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짙은 벽두에 산책은 고즈넉하여서 나름대로 황홀하다. 사뿐히 딛는 발자국 소리가 새벽 공기를 치며 고요함을 깨우고 있다. 어디 까지 왔을까? 어느 부드러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에서인가 구수한 커피 냄새가 상쾌히 나를 자극한다. 내려다보이는 아랫마을은 짙은 안개로 베일에 가린 듯 신비롭고 콧등을 간질이며 물방울 하나가 입맞춤을 하고 간다.
내일 모래면 그동안 미루어 왔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막상 떠나려고 보니 가기 전에 해야 할 이런 저런 일들이 앞을 가린다. 우선은 시장에 가야하고, 남편을 위해 약간의 반찬과, 세탁, 집안 정리, 연락 온 곳에 전화, 우편물 정리, 화분에 물주기 그리고 마지막 “여성의창” 원고 보낼 것 등등…. .평화로운 새벽 산책은 꿈에 다녀온 것 같고 마음도 몸도 분주하다. 여행을 간다는 설렘이나 기대감은 상상도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몸은 동분서주 하고 마음은 조바심으로 가슴이 조여 오는 것 같아, 제대로 일을 마치지도 못한 채 손을 놓고 일단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이것들은 내가 매일 하던 일들이고 고작 해야 1주일 정도의 여행길인데, 어느 때나 길을 떠날 때면 이렇게 나를 볶아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 생각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나는 아마도 내가 하는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 것이며 또 솔직한 마음으로 우선은 나를 위하여 ‘아내’의 자리를 빛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보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한심했다. 나만의 진솔한 삶은 어디에서 찾으며 그러는 나는 누구인지? 화도 나고 두려움도 생기고 부끄럽다.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영원을 향한 길을 떠날 때 지금같이 우왕좌왕하고 진실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나의 작은 일상 안에서 추슬러야 할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 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고 싶다. 설사, 나와의 약속이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다시 시작 하는 마음이 되어서 진솔한 내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아름다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오늘 나의 진실과 최선을 다함으로 언제 떠나더라도 두려움이나 조바심 없는 삶의 여정이 되고 싶다.
세상 모든 일에 끝이 있듯이, 어느덧 약속대로 이번 글로 나로서는 ‘여성의 창’에 마지막 글을 보낸다. ‘여성의 창’을 떠나며 과연 나는 얼마나 나에게 진실했는지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사와 부족한 저를 항상 격려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