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상 내는 책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처를 헤집는가 하면 따스한 위로를 주는 소설가 신경숙씨(47)가 뉴욕에 머물고 있다. 올4월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 출간을 앞두고 지난 2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오피니언란에 ‘천안함’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한 신경숙씨를 맨하탄 한식당에서 만났다.
▲신경숙과 노태우의 ‘외딴 방’
1995년 당시 출간된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과 푸른 수의를 입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외딴 방’이 전국민에게 회자된 적이 있었다.소설 ‘외딴 방’은 농촌에서 상경한 열여섯 살 소녀가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산업체특별학급을 다니면서 가난, 고독, 절망 속에서도 문학적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열악한 처지의 방이지만 꿈을 지닌 소녀의 ‘외딴 방’과 퇴임 후 2년 반동안 꽁꽁 숨겨놓았던 수천억원 비자금이 백일하에 드러나 푸른 수의를 입고 구치소라는 ‘외딴 방’에 들어간 노태우 전 대통령의 허망한 처지가 비교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신경숙은 독재자, 5월의 봄 등 시대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으나 사적 얘기를 하면서 그 시대 감성을 슬쩍 슬쩍 건드린다. 비극으로 치닫지만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을 말할 때는 섬세한 내면 묘사와 서정적 문체가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자꾸 읽고 싶다.
▲뉴욕은 특이한 도시
1985년 ‘겨울우화’로 문단에 데뷔하여 ‘깊은 슬픔’, ‘풍금이 있던 자리’,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까지 20년이상 매년 베스트 셀러를 내고 있는 신경숙씨, 그가 지금 뉴욕에 있다.“컬럼비아 대학교 객원연구교수로 초청받아 작년 9월 초 뉴욕에 왔다. 1년간 머물 예정인데 뉴욕의 자유로운 공기와 예술향을 마음껏 흡수 중이다. 메트 뮤지엄, 모마, 구겐하임, 맨하탄의 갤러리들을 방문하고 시카고, 위키드 같은 뮤지컬은 물론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마술피리도 감상했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참여하는 거리 공연이나 링컨센터에서 하는 프리 음악회가 좋았다.”
신씨가 뉴욕의 문화를 체험하는 현장에는 남편 남진우씨가 동행하고 있다.
지난 1999년 결혼한 시인·문학평론가인 남진우씨 역시 컬럼비아대 객원연구교수로 초청받아 부부가 맨하탄 52가에 살며 세계적 수준의 그림과 음악을 보고 듣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남편에 대해서 새삼 놀라고 있다. 세계적인 그림 앞에서 작가와 그림에 대한 설명이 줄줄 나온다.”는 신씨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42가 공립도서관이 참으로 놀랍다. 브라이언트 팍에서 점심시간이 되자 근처 빌딩가에서 몰려나온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수백 명이 아무데나 앉아 각자 싸가지고 온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은 감동스러웠다.”고 말한다.
“뉴욕은 참으로 특이한 도시이다. 한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영어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스페인어, 일본어 등 인종별로 각자의 언어를 쓰더라.“며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비수처럼 귓속으로 들려오는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을 때가 있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면 한인이 있다”고 작가가 뉴욕에서 한국어를 듣는 마음이 남다르다.
▲22개국에 출간되는 ‘엄마를 부탁해’
올 4월 지난 2008년 11월 발간, 150만부 이상이 팔린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캐나다에서 출간되고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전세계 22개국에서도 동시 출간된다. 영문판(please Look After Mom, 김지영 번역)은 오는 4월8일 미국 랜덤하우스에서 한인작가 최초로 출간, 선인세를 받고 10만부가 발행되는 것.“오는 4월 18일부터 5월 17일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출판관련 행사가 있고 5월17일부터 6월초까지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노르웨이 등지의 유럽 10여 개국에서 출판관련 행사를 한다.”는 신경숙씨의 이번 봄 행보는 바쁘다.
이 책은 딸, 아들, 아버지, 어머니 시점에서 어머니의 실종을 다룬 것으로 이쯤 되면 작가의 어머니가 궁금하다.
“부모님이 시골에 함께 계시는데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시대를 잘 만나고 엄마가 교육을 받았더라면 나보다도 우리 엄마가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한 산 체험과 표현력이 가슴을 쿡 지를 때가 있다. 글이 막히면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 신기하게도 막혔던 글이 풀린다.”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간 정도 글을 쓰는 신경숙씨, 그의 독자들은 흔히 말한다. ‘모두 내 이야기 같아.’ 우리 몸의 피부처럼 살아 숨쉬는 그의 소설들은 모두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같고 독자 자신의 이야기 같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처음엔 길가에 표지도 없고 작가 이름도 없는 책이 한권 떨어져 있는데 몇 페이지 읽고 아 이건 신경숙이 소설이다라고 알아볼 수 있는 문체 중심주의 소설을 써왔다. 차츰 내 작품이 서사 중심으로 옮겨갔고 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띠고 있어서 읽는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소설 한편을 쓰기 위해 그는 엄청난 공부를 한다. “작가는 뭐든지 다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 이번 뉴욕 타임스에 난 글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자료를 모두 찾아보고 썼다. ‘병사들 중에 제대를 1개월 남겨둔 이와 결혼을 앞둔 이도 있었다‘는 부분에서 1개월이 확실한 지 몇 번이나 확인 하더라, 뉴욕 타임스의 철저한 사실 확인 정신이 무섭기도 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가 지난 한해 매달 발생한 지구촌 사건을 소개한 2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오피니언
란에 한국작가를 대표한 신경숙씨의 글 ‘한국의 바다에서’ (At sea in South Korea)를 실었다.
▲한인 이야기 들으면 경건해져
“그동안 작품이 잘되고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어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문학은 언제나 해결되지 않는 것과 소외된 약자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문학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큰어머니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에게 문학은 엄마마저도 껴안아주는 어머니같은 것이다”며 문학에 대한 애정을 토로하는 신씨는 뉴욕에 살면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한인들에게도 격려의 말을 잊지 않는다.“프랑스작가 르 클레지오가 작가에게 조국은 모국어라고 했다. 모국어를 떠나와 이중언어 속
에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 것인지 짐작 간다. 그래도 모국어가 나의 조국이다는 생각으로 자기세계를 더 견고히 해나가고 작품을 시작하면 꼭 끝을 내기를 바란다.”고.
‘저녁시간 한국 식당에 가면 손님들이 전부 외국인일 때 저절로 애국심이 발동해 으쓱해진다.’는 신씨는 뉴욕한인에 대한 관심도 깊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신중함, 검소, 배려 깊음에 놀라고 있다. 특히 미국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한인들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경건해진다. 느슨해지던 마음과 태도를 다잡게 되고. 소설가가 머무는 현장은 곧 작품의 현장이 된다. 소설은 그만큼 현실의 반영이다. 여기 와서 이민자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태어난 곳을 떠나와 이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의 삶이 언젠가는 작품에 투영되리라 생각한다“우리는 뉴욕 한인이 등장하는 신경숙씨의 다음 걸작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