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대 한 개발업자 모하비 사막에 거대 도시 건설 꿈
‘돈 방석’선전에 전 세계서 투자가들 몰려
투기 붐 가라앉자 남은 건 광활한 황무지
50여년 전인 1958년 콜럼비아 대학의 사회학 강사 네이턴 멘델손은 기상천외한 꿈을 가졌다. 캘리포니아에 도시를 새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었다. LA에서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컨 카운티 동부 지역의 사막 8만2,000에이커를 사들이며 개발업자가 되었다.
멘델손은 그의 꿈의 도시를 캘리포니아 시티라고 이름 붙였다. 사방 어느 쪽이든 고속도로까지 가려면 최소한 10마일을 달려야 하는 외진 곳이지만 그는 그곳이 제2의 샌퍼낸도밸리가 되리라는 비전을 가졌다.
규모로 볼 때 캘리포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가 되어 넓은 대로가 쭉쭉 뻗고 막다른 골목들이 안락하게 자리 잡고, 뒷마당 수영장 마다 아이들의 물장난 소리가 들리고, 가로수 늘어선 보도를 따라 주부들이 한가롭게 유모차를 밀고 가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이 모두는 신기루로 끝이 났다.
현재 캘리포니아 시티의 주민은 고작 1만4,000명. 광활한 부지 한쪽 끝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아득한 사막 한가운데 외롭게 자리 잡은 이 변경의 도시에는 자체 교육구가 있고 시내버스가 있다. 하지만 호텔도 없고 수퍼마켓도 없다. 라이트 에이드가 타운에서 제일 붐비는 곳이고, 경찰국장은 공원 및 오락국 디렉터를 겸한다.
멘델손이 꿈꾼 나머지 부지는 현재 동쪽으로 한없이 펼쳐진 185 평방 마일의 황무지. 대부분 비포장인 도로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외계인들이 남기고 간 자국처럼 보인다. 개발이 안 된 이 광활한 지역을 이곳 주민들은 ‘제2의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멘델손이 품었던 꿈을 잘 보여주는 것은 거리 이름들이다. 그의 꿈대로라면 이 도시는 고학력의 품격 있는 도시가 되었어야 했다. 중심 도로 이름이 스탠포드, 럿거스, 예일, 그리고 콜럼비아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자동차가 왕이어서 캐딜락 블러버드, 크라이슬러 드라이브, 다지 스트릿 같은 이름들이 붙여졌다.
그런데 이런 거리 이름들이 쓰여진 팻말을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훔쳐가곤 해서 새로 팻말을 달다 못한 시 지도자들은 이제 소박한 나무 팻말로 바꾸었다.
“거리 이름 팻말을 새로 달면 일주일이 못 가 없어집니다. 포드 스트리트라는 팻말을 도대체 얼마나 더 새로 달아야 하나요? 소용없는 짓이지요”
시 공공업무 디렉터인 마이클 베빈스의 말이다.
체코 출신이었던 멘델손은 캘리포니아 시티를 한 점 의혹 없이 선전했다. 종전 후 남가주는 팽창일로였다. 새로 몰려드는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살 것인가? 산 아래 완만하게 펼쳐진 공기 좋은 캘리포니아 시티야 말로 발전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었다.
“골든 스테이트에 땅을 사십시오. 캘리포니아 시티에 오면 행운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라는 내용의 래디오 광고를 내보내자 버스를 대절해서, 비행기를 타고 땅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직접 와서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상당수의 구매자들이 외국 사람들이었다. 많은 부지가 직접 보지도 않은 채 팔려나갔다.
1970년대 중반까지 5만2,000여 부지가 팔렸다. 부지에 따라서는 겨우 990달러 하는 것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가 투기꾼은 아니었다. 사람 살지 않는 사막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1965년에 이미 LA는 너무 붐빈다고 생각한 제이 스프레이그 같은 사람이다. 그는 이제껏 여기에 살고 있다.
72세인 그는 “흙을 찾아서 왔다”고 했다. 아이들을 대도시 콘크리트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멘델손은 타고난 세일즈맨이다. 그는 160에이커의 센트럴 팍을 조성하고 인공 호수도 만들었다. 지금도 이곳은 2개의 골프 코스를 갖춘 오아시스이다. 하지만 그때 세워진 4층의 할러데이 인은 골격만 앙상한 채 낙서를 뒤집어쓰고 있다.
멘델손은 이후 자기 지분을 팔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텍사스로 이주했다. 그리고는 1984년 69세로 사망했다.
멘델손이 머릿속에 그렸던 수많은 사람과 일자리는 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 땅에 대한 수요가 고갈되면서 1970년대 중반 투자 붐은 끝났다. 대신 부지 판매를 둘러싼 사기혐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고 그 결과 1만4,000여 토지 소유주들에 대한 대금반환 명령이 법정으로부터 내려졌다.
이후 수천의 부지들이 버려졌다. 부지 소유주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지금도 도시 계획국에는 “우리 친척이 여기의 땅을 유산으로 물려줬는데 그게 어디 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최근 부동산 붐을 타고 캘리포니아 시티도 잠시 반짝했다. 인구가 거의 두배로 늘었다. 도시 중심에 수백 채의 주택이 지어지고 ‘제2의 커뮤니티’ 쪽 부지를 파는 심야 인포머셜들이 방송되었다. 그 결과 3,000달러 하던 부지가 2만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땅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여기에 땅 사두면 돈 방석에 앉는다”는 선전에 혹한 사람들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부지 가격은 다시 3,000달러로 내려갔다. 부지가 평평하게 조성되어 주말 캠핑 사이트로 쓸 만하고, 비포장도로 자동차 경주 인파가 몰려드는 정도이다. 가을과 겨울의 명절 주말에는 6만명 정도가 모인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시티의 텅 빈 황무지에서 일 년 내내 사는 진짜 주민은 코요테, 방울뱀, 야생 토끼 정도이다.
주중 하루 종일 운전을 해도 사람이라곤 볼 수 없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완벽한 고요가 대기를 채운다. “자연이 (이 지역을) 다시 차지하고 싶어 한다”고 캘리포니아 시티의 공공업무 직원인 제임스 핸슨은 말한다.
이들 직원은 일년에 4번 제2의 커뮤니티로 가서 몇 안 되는 포장도로의 깨진 곳들을 보수하고 아스팔트를 뚫고 허리까지 자란 잡초들을 뽑는다. 자연이 차지하고 나면 사람들이 다시 찾곤 하는 싸움이다. 드넓은 황야에서 아무데로도 가지 않는 도로를 지키는 싸움은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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