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6)과 로라(3)의 엄마인 사라 윌슨은 상상력을 동원하는 놀이가 실종됐다고 개탄했다.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어린이들은 함께 어울려 ‘노는 법’을 잊어버렸다. 마음껏 뛰어 놀만한 공간도 부족하고 놀이문화 실종의 심각성에 대한 보호자의 인식 역시 낮은 수준이다. 카이저패밀리 파운데이션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어린이들은 하루 평균 7시간38분을 컴퓨터나 TV 앞에서 보낸다. 이들에게 놀이란 전자게임이나 TV 시청을 의미한다. 야외 놀이공간은 생각처럼 접근이 쉽지 않다.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집에서 0.5마일 이내에 공원이나 놀이터가 있는 어린이들은 5명 가운데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밖에서 놀려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들 강요 과외활동 자유시간 빼앗겨
자발성·창의성 개발 옛 놀이문화 회복
집안에서 노는 것도 제한이 심하다. 피곤한 부모들은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거나 집안을 어지럽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주말은 축구, 야구, 라크로스 등 부모들이 조직하고, 감독하는 활동으로 채워진다. 축구나 야구를 즐기는 것 자체가 놀이가 아니냐고 반발할지 모르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놀이에 대한 이들이 정의는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하고, 감독하는 활동’으로 국한된다. 자발성과 창의성이 놀이를 규정하는 특징인 셈이다.
어린이들의 자유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체스, 태권도, 중국어 교습 등 강요된 과외활동으로 이들의 스케줄이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는 것. 심리학자, 교육자, 과학자 등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삶을 꾸려가는데 필요한 사회적, 지적 기술은 어린 시절의 놀이를 통해 축적된다고 주장한다. ‘사이몬 세즈’(Simon Says) 게임을 통해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고, 모래주머니와 소파 쿠션 등을 이용한 성 쌓기 놀이를 하면서 문제해결 능력과 타협, 팀웍 등을 배운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노는 법을 모른다. 놀이문화의 원점에 해당하는 킨더가튼의 놀이방에서 샌드박스, 블락과 장난감들은 컴퓨터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아이폰의 응용 프로그램 메뉴를 능숙하게 움직이는 세 살배기는 많아도 동네 꼬마들을 불러 모아 킥볼 게임을 조직하는 일곱 살짜리는 거의 없다.
‘놀이 부족’ 현상을 교정하는데 주력하는 비영리그룹 카붐(KaBOOM)의 짐 훈 부회장은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어린이들의 놀이문화가 존재했는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놀이문화 복원에 부모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이문화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카붐처럼 이를 복원하려는 어른들의 조직적 움직임에도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미 전역에서 일고 있는 이같은 움직임은 놀이의 교육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초등학교의 교과과정에 구조화되지 않은 놀이시간을 포함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카붐의 일차 공략대상은 부모들이다. 어린이들의 놀이문화를 찾아주기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부모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주 렌딩턴 쇼어스에 거주하는 메간 로스커는 “아이들은 마음대로 어지를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며 블락, 크레용, 잡지, 장난감, 놀이옷 등으로 거실이나 방이 지저분해지더라도 용인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파의 쿠션을 빼내 성을 쌓고, 식탁 위에 이불보를 씌워 동굴을 만드는 자녀들을 나무라선 안 된다. 그들은 말썽을 부리는 게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들이 또 하나 명심해야 할 점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 것인지 지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 아이디어를 전수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놀이의 자발성과 창조성은 어른이 빠진 공간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로스커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상대로 자유로운 놀이시간 확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학교 측은 부상위험과 통제불능의 무질서, 학습시간 축소 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시했다.
거부반응을 보이긴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정서에 서명을 거부한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 보다는 높은 테스트 점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부분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놀이문화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놀이문화 회복을 추구하는 여러 그룹들의 연합체인 ‘플레이 포 투모로’(Play for Tomorrow)는 보다 많은 부모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 뉴욕 센트럴 팍에서 ‘얼티밋 블락 파티’라는 대규모 ‘플레이 데이트’를 마련했다. 플레이 데이트란 아이들이 한데 모여 놀 수 있도록 부모들이 날짜를 맞춘 모임을 뜻한다.
마음대로 갖고 놀도록 플레이도(공작용 찰흙), 분필, 블락 등을 수북히 쌓아두고 ‘I Spy’와 퍼즐게임 등을 준비한 이 행사에는 무려 5만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주최 측은 최대 1만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 행사를 주도한 델라웨어 대학과 필라델피아 템플 유니버시티의 발달심리학자 로베르타 골린코프와 케이시 허시-파섹은 센트럴팍의 플레이 데이트를 연례화하고 토론토, 애틀랜타, 볼티모어, 휴스턴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이와 유사
한 행사를 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목표는 과거의 놀이문화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레이 포 투모로’는 센트럴 팍 행사가 끝난 뒤 성인 참석자들에게 75쪽 분량의 ‘놀이 책’(play book)을 한 부씩 나누어주었다. 놀이의 아이디어를 총정리한 책자이다. 골린코프는 “예전 우리들이 즐겼던 놀이들을 한데 모았다”며 “부모들에게는 놀이문화를 자녀세대에 전달해야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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