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산 기부’ 한미장학재단 초대 이사장 김웅수 박사
한미장학재단(KASF) 초대 전국 이사장을 지낸 김웅수 박사(88)는 25여년간 미주 한인사회의 최대 장학사업을 이끌어온 재단의 산증인이다.
김 박사는 최근 워싱턴 한인교회에 한인 독거노인들과 커뮤니티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평생 모은 재산 25만달러를 기탁해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 박사는 1969년부터 워싱턴 DC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유학생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한미장학재단의 워싱턴 DC 지역 5대 회장을 맡고 있던 82년 당시 이 재단을 미 전역으로 확대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해 그 결과 지금의 서부, 남부, 중부, 북동부지역을 포함 총 6개 지부에 장학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김 박사는 “장학재단이 동부에서만 운영될 당시 10명에게 각각 1,000달러의 장학금이 지급되었지만 미전역으로 확대된 현재 매년 350여명에게 2,000달러씩의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며 “미주지역에서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한인 자녀들에게 적은 액수지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1923년 경북 김천의 지례면에서 태어난 김 박사는 한 살이 되기 전 독립운동을 위해 조국을 떠난 조부와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법대 2학년 재학시절 군에 입대하고 잔류를 결정한 뒤 육군 소장까지 진급했다.
하지만 김 박사는 5.16 당시 쿠데타에 반대하였으며 반혁명혐의로 복역하다 62년 풀려나 도미한 뒤 시애틀의 워싱턴 주립대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를 받고 72년 미 가톨릭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 교수로 활동하며 제2의 인생을 맞이했다.
김 박사는 “한국에서 군생활을 할 때부터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며 “한미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받은 수혜자들 가운데 일부가 현재 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한미장학재단은 장학금 수상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지역별 장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닌 수상자들이 진학하게 될 학교 위치를 기준으로 지역별 장학생을 선발한다”며 “결국 각 지역별로 장학금을 기탁하는 한인 기부자들은 남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격려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것이 차세대 한인 리더 육성에 초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철수 기자>
한미장학재단 초대 전국 이사장을 지낸 김웅수 박사가 평생을 바쳐온 장학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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