도주 그릴리의 중학교 교사인 크리스 마티어도 아내 태미 몰래 발급받은 4개의 신용카드로 노름을 하다 18개월만에 2만 달러의 빚을 졌다. 학교 행정담당자인 아내 대신 가계 재정을 전담하던 크리스는 태미의 첫 출산비용을 내지 못해 덜미를 잡혔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 다음에야 가까스로 ‘사면’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려면 무엇보다 부부사이에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이 확립되어야 하고, 그 첫 걸음은 배우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야후 파이낸스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600명의 응답자 가운데 45%는 100~500달러가 배우자와의 사전상의 없이 지출할 수 있는 적정액수라고 답했다.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의 심리치료사인 티나 테시나는 “맞벌이 부부건 아니건 간에 남편과 아내가 각각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부정행위를 줄일 수 있다”며 “경제적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 월 200달러가량이 적정수준”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부부가 공동구좌외에 별개의 구좌를 갖고 서로 합의한 한도 내에서 재량껏 지출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PNC 파이낸셜 서비스그룹의 브루스 빅켈은 부부의 개별구좌 개설에 반대의견을 보였다. 자기 구좌를 갖게 되면 아무래도 ‘꼼수’가 끼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 대신 매월 일정한 액수를 떼어내 생활비외의 다른 목적에 쓸 수 있는 공동기금을 마련한 후 필요할 때마다 배우자와의 상의를 거쳐 지출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결혼 5년차인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루크와 한나 위캄 부부는 빅켈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100달러를 초과하는 지출은 반드시 상호협의를 거치도록 하자는 혼전합의를 보았다. 지금도 생활비 외의 모든 지출은 매월 일정액을 적립해 마련한 공동기금에서 나간다. 루크는 결혼 전 한나에게 갚아야 할 학비융자금이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그는 “서로의 부채와 재정상태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결혼식부터 올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짓”이라고 말했다. 루크는 “제아무리 넘치는 사랑을 갖고 있다 해도 청구서를 갚으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재정계획의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사랑은 결혼의 선행조건이지만, 성공적인 결혼생활은 투명하고 건전한 가계부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크리스와 태미 마티어 부부가 미카엘라(8)와 에단(6)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크리스의 재정적 부정으로 발생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트레일러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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