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환자분들, 병원에서 말이 안 통하시면......’
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맨하탄에 있어서인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많은 한국 분들이 입원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잊을 만하면 한국 분들이 한분씩 입원을 합니다. 보통은 저한테 한국 환자분을 돌보라고 하지만, 요즘은 많은 한국 분들이 영어를 하셔서 저한테 굳이 돌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동양인 환자들은 아주 조용해서 미국간호사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니 환자가 한국어 간호사를 찾지 않는 이상 일부러 저한테 양보하지 않습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에 제가 함부로 환자에게 다가갈 수도 없고, 환자의 상태를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의 투철한 민족애로 항상 제가 한국 분들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봅니다. 의사소통에 문제 없냐, 환자는 문제 없냐? 환자는 잘 지내냐?
그런데 이게 문제입니다.모든 건 언어에서 시작을 합니다. 모두들 환자도 가족도 영어를 한다, 문제가 없다고 저보고 간섭 말라고 하지만, 제가 나중에 그 환자의 담당 간호사가 되든가, 아니면 우연히 지나가다 제가 한국 간호사라는 걸 알게 되면 환자 분이나 가족 분들이 저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분명 담당간호사였던 미국간호사들이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면 다들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아프다고 했는데 미국간호사는 “Everything is OK” 라고 하고, 뭐 해달라고 했는데 함흥차사이고 어떤 분은 흑인간호사가 무서워서 아무런 말도 못한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동양 환자분들이 좀 조용합니다. 아파도 참고, 힘들어도 참고, 참는 미덕이 몸에 배어 있는데 그걸 미국간호사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아니 이해하기 힘듭니다. 미국 환자분들은 조금만 아파도 소리를 지르고, 조금만 불편해도 매니저에게 항의를 합니다. 참는 미덕은 좋은 거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이 환자가 정말 아픈데 참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아프지 않아서 안 아프다고 하는 건지를 알 수 있지요.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이해 못합니다. 문화의 차이인 것입니다.
저는 “괜찮아요” 라고 하는 말의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있지만, 동양문화를 모르는 간호사들은 “괜찮아요”를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런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어떤 동양인 환자분들은 저한테 조용하게 부탁을 합니다. 가능하면 동양인 간호사가 계속 봐줬으면 좋겠다고.
간호는 사람을 다루는 것이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언어, 의사소통이 필수 이지만, 언어 뒤에 숨은 그 문화를 아는 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필요충분조건입니다. 하지만 미국 땅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많은 미국인들은 타 문화배경을 가진 인종들에게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 법에 맞추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문화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미국문화에 맞추라고 합니다. 하지만 몸에 밴 문화의 잔재들은 내가 없애고 싶다고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간호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한 교육을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차이를 이해하는 미국 간호사를 그리 많이 못 봤습니다. 차이를 알고 배울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원에서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으면 차라리 영어를 못한다고 하는 게 더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같은 언어를 쓰는 간호사로 배정을 하던지, 통역이 가능한 전화기를 설치해주고, 환자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지를 간호사가 좀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흑인간호사가 무섭다고 느끼시면 입 다물지 말고 웃으면서 동양간호사로 바꿔줄 수 있냐고 병동 매니저나 담당의사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간호사를 바꿔 달라는 건 결코 무례한 부탁도 아니고 힘든 부탁도 아닙니다. 그리고 인종차별도 아닙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 병원관련 설문지를 받게 됩니다. 병원 내의 생활이 어땠는지 묻는 설문지인데 반드시 설문에 답변을 해주세요. 그리고 병원 내에서 불편한 점, 특히나 언어로 인해서 생긴 여러 가지 점들이 있다면 병원에 편지를 하세요. ‘의사소통문제로 힘이 들었다.’ 그렇게 간단히 적어도 됩니다.
만약 한국어 하는 직원이 있어서 그나마 편했으면, 한국어 하는 간호사든, 인턴이든, 의대생이든, 의사선생님이든지 누군가가 한국어를 해서 그나마 좀 살았다라고 적어서 병원에 보내세요. 거창하게 병원장에게 보내도 되고, 병원 매니저에게 보내도 됩니다.가랑비에 속옷이 적는다고, 자꾸 이렇게 표현을 해야지 병원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한국어를 하는 직원에 대한 배려가 생기게 됩니다. 인턴을 뽑을 때도 간호사를 뽑을 때도 약사를 뽑을 때도 이중 언어, 한국어를 하는 직원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은 미국 내 한국인의 취업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불편함을 참지 마세요. 말이 안 통하면 안 통한다고 말씀하세요. 한국어 하는 직원을 만나서 편하셨으면 그래서 편했다고 말씀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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