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국적은 한국이지만 태어나고 자란 곳은 북한이니까 전 숨기고 싶지 않아요”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자신의 신념이 담긴 듯 당찬 김영희(25·가명·사진)씨는 고향이 함경북도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했다는 점만 빼면 미국으로 유학 온 지 6개월 된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94년 이후 배급제가 붕괴되고 97년 굶어 죽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배 곪으면서 가끔 남한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바깥 세상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2001년 중국으로 탈북해 2년 고생 끝에 남한에 들어갈 수 있었죠. 남한사회에서 따뜻한 시선을 받을 줄 알았는데 호락호락하진 않더군요. 탈북자란 꼬리표가 미국서는 용감한 여성으로 바뀐 것이 낯설기도 하고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김씨는 목표도 뚜렷하다. 탈북 후 고향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부모님을 가슴에 묻었다”며 “꿈을 이루고 올바르게 사는 것만이 위안을 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 남북미 관계 등 동북아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김씨는 미국에 온 지난 6개월 동안 말이 안 통하는 낯선 세계에 적응하느라 또 다른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그나마 LA 지역에 먼저 정착한 북한 출신 선배들에게 받은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서툰 영어지만 다음 달에는 운전면허 시험도 앞두고 있다.
김씨는 “가끔은 외롭고 혼자라는 생각에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두렵기도 하지만 이 순간을 이겨내면 제가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다고 믿고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겠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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