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경희대학교 크라운관에는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KBS 2TV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촬영이 있는 날. 오늘의 미션은 ‘강연’이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 등 깔끔하게 차려입은 7명의 멤버들은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다. 객석이 가득 차고 첫 번째 강사로 실제 교수인 이윤석이 나섰다.
이날의 주제는 ‘청춘에게 고함’. 멤버들은 각자 살아온 인생 이야기로 청춘을 즐기는 일곱 가지 방법에 대해 풀어놓았다.
이윤석은 교수님다웠고,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김국진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역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태원은 종종 흐름이 끊겨 웃음을 터뜨렸고, 김성민도 골프선수에서 연기자로 방향을 바꾼 뒤 맛본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들려줬다.
여학생들의 비명과 환호를 이끌어 낸 이정진에 이어 이경규는 베테랑다운 입담으로 폭소를 만들어냈다. 막내 윤형빈의 ‘읍소’까지 4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학생들은 평균 나이 40.6세 아저씨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지리산 등반이나 전투기 타기 등 다른 미션들에 비하면 이날 촬영은 아주 ‘편해’ 보였다. 스태프들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녹화가 끝나고 만난 출연진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김국진은 "티가 나느냐 안 나느냐의 차이지 다들 안절부절못했다"며 "교수인 윤석이도 어쩔 줄 몰라 하고 경규 형도 수십 번 앉았다 일어났다 했다"고 전했다.
녹화가 끝난 뒤 옮긴 자리에서 출연진들에게 지난 1년 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카리스마 넘치는 고집스러운 록커였던 김태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할매’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 아픈 곳이 없어 줄넘기조차 버거워했던 그는 "초창기에는 ‘나를 빼려고 그러나’ 할 정도로 괴롭혀서 힘들었다"고 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난 못했으니까 소외감을 느꼈죠. 해병대 체험하는 날 밤에 절망에 빠져 있었어요. 내가 방해만 되는데, 머무는 건 욕심이 아닌가 해서. 아직 친해지기 전인데 국진이가 와서 버라이어티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조급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을 때 감동 받았죠."(김태원)
그는 "처음엔 ‘할매’라는 캐릭터에도 적응을 못 했는데 그 캐릭터 때문에 콘서트에 사람이 오기 시작했다"며 "그게 나를 비웃는 게 아니라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김태원과 함께 ‘약골’로 쌍벽을 이루는 이윤석도 "’남자의 자격’은 방송 사상 처음 있는 ‘등이 굽은 버라이어티’"라며 "서글픔과 애잔함이 매력 포인트지만 뒤에서 젊은 친구들이 든든하게 받쳐줘 버티고 있다"고 거들었다.
"전 몸도 약하면서 보수적인 마초여서 여자들이 싫어하지만 보기 안 좋더라도 그게 제 일부분이에요. 웃기지도, 말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마라톤이나 직장인 밴드, 자격증 따기 같은 건 저 같은 사람도 열심히 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다음엔 독서 토론이나 과학 실험도 좀 했으면 좋겠어요."(이윤석)
배우인 김성민과 이정진에게도 ‘김봉창’과 ‘비덩(비주얼 덩어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성민은 "여전히 내가 왜 ‘봉창’인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이정진은 "지금까지도 (예능에) 적응한 적이 없고, 그 자체가 이정진"이라고 했다.
"전 방위를 나와서 해병대가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6명이 멀어지더라고요. 전 정말 모든 미션이 다 즐거워요. 앞으로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싶고, 해병대 했으니 특전사나 UDT도 등한시할 수 없고, 동물원에서 맹수 조련이나 서커스 같은 것도 다 해보고 싶어요."(김성민)
"배우로서 예능에 나가면 드라마나 영화 홍보하러 가는 거잖아요. 작품만 다를 뿐 같은 얘기만 하게 돼요. 여기서는 같이 어울려야 하잖아요. 미션이 개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켜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진정성을 갖췄다고 생각해요."(이정진)
’남자의 자격’의 막내 윤형빈에게서는 남을 조롱하며 독설을 내뱉은 ‘왕비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선배들에게 워낙 깍듯한지라 형님들은 ‘정말 착하다’고 입을 모았다.
초창기에는 워낙 말이 없어 화면에 잡히는 것조차 드물었다. 여전히 바른 자세로 형님들 옆에 앉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제 그는 형님들의 말을 받아 한두 마디 거들기도 한다.
윤형빈은 "처음엔 적응이 안됐지만 형님들을 좋아하게 되면서 스스로 마음이 편해졌다"며 선한 웃음을 지었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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